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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Jul 12. 2023

뚫리지 않는 방패를 버리고

이제 창을 쥐어볼까

사진: Unsplash의Henry Hustava사진

사진: UnsplashHenry Hustava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내는 방패가 만나는 이야기, 어쩌면 나의 이야기 같아서 글을 쓴다.


오래전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어느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허공에 낙하하는 낙엽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마음이 이 새벽을 헤집고 다녔다. 아둔한 내가 놓쳐버린 수많은 인연들을 세어본다. 열등감이 문제였을까?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기에 급급했던가? 아버지에게 고스란히 물려받은 '고집스러움'은 '신념'이라는 멋있는 단어로 포장되지 못했다. 대신, 부서지는 모래성을 쓸어 담는 듯 아침으로 헛되이 오용된 듯하다. 


기억이 있다. 나에게 어떻게 이런 인연이 닿았는지 믿기 어려울 만큼 동경했던 선배였다. 이 믿기지 않는 행운이 나에게서 멀어질까 두려워 선배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분주히 노력했다. 우악스러운 성격을 들키지 않게 가면을 쓰고, 능력이 없다고 평가받기 싫어서 자꾸 부유하는 마음을 붙잡아 공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하면 나도 이카루스가 되어 저 하늘 위에 떠있는 태양에 가닿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정말 지난 노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태양에 끝에 다다르는 마지막 순간 나는 결국 땅으로 추락했다. 선배와 나의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는 명확했다. 


마음의 문을 닫았다. 닥쳐오는 현실을 해치우는데 급급했다. 무슨 자격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도 나는 자격을 잃은 듯이 느껴졌고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설 수가 없었다. 그런 무수한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 오늘, 선배의 결혼소식이 들려왔다. 이 기회에 선배에게 연락해 보라는 친구의 북돋음에도 나는 여전히 쓸데없이 복잡하다. 내가 다시 이 인연의 끈을 붙잡는 건 내 욕심이 아닌가? 서로의 공백에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살아낸 사람들이 이제 와 다시 케케묵은 시간을 들추는 게 맞는 건지. 멀어져야 할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멀어진 것은 아닐까? 한번 두고 보자고 하며 내 대답을 무책임하게 미뤄놨다. 아마 나는 소식을 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빙빙 멀리 도망치는 게 일관된 나의 태도였으니.


다시 새벽. 밤잠을 설치는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타국의 더위와 통하지 않는 언어와 문화 그리고 서술하기 어려운 수많은 장애물들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나를 대단하다며 치켜세워준다. 그리고는 왜 당신은 매번 도움을 거절하느냐고 묻는다. 친구는 자신이 바쁜 내 옆에서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순간들이 싫다고 한다. 글쎄... 나의 대답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시간과 노력이 중요한 만큼 당신의 시간과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내 행동은 어떠한 대안도 없는 최후의 방책일 때만 가능해야 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이유는 나라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관대하여 도움을 청하는 것이 습관이 되지를 않기를 바라는 내 노력이다. 또한, 내 열심과 진심은 타인도 나에게 그러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내심에서 비롯된다. 당신의 시간과 노력이 중요한 만큼 나의 시간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나의 이 바람이 반향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내 태도는 언제나 동일하기를 바라고 노력한다. 



이런 기나긴 답변 대신 '그냥'이라는 멋쩍은 웃음으로 갈무리 짓는다.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나는 뚫리지 않는 방패구나 생각한다. 적절한 호의를 받을 줄 아는 아량, 호의를 더 큰 호의로 되갚을 수 있는 유연을 부릴 줄 모르고 자기만의 신념에 갇힌 어리석은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용기도 내지 못하는 방패 같은 나는 사람의 손을 먼저 잡을 수 있을까? 

나도 뚫리지 않는 방패를 내려놓고 창을 손에 쥐어볼까. 상대가 지르는 창에 맞부딪히고 불꽃이 튀어 빛을 밝히게 혹은 상대가 들고 있는 방패를 뚫어 빛이 닿을 수 있게, 설사 방패에 막히더라도 방패 뒤에 갇힌 그들에게 아직 내가 곁에 있다는 외침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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