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모자

대학원생의 지수적 로그(Exponential Log)

by 노닥노닥

앓고 있는 병(病)의 이름을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의 엄마는 그 행운을 갖지 못했다. 병은 어린 자식을 보살피던 그녀의 마음과 몸 곳곳에 곰팡이처럼 피어났다. 대한민국에 내로라하는 큰 병원의 의사들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결국 엄마의 반복되는 어지러움증, 구역질을 동반한 무기력증에 엔딩은 없었다. 다만, 당장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자식들의 똘망한 눈들과 그들의 목구멍이 그 모든 걸 감내하게 했다. 엄마는 끊임없이 인내하며 발버둥 쳤고, 그 결과로 자신만의 수많은 비기(祕器)들을 얻었다. 나는 딸이라는 이유로 고통으로 쓰인 비기들을 너무나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5년 전부터 엄마는 눈이 아파서 뜰 수 없다고 했다. 새로운 증상의 등장에 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자신만의 자구책을 찾아냈다. 바로 얼음을 이마에 대는 것. 나트릴 장갑에 얼음을 2~3개씩 넣어 손수건으로 돌돌 말아 머리에 띠를 두르며 살 것 같다고 했다. 체온에 얼음이 속절없이 녹아 장갑의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로 물이 차오르면 엄마의 머리 위에 검은색 뿔이 봉긋 솟았다. 누군가는 무슨 시위를 하냐고, 또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타시는 줄 알아 멋있게 느껴졌다며, 저마다 신기한 광경에 너무나도 가볍게 한 마디씩 해댔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남 속 타들어가는 줄 모르고 얘기할 때마다 열불이 난다며 성을 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이마에 얼음을 담을 수 있는 모자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모자를 제작하는 업체도 알아보고 했지만, 그런 듣도 보도 못한 모자를 만드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동네 수선집 가서 해달라고 했으면 어설프게나마 만들 수는 있었을 텐데, 나 살기 바쁘다고 엄마 머리 위에 솟아나는 물렁물렁한 작은 뿔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나도록 나는 내가 한 말을 지키지 못했다. 어쩌면 나조차 엄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엄마를 지켜낸 건 엄마였다. 병원에서는 처방해 준 우울증 약은 뚜렷한 효과가 없었기에 엄마는 수상한 냄새가 물씬 나는 곳들도 주저하지 않고 찾아다녔고, 이모들이 알려주는 민간요법들을 다 써보며 용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이제 하루 종일까지는 아니지만, 반나절 정도는 얼음을 이마에 대지 않고 지낼 만큼 호전되었다. 문득 엄마의 버려진 나트릴 장갑을 보며, 쪼그라진 장갑만큼이나 내 진심이 별 볼일 없어 보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오늘 넷플릭스에서 <폭삭 속았수다>를 보는데 아들이 엄마의 의자를 물끄러미 보다가 엄마 몰래 의자 다리에 테니스공을 끼워놓고 가는 장면이 있었다. 아들은 엄마의 애정 어린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엄마를 생각했는데, 나는 엄마에게 참으로 가볍디 가벼운 말밖에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목구멍이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항상 내 마음은 가벼워 저만치 앞서가는데, 몸은 무거워 나아가질 못하는 듯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마음이 앞섰던 만큼, 몸이 늦었던 만큼의 나의 죄를 눈물로 되갚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속죄의 속도는 죄가 쌓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누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의 나에겐 텔레비전은 뼈 아픈 채찍이었다. 바보는 나였다.


사진: Unsplash의 Yang D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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