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추구미 아닌가요

대학원생의 지수적 로그(Exponential Log)

by 노닥노닥
"그건 ○○님 추구미 아닌가요?"

대학원을 들어오기 전부터 걱정했던 자기소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러한 케케묵은 걱정도 사라지게 할 만큼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추구미...,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고개를 저을 만큼 생소하고 신선한 충격이다. 포털에서는 '추구하다'의 '추구(追求)'와 '아름다움'을 뜻하는 '미(美)'를 뜻하는 한자가 합쳐진 말로, 나만이 갖고 있는 개성과 스타일을 추구하여 이를 표현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라고 한다.


대학원 개강 총회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끼리 MBTI를 공유하게 된 것이 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나는 나의 MBTI가 INFJ(선의의 옹호자)이며, 동시에 내향성이 유독 강한 편이라고 얘기했다. 이를 들은 한 동기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해당 MBTI는 내 성격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이때, 동기가 구구절절 반론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설을 '추구미(追求美)' 개념에 집약하여 나에게 곧장 날렸기 때문에 충격력은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가해졌다. 처음에는 억울해서 "저 진짜 그런 말 처음 들어요. 저 완전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는 제가 이런 MBTI라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라며 항변을 했지만, '추구미'라는 전문용어(?)의 등장으로 현장은 초토화되었고, 내 말 따위는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되었다. 끝내 나는 INFJ라는 MBTI를 추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럼 나는 누구지?


한바탕 웃으며 곧 화제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정말로 나의 MBTI는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싶은 모습으로 나의 본질을 나의 이상형(Ideal Type)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이자 결과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이 MBTI라는 도구로 표현되는, INFJ라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주요 정체성 일부를 싫어하지만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나의 모습은 정말 내가 맞는 걸까? 무엇이 진짜 나(我)인가? 철학적 논제로 귀결되어 버린 '추구미'의 후폭풍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고 나는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나에게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음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부러 갈 필요가 있을까? 진리, 그리고 깨달음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P.S.

직장을 다니다가 우연치 않은 기회에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며 보고 느끼는 것들을 글로 남기고 싶어서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을 보류하고,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기로 했다. 원래는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때부터 정기적으로 쓸 생각이었지만, 생경한 세상에 하루에도 많은 글감들이 생겨나고 또 덮여 쓰여서 온전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학원에서의 2년에 대한 독특한 정체성을 부여할만한 제목이 딱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글의 순서와 시간의 순서가 꼬였다. 그러다 수업 중 지수 함수(Exponential Function)와 로그 함수(Logarithm Function)를 보고는 영감을 얻었고, 우선 저지르고 보자는 충동으로 오늘의 글을 쓰게 되었다. 제목에 대한 부연설명은 아래와 같다.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의 최선을 다하며 산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다 이루고 사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그 결과를 빠르게 가져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는 아주 늦게 빛을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 빛을 보기 직전에 포기해 버려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함부로 단언하기 어렵지만, 나도 내 노력에 비해 이룬 것이 많지 않다는 자기 항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사람들은 누구나 투입 대비 효과가 높기를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 나의 대학원 생활동안 내가 지수적으로 경험하고 성장하길 바라고 그걸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지수적 로그"라는 제목을 지었다. 여기서의 로그(Log)는 '기록'이라는 의미로 쓰였지만, 지수 함수의 역함수가 로그함수라는 점에서 지수와 로그라는 단어의 만남이 색다르게 느껴지기를 바라는 의도를 담았다. 나중에 보면 부끄러울 제목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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