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정말 부족한 게 없었어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by 노닥노닥

노닥거리다

조금 수다스럽게 재미있는 말을 자꾸 늘어놓다.


첫 글이 2023년 7월 6일이었으니, 2년을 채우진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블로그처럼 계정만 있으면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작가로 승인받아야 하더군요. 그저 생각으로 어지러운 제 일상에 대한 정리정돈 같았던, 거창한 의도나 계획도 없었던 제 글쓰기를 정의하려니 꽤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행복에 대해 정의 내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오래된 제 생각이 떠올라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을 제안했습니다.

밥을 오랫동안 씹다 보면 단맛이 나는 것처럼 자음과 모음이 모여 만들어진 고유한 단어들 하나하나도 음미하다 보면 각기 다른 본연의 맛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 일상 속에서 단어를 발견하고 그 뜻을 곰곰이 되새기고고 탐구하는 글들을 쓰려고 합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렇게 적었던 것 같습니다.


운 좋게 한 번에 합격을 해서 곧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제게 주어진 흰색 바탕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공간에 두근두근 마음 설렜습니다. 물론, 첫 마음과 다르게 꾸준한 글쓰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뿌듯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을 하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글 하나하나 다시 읽어보면 부족한 부분에 부끄럽지만, 책에 날개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처럼 다시 펼쳐보면 제 삶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순간들이 몽글몽글 떠오릅니다.


선택된 단어와 일상 간의 연결성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제 글과 생각이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글의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길이를 줄여보기도 했습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것 같아서 글쓰기 모임도 나가볼까 해봤지만, 막상 내 얼굴을 드러내놓고 글을 보여주는 일에 용기가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렇게 다시 무궁한 이 공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제곱의 수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제까지 쓴 글의 개수가 공교롭게도 8의 제곱 64입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결론 지어버리는 게 엉뚱한 걸 넘어서 기가 차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네 인생에서 과연 무엇이 정답이겠습니까?

사실, 다른 테마로 글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은 이제 마무리하려 합니다.



"We really did have everything, didn't we? I mean, when you think about it."

생각해 보면, 우린 정말 부족한 게 없었어.

<Don't Look Up> (2021), Randall Mindy says


누구나 각자의 별명이 있겠지만 제 별명 중 하나가 '슬픔이'입니다. 네. 맞습니다,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파란 녀석. 별명에 걸맞게 제 글의 7할은 슬픔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차있다는 걸 깨닫고는 기쁜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차게 실패했습니다. '기쁨이'가 되고 싶었고 노력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처음에는 억울했지만 제가 그런 사람이기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제 주위에는 "기쁨이"들이 있는 까닭에 제 삶이 슬픔으로만 점철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 엄청난 행운으로 말미암아 저는 정말 부족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살아 숨 쉬는 순간이 모두 귀중한 것과 별개로 그 모든 순간들을 살아내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고백하자면, 엊그제 아빠가 하는 말을 차마 들을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글을 쓸 때는 가족이 그렇게 소중하다면서도 저 역시 이렇게 한순간의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이 문장을 쓰면서 다시 반성했습니다) "Happily Ever After(이후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라는 동화 속 엔딩과 달리 삶은 계속되고,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볼썽사납게 비틀비틀 대는 제 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들지만, 순탄한 흐름도 3일을 못 가는 듯 하지만, 뒤돌아서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매번 후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습니다. 제가 쓴 모든 글은 그런 삶이지만 한번 살아보자는 스스로에 대한 다독임이었으며, 동시에 제 글이 가닿을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였습니다.


오늘 오랜만에 정말 노닥거리는 느낌으로 글을 쓴 것 같아서 마음이 간질간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는 글은 아닐지 몰라도 꾸준히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소수의 독자분들도 계셨음을 압니다. 때론 어리석고 유치하게 느껴졌을 수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 글도 있었겠지만 제 진심을 담은 글들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제 본 영화의 대사가 참 좋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It's Okay If You Can't Be Proud Of Me. Because I Finally Am."

당신이 저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마침내 제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2022), Evelyn Quan Wang(Michelle Yeoh) says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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