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를 껴안고

대학원생의 지수적 로그(Exponential Log)

by 노닥노닥

Section 1. 패배를 껴안고


학부 시절, 전후 일본사회에 대해 묘사해 주시던 교수님의 말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적국(敵國)에 대한 열락(悅樂)과 환희(歡喜)라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가미카제(神風)라는 극단적인 전술을 행할 만큼 강력한 집단적 동조가 나타난 사회에서 보일 수 있는 반응일리 없다는 생각이 대번 들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미일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괴리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지매(いじめ, 집단 따돌림) 문화로 대표되는 일본의 권위주의이고, 이중적이며, 극단적인 승자 편향의 특성들을 곱씹어 보면 그리 모순적인 일도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국도 그렇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서 조금은 씁쓸한 마음입니다.


"일본과 함께 동맹국으로 싸웠던 독일은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된 상태였기에 오로지 미국만이 일방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했던 일본에서와 달리 집중된 권력이 없었다....(중략)... 많은 미국인들이 천황을 숭배하는 광신도를 만날 수 있으리라 예상하면서 일본 땅에 상륙했다. 그러나 완전 무장한 채 해변에 첫발을 내딛은 부대원들을 맞이한 것은 "야아!"하고 환성을 지르는 여자들과 인사를 하며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오는 남자들이었다." (존 다우어, 『패배를 껴안고』, 16쪽)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존 다우어(John W. Dower)는 1999년《패배를 껴안고》라는 저서를 통해 전후 일본 사회의 단상을 보여줍니다. 800쪽이 넘는 이 책을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30대에 접어든 제게 이 책의 이야기는 한 국가의 이야기처럼 읽히지 않고, 한 인간의 이야기처럼 읽힙니다.


"자기가 겪게 된 참상에 사로잡혀 그들 스스로가 다른 민족들에게 가했던 고통을 무시한 일본인들의 모습에서는, 각 사회 집단이나 민족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피해자 의식이 어떻게 고유의 색채를 부여하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전쟁 범죄에 대한 역사적 건망증은 일본에서 특수한 형태를 띠고 나타나긴 했지만, 이와 같은 기억과 망각의 패턴은 최근 들어 주목받게 된 이슈, 즉 공공의 기억(public memory)과 신화 만들기(myth-making)라는 보다 일반적인 맥락에서 바라볼 때 그 의미가 충분히 살아날 것이다." (존 다우어, 『패배를 껴안고』, 25쪽)


Section 2. 자조, 자조, 자조


자조(自嘲): 자기를 비웃음

자조(自照): 자기를 관찰하고 반성함

자조(自助): 자기의 발전을 위하여 스스로 애씀


중간고사는 형편없었습니다. 오랫동안 펜을 놓은 탓이라고 해도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 용기를 내어했던 소개팅도 잘 안 됐습니다. 과거에는 가볍게 넘길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수록 내상(內傷)의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별을 세듯, 수많은 양을 세듯, 스스로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세어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칠흑 같은 밤이어서일까, 양들이 맹수들에게 이미 사냥을 당해버서일까, 엄지손가락 하나를 제대로 접지 못한 채 자신의 손바닥과의 머쓱한 대치(對峙)만 이어졌습니다.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던 나름의 행동은 무위(無爲) 보다 더 못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저는 냉소주의를 경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에 대한 반복경험은 허우적댈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는 수렁에 갇힌 듯 저를 냉소주의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 근래 소파를 병상(病床) 삼아, 집을 동굴 삼아 누워있었습니다. "어차피 안될 거야"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낚시꾼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당신은 깊은 심연에 빠져 둥둥 떠다니는 나를 또 건져냅니다. 햇빛을 가리던 커튼을 걷고, 서늘한 고요에 요란한 소음을 불어넣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일전에 신청해 놨던 마라톤 대회의 출발선상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출발신호가 주어지기 직전까지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 갇혀 나가지도 못하고, 그들의 물결에 밀려 저도 함께 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점차 거리가 늘어나면서 호흡을 조절하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제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그 순간에는 오직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것만이 제 삶의 유일한 목표로 남았습니다. 러닝의 마지막, 극적으로 결승선을 향해 최대속도로 달음박질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계속 달려왔던 속도로 그저 그렇게, 그 순간도 여느 순간 중 하나와 마찬가지로 지나왔습니다. 아마, 심연에 잠겨있던 제가 정말로 수면 밖으로 나건 그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서른 하나, 저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가능성의 시기의 정점을 뒤로 한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릴 적 꿈과 달리 대단한 인물은 되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도 30대를 매사에 천방지축이어도 좋은 나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 신중을 기해야 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고, 아쉽지만 언제나 제가 주인공일 수는 없습니다. 저보다 젊고 새로운 사람들의 좋은 능력은 이 세상에 반가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느슨해진 저의 학업에도 긴장감을 불어넣는 아주 좋은 자극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 삶에 있어서 무엇에 힘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재고(再考)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습니다. 저는 또 패배를 껴안은 채 사과나무를 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진: Unsplash 의 Syahrin Seth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