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지수적 로그(Exponential Log)
대학원생의 지수적 로그(Exponential Log)
저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이유는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매일 저녁 반주를 하시던 아빠를 닮기 싫었습니다.
부모님의 부부싸움 후 적막이 가득하던 어느 저녁, 집안에서 쨍그랑, 말 그대로 적막을 깨뜨리는 소리가 났었습니다. 놀라서 바라본 부엌에서 아빠는 식탁에 앉아 싱크대를 향해 식탁 위에 있던 반찬통들을 하나씩 천천히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아빠에게 도전할 수 없었던 우리 집에서 식탁 위의 모든 그릇들이 다 던져질 때까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가 잠에 들고 엄마와 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널브러진 반찬들과 처참하게 깨진 유리조각들 치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기억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저는 무기력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울분에 차서는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 따위를 했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제 스스로의 모습이 남들에게 발가벗겨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며 사는지 몰라도 저는 스스로가 떳떳한 사람인가에 대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내가 외면해 온 것들, 내가 상처 줬던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관대했던 순간들이 한데 뒤섞여 제 입을 틀어막을 것만 같습니다. 지금 내보이는 제 모습조차 완벽하지 못한데 내가 숨겨온 제 모습을 드러나면 얼마나 별로일까요. 멀쩡한 상태에서도 제가 바라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데, 술까지 마시게 되면 제가 얼마나 더 망가지려나 무서웠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술뿐만이 아니라 언행에 조심하게 됩니다. 제 말이 배설이 될까 봐 두려워 말을 아끼고, 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는 직접 만들긴 했지만 제목은 짓지 못한 정체불명의 음식으로 탄산음료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날의 아빠와 달리 제게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없고, 던질 수 있을만한 반찬통도 없으며, 술 대신 탄산음료 한 병을 즐깁니다. 그때에 비하면 제 삶은 다소 고독하지만 더 행복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자기 자랑도 신세한탄도 자기 연민도 아닙니다. 다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비관하고 부정적인 말을 써놓은 글을 보고 무작정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려 했다가 괜한 참견일까?, 감히 조언일까?, '나 따위가 뭐라고', 내가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데 당사자성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하는 게 오히려 화를 돋우고, 상처를 남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상대를 향해 뻗은 손을 급히 거두었습니다. 그냥 그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분노하는 그 순간조차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당신에게는 꿈만 같은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저 이 주저함으로 전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맞습니다. 이 글도 제가 만든 요리처럼 두서도 맥락도 없습니다. 저도 취했나 봅니다.
사진: Unsplash의 John Torcas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