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말랭이

대학원생의 지수적 로그(Exponential Log)

by 노닥노닥

"저는 비빔 인간입니다." 어떤 요리사가 자신의 삶을 녹여낸 고백처럼,

"저는 슬픔 인간입니다." 어떤 풋내기는 자신의 삶을 어설피 가늠했다.


'완벽한 서사를 가진 비빔 인간과 달리 슬픔 인간은 비약(飛躍) 일 수도 있다'라고 선을 먼저 그어보겠다.

타고난 기질 때문이라고도, 자라온 기억 때문이라고도, 아니면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대중도 잡아보겠다.


그런데 2025년 한 해 동안 유달리 내 삶에 볕이 들었었나,

한 입 크기에 맞게 슬픔을 잘라내어 사계절 내내 햇볕에 말렸더니 슬픔도 말랭이가 되었다.


작은 눈에 눈물을 가득 채워 온 세상을 물바다로 만드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나는 이제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 이 슬픔 말랭이를 잘근잘근 씹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차가운 공기들이 드나드는 길을 따라 내 안에도 성에가 맺힐 것 같은 이 겨울에도

햇볕만큼은 계절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따사롭게 집안 구석구석을 채웠다.


돌이켜보면 봄이면 따사로운 봄이라고, 여름이면 무더운 여름이라고, 가을이면 익어가는 가을이라며,

온갖 이유를 대며 햇살이 내 삶에 한 자리 차지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어색하지 않은 어울림에 눅진했던 나의 슬픔은 수분을 빼앗겼지만 단맛이 살아났다.

질겅질겅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햇볕이 되어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어렸으니까,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니까.

남은 삶에는 내 슬픔을 말리는 일 말고 다른 이들에게 이유 없는 햇살이 되자고 섣불리 다짐했다.


사진: Unsplah의 Louis Han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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