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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Dec 11. 2024

체코: 카를로비 바리, 플젠, 그리고 프라하


본격적인 여행날의 시작, 현지 시각으로 새벽 4시쯤 눈을 떴다. 강제로 시작된 미라클 모닝, 컴컴한 밖을 보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하루의 시작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다리 상황이 참 낯설었다. 가볍게 조식을 먹고, 짐을 싼 뒤 마을 근처를 산책하러 나갔다. 이른 아침, 낯선 곳을 걸으니 낯가리던 감각이 조금씩 깨어나는 듯했다.


유럽풍 건물, 고요하고 차가운 아침 공기, 낙엽, 새소리, 15분마다 울리는 시계 종소리 ···


걷고 있이 길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다 강아지와 산책 중이던 현지인과 눈이 마주쳤는데, 동시에 '굿모닝~' 인사말을 전했다. 그곳이 일상인 한 사람과 이곳이 처음인 한 사람 사이의 찰나였다. '굿모닝' 딱 그 한마디로, 여행지에 온전히 도착했음을 알아차렸다. 낯선 풍경 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느긋하게 산책하며 새로운 공간에 닿았을 뿐인데 '행복'이라는 감정을 그토록 쉽게 느꼈다. 





잠시 머물렀던 독일을 벗어나 체코로 국경을 이동했다. 2시간가량 이동해서 체코 서부에 위치한 '카를로비 바리'라는 한 소도시에 도착했다.




카를로비 바리 (Karlovy Vary)


카를로비 바리는 '카를 온천'을 뜻한다. 14세기 이곳을 통치하던 카를 4세가 보헤미아 숲으로 사냥을 나간 적이 있었다. 화살을 맞은 다친 사슴 한 마리를 쫒다가 사슴이 뜨거운 웅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뒤 말끔히 나은 것을 보게 되었다. 이때 온천수의 효능을 알게 된 이래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체코에서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카를로비 바리의 여러 온천수를 마시고, 마을을 산책하며 병을 치유한다. 그래서 휴양을 위해 특별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는 온천수 샘이 있고, 직접 시음해 볼 수도 있다. 현지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도자기 컵을 구매해서 온천수를 담아 마시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평소 약수터 도 입에 맞지 않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따로 시음해보지는 않았다. 비릿한 철분의 녹슨 향과 합쳐진 짭짤한 맛이 난다고 한다.


카를로비 바리는 온천욕, 온천수 외에도 아름다운 건축물들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알록달록한 건물들을 눈동자에 담은 채로 산책하다 보니 가을의 정취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무르익은 단풍에 시선이 빼앗겨 중간중간 멈춰 서서 머물렀다 가곤 했다. 관광지답게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풍경에 더 끌렸다.


카를로비 바리관광이 목적이라면 잠시면 충분하고, 여유가 있다면 온천 호텔에서 온천욕도 하며 느긋하게 머물렀다 가도 좋을 것 같다!




카를로비 바리에서 점심 식사를 한 뒤, 체코의 또 다른 근교 도시 '플젠'으로 이동했다.




플젠, 필스너 우르겔 양조장


플젠은 체코의 대표 맥주인 '필스너 우르겔'의 본고장이다. 중세에는 주로 수도원에서 맥조 양조를 담당했었는데, 카를 4세는 수도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맥주를 빚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 계기로 보헤미아 지역에 맥주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맥주 제조는 일찍부터 시작됐지만 그 맛은 지역별로 달랐다. 1838년 지역 주민들이 품질 낮은 맥주의 맛에 불만을 표출했고, 당시 플젠시에서는 양조장에 독일 출신인 '요제프 그롤'을 영입했다. 그리고 1842년 최고급 라거 홉과 플젠에서 생산되는 보리, 그리고 플젠에 흐르는 연수를 이용한 필스너 맥주가 탄생했다. 필스너 우르겔 양조장의 역사는 그렇게 1842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필스너 우르겔 양조장은 플젠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규모가 크기도 하고, 맥주 제조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제조실을 구경하며 제조에 사용되는 맥아 홉을 직접 만져보고 향을 맡아봤다.


지하 저장고로 이동해 오크나무 발효 맥주통에 담긴 맥주도 현장에서 시음해 봤다. 라거향이 강해서 그런지 맥주는 조금 쓰게 느껴졌다. 맥주 맛을 제대로 즐길 줄 모른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 잔을 채 비우지 못했지만 라거 맥주의 오리지널을 맛본 것 만으로 만족했다. 일본은 아사히, 중국은 칭다오처럼 체코는 필스너 우르겔이라고 기억할만한 그런 경험이었다. 체코의 맥주 역사가 깊다는 걸, 체코인의 맥주 사랑이 각별하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필스너 우르겔 양조장을 나와 장소를 이동했다. 보헤미아 지방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을 구경했다. 그곳에서는 바삐 움직였던 하루에 잠시나마 휴식을 주었다. 벤치에 앉아 뾰족뾰족한 대성당을 올려다 보고, 지나가는 트램에 눈길을 주었다.  때리기 좋은 나른한 오후를 잠시나마 여유롭게 흘러 보냈다.






그리고, 일정의 마지막 장소인 프라하로 이동했다.




프라하 (Prague)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도착과 동시에 프라하 야경 투어를 시작했다. 프라하의 밤은 여행객들의 눈동자를 분주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가이드님의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도심의 불빛에 매료됐다. 카를교, 프라하성, 구시가지, 시계탑 등 이야깃거리가 많았지만 다음날 다시 오게 될 낮의 프라하에게 잠시 미뤘다. 프라하의 황금빛에 어울리는 감성을 그저 만끽하고 싶었다.




한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짧게나마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구시가지 광장 한 복판에 서서 주변을 360도로 찬찬히 눈에 담았다. 대학생 때, 뉴욕 타임스퀘어 한 복판에 서서 야경을 감상했을 때 느낀 그때의 황홀함을 이곳에서 다시 느꼈다. 이번에는 유럽이었다. 이 시간에, 이곳에 와있다는 사실이 유독 크게 또 분명하게 와닿았다. 그리고 그 감탄에 음악 소리가 곁들여졌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악기를 제각기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리듬에 맞춰 박수를 쳤고, 연주하는 사람들은 신이 나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그 움직임은 마치 음표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음악과 하나 되어 그 순간을 함께 즐겼다.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툭 건드리면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충동적인 감정임을 알았지만 주위 배경과 음악, 분위기에 취한 그 '순간'이 감격스러웠다...



프라하를 모든 감각으로 즐겼다. 음악이 겻들어진 프라하의 밤이라니. 낭만, 청춘, 자유, 황홀함··· 평소 쉽게 떠올려보지 못하는 단어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졌다. 프라하의 밤은 낭만 그 자체였다. 유럽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기대에 부합하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했다.



다음날 마주할 프라하의 낮이 기대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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