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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Dec 18. 2024

체코: 프라하 성, 카를교, 구시가지


야경 투어 마무리 됐던 여행 2 일차에 2 만보 이상을 걸었다. 많이 걸은 만큼 많이 보았다. 고됨을 애써 미루다 숙소에 도착해서야 온전히 쉼을 허락했다. 대신 푹 쉬었다. 고생한 몸을 위로하면서도 다음 날의 여행을 생각하고  배려했다. 그리고, 걸음수 기록이 매일 갱신되듯 유럽에서의 로운 하루가 주어졌다. 




여행 3 일차 이른 아침, 체코 프라하 성으로 향했다. 현지 가이드님과 동행하여 프라하 성 일대의 역사를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다. 중세 유럽과 당시 체코의 역사에 관한 짧은 이해가 더해지면 프라하의 정취를 더 잘 느낄 수 있다.


고대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6-7세기경 서슬라브인들이 보헤미아 땅으로 이주해 오면서 체코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서쪽의 동프랑크 왕국 출신 '사모'에 의해 체코 최초 왕국인 사모제국이 건국됐다. 그 후 모라비아 왕국이 세워졌으나, 신흥 헝가리 왕국의 공격을 받아 또 멸망했다. 모라비아 왕국이 멸망하기 전, '프로셰미슬 가문'이 프라하에 요새를 쌓고 그곳으로 근거지를 옮겼는데, 이때가 바로 프라하의 탄생이었으며, '보헤미아 공국'의 탄생이었다.

보헤미아 공국은 동쪽 헝가리 왕국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서쪽 동프랑크 왕국의 신하가 되었다. 동프랑크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으로 칭호를 바꾸고 세력을 확장했다. 보헤미아 공국이 '보헤미아 왕국'으로 승격해 세력을 키워가던 무렵 왕위는 '룩셈부르크 가문'이 이어갔다. 이 가문에서 보헤미아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카렐 4세'가 등장한다. 카렐 4세는 신성로마제국 내 보헤미아 왕국의 권위를 인정받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까지 선출되었고, 프라하는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카렐 4세 이후 국력이 쇠퇴해진 보헤미아 왕국의 왕위는 오스트리아 대공국 '합스부르크 가문'에게 넘어갔고, 수백 년간 체코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



프라하 성은 9세기에 최초로 건립된 후, 보헤미아 왕국의 거점이 되었다. 수 세기 동안 체코 국왕들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이 이곳에서 통치했다. 현재 성의 일부는 체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성 초입부에 분수대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상단의 독수리 깃발은 '합스부르크 가문'을 상징한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던 수백 년 역사 또한 체코 역사의 일부임을 기억하기 위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프라하 성 건축물들의 조각상들도 보면 당시 체코의 역사가 보인다. 조각상들 대부분 칼이나 무기를 들고 있다. 아래 사진은 프라하 성 정문인 거인의 문인데, 조각상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에 짓눌려 억압당하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과거를 간직하는 문을 배경으로 짧게 근위병 교대식이 이뤄졌다. 누군가에게는 관광이, 누군가에게는 출근이자 일의 시작이었다.




성 문을 나와 성 비투스 대성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의 성 비투스 대성당을 올려다봤다.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의 규모였고, 멀리까지 와서 보게 될 유럽의 대성당이 이 정도는 돼야지 싶은 생각에 딱 맞는 웅장함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랜 역사의 흔적이 아우라로 느껴졌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천년의 세월을 지니고 있는 프라하의 자랑이다.



 비투스 대성당 내부 관람을 하러 이동했다. 성당 내부로 입장하자마자 예상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예상이라기보다는 상상했던 모습이었다. 창문마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들이 빛을 머금고 있었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 관광했던 유럽스러운 성당 내부를 드디어 직접 관람하는 순간이었다.



체코는 중세부터 유리 공예가 발달했는데, 스테인드 글라스 기술력은 '보헤미안 글라스'라고 부를 정도로 독보적이었다고 한다. 성당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르누보 대표 화가 '알퐁스 무하'의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지만 위 작품은 체코 역사의 시초인 슬라브족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일대기를 담고 있다. 유리창에 직접 그림을 그린 유일한 작품인 걸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색감이 좀 더 선명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다른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들은 화려하게 빛났다면 위 작품은 은은하게 빛났다.




성 비투스 대성당 투어를 마친 뒤, 프라하 시내로 향했다. 여운을 뒤로한 채 돌담길을 걸어 내려갔다. 좌우에만 시선을 두다 문뜩 앞을 내다봤는데 저 멀리 블타바 강과 다리가 보였다. '선물 같은' 예쁜 풍경이 멀리 그렇지만 가깝게 눈앞에 있었다. 코 앞에는 단풍나무가 저 멀리에는 강물이 그리고 하늘이 모두 한 시야에 들어왔다. 찰나의 발견이었고, 이곳에 있을 수 있어서 그저 기뻤다.





구시가지로 향하는 길목인 '카를교'(카렐교)에 도달했다. 9세 기 초 나무로 지어진 다리가 홍수에 무너진 뒤, 보헤미아 왕 카렐 4세에 의해 현존하는 다리가 세워졌다. 강을 바라보며 카를교 위를 천천히 끝까지 걸었다. 형형색색의 건물들을 골목골목 지나다녔다. 전날 밤에 와봐서 그런지 익숙하면서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괜히 조급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을 꼽아보자면 단연 '프라하 천문시계탑'이다. 구시가 광장에 위치한 구 시청사 벽에 걸린 천문시계로, 1410년 프라하 시청사의 요청으로 시계공과 수학자의 합작으로 완성되었다. 완성된 시계가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나라에서 같은 시계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프라하 시의회는 똑같은 시계를 제작할 수 없도록 시계공의 눈을 멀게 했다. 시계공이 슬퍼하며 마지막으로 시계탑에 올라 시계에 손을 대자 작동이 멈추었고, 시계는 400년이 지나서야 복구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 출처: 구글 Unsplash


프라하 천문시계탑은 매 정각마다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위쪽 시계판 우측의 해골이 종을 당기면서 종소리가 울린다. 해골이 종을 치는 것은 죽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해골 옆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인형이, 맞은편에는 거울을 보며 허영에 빠진 인형과 돈에 혈안이 되어 지갑을 들고 있는 인형이 있다. 인형들은 종이 울리면 고갯짓을 하는데, 죽음의 순간 앞에서 급해진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다. 두 개의 창문이 열리고 예수의 12제자 인형들지나가며 그런 아래를 내려다본다. 마지막에는 황금수탉이 우는데, 수탉이 울면 새벽이 오는 즉 삶이 온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부질없지만,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0초가 채 되지 않는 퍼포먼스지만 짧은 순간이라도 죽음을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퍼포먼스가 워낙 짧아서 허무했다. 허탈함을 느꼈지만 여행은 계속되어야 했으니! 잠시 광장을 구경하다 시계탑이 보이는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맥주를 시키고 잠시 여유를 가졌다. 자유시간에 이리저리 더 돌아다니고 싶기도 했지만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 또한 좋을 것 같아서 휴식을 취했다. 푸른 하늘도 올려다 보고, 시계탑도 괜히 한 번씩 더 보고, 사람 구경도 했다. 그렇게 짧게나마 멍 때리며 그 순간의 자유를 즐겼다.






아침 일찍부터 프라하의 낮을 후회 없이 경험했다. 하루의 시간을 이토록 알뜰하게 써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프라하에 머물러 있었다. 프라하는 친해진 만큼 더 알고 싶은 도시였고, 역사문화의 도시이자 낭만의 도시였다. 프라하의 낮과 밤 모두를 여행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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