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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Dec 25. 2024

헝가리: 부다 그리고 페스트



여행 4일 차의 하루가 새로 또 주어졌다. 여전히 눈을 뜬 곳은 유럽의 어딘가였고, 창 밖으로는 드넓은 가을 하늘이 먼저 하루를 시작한 듯 벌써부터 맑았다. 단풍나무도 출근해 있었다.



이날은 조식을 여유롭게 먹었다. 접시에 토스트 빵, 반숙 계란, 소시지, 그리고 과일을 담았다. 손 가는 대로 빵 위에 잼과 버터를 바르고, 계란 프라이를 반으로 갈라 소시지를 넣었다. 문뜩 '소확행'을 느꼈다. 뚝딱 완성된 나만의 토스트. 맛은 예상한 만큼의 그 이상도 아니었는데, 괜스레 옅은 미소가 번졌다. 표현이 거창하게 들릴지 몰라도, 행복이 잠시 머물렀다 간 걸 알 수 있었다. 여유로운 '자유'를 느끼기에 토스트 하나면 충분했다.




4시간 정도 이동해서 '헝가리'에 도착했다. 점심 식사 후 걸어서 잠시 이동하는 길에 한 남자 꼬마 아이를 만났다.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꼬마가 창 밖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덩달아 손을 부지런히 흔들었다. 너무 귀여운 꼬마가 그것도 수줍게 웃어주었다. 버스가 신호에 걸렸고, 또 한 번 마주친 꼬마에게 이번에는 먼저 손을 흔들어주었다. 꼬마는 부끄러움과 현지인이 지닌 여유로움을 풍기며 그렇게 지나갔다. 낯선 곳에서 그런 '순수함'을 느끼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오늘의 여행지인 '부다페스트'는 1873년에 다뉴브강 서편의 '부다'와 동편의 '페스트'가 합쳐져 오늘날의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부다 지구'는 산이 많고 언덕이 있는 곳이자, 왕궁과 대통령 집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평지인 '페스트 지구'는 헝가리의 상업, 교통, 정치, 예술문화의 중심지로 국회의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부다 지구'를 먼저 관광하기 위해 부다 성 지구로 향했다. 부다 왕궁은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왕궁으로,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 하에 있을 때 재건축되었다가, 두 차례 세계 대전으로 또다시 파괴되었다. 그 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현재는 국립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부다 왕궁에 올라가면 부다페스트의 전경이 펼쳐진다. 강 너머 '페스트 지구'가 한눈에 보였다. 부다에서 바라보는 페스트 지역의 낮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과 맑은 날씨가 더해지니 선명하게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걸음을 옮겼더니 헝가리 왕들의 결혼식과 대관식이 행해졌던, 고딕 양식의 '마차시 성당'이 보였다. 정식 명칭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지만, 헝가리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마차시 1세' 왕가의 이름을 따서 마차시 성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차시 성당과 마차시 1세 동상


마차시 성당 앞에는 '어부의 요새'가 있다. 어부들이 강을 건너 기습하는 적들을 막기 위해,

마차시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했다고 한다. 




요새의 성곽길을 따라 자리 잡은 노천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시선에 들어왔다. 부러웠다. '언젠가'의 숙제를 풀기 위해 유럽에 왔는데 또 언젠가를 남긴 기분이었다. 자유 여행으로 유럽에 다시 온다면 그때는 예쁜 노천카페에서 반나절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페스트 지구'로 향했다. 부다페스트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바치 거리를 구경했다. 상점, 쇼핑센터, 레스토랑 그리고 곳곳에 그림의 떡, 노천카페가 있었다. 잠시 지하로 내려가 전 세계 세 번째로 개통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된 전동 지하철도 구경했다. 그리곤 도보로 이동해서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보러 갔다.


성 이슈트반 성당은 헝가리에 기독교를 전파한 초대왕 성 이슈트반 1세를 기르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곳의 탑은 96m인데 헝가리가 건국된 896년의 96을 의미한다고 한다. 여행 기간 마주했던 성당들 중에서 눈앞의 성 이슈트반 성당이 왠지 모르게 가장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올려다봤을 때 배경인 하늘과 가장 잘 어울리는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의 황금빛 모습까지 본 뒤, 이제 유럽 3대 야경인 부다페스트의 밤을 만나러 이동했다. 3대 야경에는 프랑스 파리, 체코 프라하, 그리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야경이 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야경 스폿은 부다와 페스트를 이어주는 '세체니 다리'였다. 다리 위에 서니 저 멀리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은 부다 왕궁도 보였다.



이곳에서 잠시 화려한 밤의 전경을 느긋하게 눈에 담았다. 그리고, 잠시 이동해서 부다페스트 야경의 하이라이트인 국회의사당 야경 스폿에 도착했다.



유튜브 숏츠로만 보았던, 국회의사당 야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 폭에 쏙 들어올 정도로 광활한 풍경은 아니었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일까. 야경에 매료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유럽의 대표 야경을 직접 본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래도 노란 단풍나무와 어우러진 황금빛 야경이 여운에 남는다. 약속된 풍경을 무사히 봐서 그저 좋았다.





부다페스트의 낮과 밤을 여행했다. 이제는 유럽과 많이 친해진 듯 느껴졌다. 여행의 한 페이지가 하나 더 채워진 하루였고, 남은 기간도 잘 여행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나는 그런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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