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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룸로프 그리고 잘츠부르크

by 미리



여행이 일상이 된 지도 어느덧 꽤 됐다. 마지막 날이 정해져 있는 여정이라 나날이 아쉬운 게 당연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날들도 잘 여행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인지 '아직도 더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희망으로 느껴졌다.


6일 차는 두 나라를 오가는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를 방문한 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여행하는 일정이다.



목적지까지 이동시간은 4시간, 이번에도 어김없이 버스 안에서의 온전한 자유가 주어졌다. 견과류를 챙겨 먹고, 음악 들으며 창 밖 풍경을 보고, 여행 사진을 보고, 여행 노트도 꺼냈다 끄적였다 넣었다 하고··· 며칠간의 이 소소한 루틴은 소확행의 만족감을 주었다. 틈틈이 들여다본 책 한 권도 드디어 다 읽었다. 그리고는 뿌듯한 마음을 베개 삼아 남은 이동시간에는 잠시 눈을 붙였다.






다시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



체코의 대표 소도시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했다. 체스키는 '보헤미아'를, 크룸로프는 '구불구불 흐르는 습지'를 뜻한다. 18세기 이후로 새로 지어진 건물이 없을 정도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자, 1992년에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망토다리'라고 부르는 건축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아기자기한 동화 마을에 들어선다.





마을에 들어선 뒤 가장 먼저 언덕 위에 지어진 체스키 크룸로프 성으로 향했다. 위에 올라서니 알록달록한 작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아기자기한 블록 같은 유럽 풍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괜히 건물도 강물도 어두침침해 보이는 아쉬움이 있었다.





내려와서 '라트란 거리'를 골목골목 구경했다. 과거에는 영주를 모시는 하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상점과 레스토랑이 자리 잡은 관광지의 모습이다. 눈에 보이는 기념품 숍마다 기웃기웃 들어가서 구경했다. 광장까지 다 둘러보니 거리 끝의 '이발사 다리'에 다 달았다.


마을과 성 사이에 놓인 이 다리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아픈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휴양차 이곳을 방문했다. 왕자는 그때 이발사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했고 결혼까지 했다. 어느 날 아내가 살해당했는데 왕자는 범인을 찾을 때까지 마을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다. 이발사는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자신이 딸을 살해했다고 거짓자백했고 처형당했다. 사실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던 왕자가 아내를 살해했던 것이고, 이발사는 희생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그를 기리기 위한 다리가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발소의 다리 근방을 서성이며 풍경 사진을 찍었다. 구름이 조금씩 걷히더니 햇살이 강물에 비칠 정도로 날씨가 갑자기 화창해졌다. 예쁜 하늘 아래 귀여운 마을을 한 시야에 담은 채 마을을 떠날 수 있어서 덩달아 기뻤다. 여행할 때마다 날씨 운이 좋아서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했다.







다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의 대표 소도시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잘츠부르크'의 잘츠는 '소금'을 부르크는 '성'을 뜻한다. 근처에 소금 광산이 많아서 소금의 성이라고 이름 붙어졌다고 한다. 먼저 언덕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푸니쿨라라에 탑승해서 호엔 잘츠부르크 성으로 향했다.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요새의 성곽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성 외부와 내부를 관광했다. 그리곤 성 전망대에 올라 잘츠부르크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체코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매력을 지닌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체코가 오목조목 알록달록하게 예쁜 느낌이었다면, 오스트리아는 포근포근 새하얗게 우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강을 경계로 잘츠부르크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나뉘어 있다. 언덕 아래 다닥다닥 붙어있는 무채색 건축물들, 뾰족한 양식의 건축물, 둥근 돔 형태의 건축물, 강 그리고 산··· 중세, 바로크 시대, 근대,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는 세월을 고스란히 잘 간직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풍경이었다.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와 천천히 이동하다 보니 잘츠부르크 대표 거리인 '게트라이데 거리'에 들어섰다. 시내 중심에 있는 쇼핑가인데 장인들이 만든 철제 간판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당대에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업종을 간판에 표시한 관습이 이어져 온 것이라고 한다. 우산, 구두, 시계, 바지 등이 달려있어 어떤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인 지 간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인상적인 게트라이데 거리를 둘러보다 보면 그 중앙에 샛노란색의 건물이 하나 보이는데, 그곳은 바로 9번지 '모차르트 생가'다. 건물 외벽에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집'이라고 쓰여 있다. 음악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건물 3층에서 살았는데 1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현재는 건물 전체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음악 신동이었던 모차르트는 3살 때부터 누나가 피아노 치는 것을 보고 독학해서 연주했고, 5살 때는 피아노곡을, 8살 때는 무려 교황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를 따라 6살 무렵부터 유럽 곳곳으로 순회 연주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이곳에 실제로 머무른 시간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가이드님의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어린 모차르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거리를 벗어나 잘차흐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서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배경이었던 '미라벨 정원'을 구경했다. 꽃들이 월동 준비에 들어가서 화려한 모습의 정원을 보지는 못해 아쉬웠다. 벤치에 앉아서 정원 분수를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



그리곤 다시 게트라이데 거리로 가서 현지 맛집 수제 햄버거 가게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패키지여행 현지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었더니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가격에 한 번 놀라고, 맛에 두 번 놀란 소소한 경험을 했다. 식사를 끝으로 잘츠부르크 여행을 마무리했다. 반나절만 여행하기에는 아쉬웠던 잘츠부르크, 다시 온다면 그때는 느긋하게 그곳의 낭만을 즐기고 싶다.





호텔에 도착한 뒤 왠지 모를 아쉬움에 산책을 나갔다. 산책하다 만난 패키지여행 팀원 몇 분과 함께 문 열린 한 식당에 들어갔다. 친구와 여행을 예약했지만 사정상 혼자 오게 된 한 살 많던 언니, 지인과 함께 여행 온 두 꽃중년 여성분들, 나, 동생 그리고 엄마. 공통분모라고는 '여행' 뿐인 여섯 명이 모여 6일간 함께한 여정의 추억을 나눴다.


부드러운 맥주와 맛있는 피자가 곁들여진 서로의 경험담 그리고 살아온 이야기, 그러면서 조금씩 달아오르는 분위기. 이곳에서의 밤을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화 도중 불쑥 와닿았다. 그래서인지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낯선 듯 새로웠던, 소중한 추억 하나가 추가된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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