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를 떠나 도착한 숙소는 산속의 펜션 느낌이 나는 작은 호텔이었다. 깜깜할 때 도착해서 그런지, 피곤해서 그런지 찬 공기가 유독 빠르게 파고들었다. 차가운 감각만이 곤두섰지만 맑은 공기를 마시고,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감상하다 보니 괜스레 감성에 젖어들었다. 낯선 곳의 밤도, 이제는 익숙한 듯 푹 휴식을 취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 밖 풍경이 궁금해서 몸을 일으켰다. 밖은 '가을의 정석'이었다. '주문하신 가을 나왔습니다~'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만연한 가을이 눈앞에 있었다. 주섬주섬 혼자 산책을 나갔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뛰었다. 막상 뛰어보니 별 건 없네 라는 생각이 들 때쯤까지 그렇게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졌다.
이른 준비를 끝내고, 새로운 여행지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님 이야기를 듣고, 견과류를 챙겨 먹고, 여행 노트에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도 틈틈이 적었다. 챙겨갔던 책도 원하는 속도에 맞춰 넉넉히 아껴가며 읽었다. 이동 시간에 잠시 눈을 붙여도 됐지만, 책을 읽는 행위가 내게는 쉼이자 힐링이었다. 짧지 않은 이동 시간이 싫지 않았던 이유이자, 패키지여행 속 '자유'였다.
버스는 부지런히 이동해 '비엔나'에 들어섰다. 때맞춰 가이드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오스트리아는 관광산업이 발달했고, 동계올림픽을 두 번 개최했을 정도로 스키에 진심인 나라라고 한다.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부품인데 오스트리아의 공장이 쉬면 옆나라 독일은 벤츠와 BMW를 생산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스와로브스키의 나라, 비엔나커피의 나라, 그리고 모차르트의 나라··· 이런저런 정보가 쏟아졌다.
'쇤브룬 궁전'을 관광하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쇤브룬은 아름다운 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쇤브룬 궁전은 중세시대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름 휴양지로 만들어진 곳으로, 당대의 권력을 상징하듯 방이 1,441개나 된다. 관광객들에게는 그중 일부만 공개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머물렀던 방과 음악 신동 모차르트가 피아노 연주를 한 방이 그중 가장 유명하다.
궁전 외부에는 드넓은 정원이 궁전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이드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탈리아식 정원은 조각과 분수 위주로, 프랑스식 정원은 가꾸고 다듬고 모양내는 방식으로, 그리고 영국식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낸다고 한다. 쇤브룬 궁전은 프랑스식 정원으로, 좌우대칭되게 조성되어 있다. 꽃은 대부분 월동준비에 들어가 있어서 빈 공간이 느껴졌다.
그런 아쉬움이 무색하게 '가을' 정원 또한 낭만 있었다. 정원을 거느리다, 멈췄다, 잠시 벤치에 앉았다, 이리저리 홀로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았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나무들, 샛노란 궁전, 분수, 그리고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가을의 모습을 이곳에서 보았다.
쇤브룬 궁전에 이어 '벨베데레 궁전'을 관람하기 위해 이동했다. '벨베데레' 궁전은 귀족의 여름 별장으로 지어졌고, 현재는 미술관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작 중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는 복제품이 가장 많은 작품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작품이자, 세계인이 죽기 전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작품 1위에 꼽히기도 했다. 이 작품은 단 한 번도 오스트리아 밖으로 이동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님께서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애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다. 클림트는 귀금속 세공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세월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다. 그런 클림트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있었는데, '에밀리 플뢰게'였다. 에밀리는 클림트의 예술적 파트너였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전통적인 로맨스로 이어지지 못했다. 클림트는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고, 그런 모습을 알게 된 에밀리는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런 그였지만, 에밀리는 클림트가 진정으로 사랑한 단 한 여인이자 영원한 사랑이었다. 클림트에게 그녀는 사랑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였다. 에밀리가 떠난 뒤 구스타프 클림트는 작품에만 몰두했고, 그때 《키스》 작품이 탄생했다.
두 남녀가 화려한 꽃밭 위에서 키스를 하고 있다. 여성의 발은 낭떠러지에 걸쳐져 있다. 황금빛으로 감싸진 모습을 자세히 보면, 남성은 네모 형태로 여성은 원형 형태로 그 모습이 표현되었다. 금을 다루던 집안의 아들답게 클림트는 금박으로 작품을 뒤덮었다. 배경도, 사랑을 나누는 모습도 황금색을 사용하여 특유의 세계관을 표현했다.
클림트는 생전에 본인 작품에 관한 그 어떠한 해석도 남기지 않았다. 정답은 없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자유롭게 감상했다.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따라 올라가며 자세히 보았다. 표현해 놓은 것에 나름 스토리를 그려가며 해석해 보려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특별했고, 충분히 작품 앞에 머물렀다.
유명 작품의 원본을 몰입해서 감상해 보는 경험을 했다. 아는 만큼 다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작품을 즐겼다. 다른 작품들도 느긋하게 감상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조금 남긴 채 발걸음을 뗐다. 짧게나마 산책하며 아름다운 궁전의 모습을 다시 눈에 담았다. 푸른 하늘 아래의 하얀 궁전, 하늘을 닮은 호수, 그리고 그 모두를 감싸는 단풍나무들.
'아름답다'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아름답다는' 아름다운 말을 이토록 많이 써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원 없이 아름다워했다.
여운 가득한 관광을 마무리하고, 비엔나의 번화가 '게른트너 거리'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한 시간 이상 자유시간을 가졌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거행된 '슈테판 대성당'을 보고, 여기저기 상점들도 구경했다. 《키스》 작품 엽서 한 장도 기념으로 사고, 간식도 먹고, 저녁도 먹었다.
낮에 중세시대의 화려한 모습을 봤다면, 저녁에는 현대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즐겼다. 오스트리아 비엔나가 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에 손꼽히는지 알 것만 같은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