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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몽마르트르, 루브르박물관, 센 강

여행은 영원보다 순간에 가깝다

by 미리



여행 첫날, 어김없이 현지 시각으로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약간 들뜬 마음과 고요하고 차분한 새벽. 그래도 두 번째 유럽이라 그런 지 시차에 어색함은 없었다. 준비를 끝내고 나면 알찬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몸도 눈치껏 아는 듯했다.


준비를 마치고, 로비에 조식을 먹으러 갔다. 차려진 게 많지는 않았지만, 접시를 조금씩 채워갔다. 식사를 시작하는 데 그 순간, 그제야 여행지에 온전히 도착했음을 알아차렸다. 분주히 움직이면서 골라 담는 사람들, 접시 내려놓는 소리, 수저끼리 부딪히는 소리 ··· 조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여행자의 감각을 조금씩 깨워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동네 산책을 했다. 어쩌다 보니 까르프 마트 오픈런도 하고, 필요한 물건도 샀다. 그렇게 한가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버스에 올라탔다. 출발하기 전, 뒷 좌석에 앉은 두 친구분의 대화 소리가 귀에 살며시 들려왔다.


"유럽 간다 간다 했는 데 오기는 왔네, 우리가" "그래, 간다 간다 하고 안 가는 거보다 낫지~"

그런 곳에, 여기에 나는 또 와있다.






벅차오르는 마음, 창 밖 너머 푸르다 못해 빛나는 초록빛 나무들, 저 멀리 빼꼼 보이는 에펠탑, 감성에 젖을 때쯤 버스는 '몽마르트르'에 도착했다.



언덕길을 오르면서 위로는 대성당을, 뒤돌아서는 시내 전경을 눈에 담았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이 위치한 곳이어서 조금씩만 올라도 곳곳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산책하는 느낌으로 언덕에 올랐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대성당의 왼쪽 길로 들어서서 올라갔더니, 예쁜 식당과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캐리커쳐와 풍경화를 그리는 화가들이 보였다.


그때 가이드님이 말씀하셨다.

"이곳에서 파리의 예술과 낭만이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의 몽마르트르는 아주 가난한 동네였다고 한다. 파리 시내는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외곽의 달동네인 이곳에 굶주린 예술가들이 자연스레 몰려들었다. 고흐, 피카소, 수잔 발라동, 드가, 르누아르, 헤밍웨이 등 세계적인 화가, 작가, 음악가들이 이곳에 머물며 창작하고 생활했다.


특히 이곳에 싼 술이 보급되면서 선술집들이 많이 생겨났는 데, 예술가들은 술을 마시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작품 토론을 하며 교류했다.


당대 예술가들의 단골 술집이자 아지트
빈센트 반 고흐가 항상 앉았던 자리


젊은 무명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여 술을 마시며 나누었을 예술의 혼과 열정, 그리고 그들의 청춘.


예술가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가 잠시 멈춰 서서 그 모습을 상상해 보려 했다. 낭만을 원했지만 현실은 시야에 들어오는 관광객들이 많아 그 분위기를 느껴볼 수 없었다. 그런 아쉬움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 애써 발길을 돌렸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집, 예쁜 노천카페들, 벽화, 그리고 생각보다는 아담했던 그 유명한 '사랑해 벽'을 구경했다. 세계 각국의 언어들 중, '사랑해', 그리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한글을 보곤 반가워했다.



관광객들이 더 몰리기 전, 알차게 몽마르트르 언덕 투어를 마쳤다. 훗날 이곳에 다시 온다면, 빈센트 반 고흐가 항상 앉아서 술을 마셨던 그 자리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챙기고 싶다. 몽마르트르 벤치에 앉아서 노을빛 아래의 파리 전경도 눈에 담고 싶다. 언젠간 다시 올 날을 기약 없이 바라며.






한 중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두 번째 목적지인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많았지만, 현지 가이드님 덕분에 여차여차 거의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입장했다. 파리의 심장이자, 세계 3대 박물관에 꼽히는, 세계 최대의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 작품들을 다 감상하려면, 1분에 한 작품씩만 봐도 3주가 넘게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보니 패키지여행 특성상, 일부 작품들 위주로 관람하는 코스를 따라서 이동했다.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루브르 박물관의 3대 핵심 작품은 모두 감상했다.


밀로의 비너스


'밀로의 비너스'는 1820년 그리스 밀로스섬의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2천 년 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발굴 당시 양팔은 절단된 상태였다고 한다. 사과를 쥐고 있는 손이 추가로 발견됐고, 이를 토대로 양쪽 팔을 복원하려 했으나 그 어떤 복원 구상도 지금의 모습보다 아름답지 않았다고 한다. 팔이 없어서 오히려 몸의 곡선과 황금비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


이 작품은 해전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사모트라케 섬에 세운 대리석상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승리를 상징하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묘사하였다. 뱃머리 위에 발을 올리고, 두 날개를 활짝 펼쳐 앞을 향해 기세등등 서 있다. 아래는 투명한 얇은 천을 두르고 있는 데, 주목할만한 점은 물에 젖은 듯한 세세한 주름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치열한 해전의 비바람, 파도를 뚫고 승리를 쟁취한 희열을 느끼게 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브랜드 '나이키'에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니케의 영어식 발음이 나이키이고, 날개와 옷자락에 흐르는 선에서 영감을 받아서 현재 나이키의 로고가 탄생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작품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작품의 실제 크기는 정말 작았다. 맨 앞줄까지 와서 작품을 마주했을 때, '명화가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상인 느낌이었다. 다소 거리감이 있어서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모나리자의 미소를 보았다.


작품성에 매료된 건지, 작품 자체가 지닌 가치를 간직하고 싶은 건지, 잘 몰랐지만 가까이에서 여러 번 보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이동하면서도 모나리자의 눈만 다시 쳐다봤는 데, 진짜로 나를 따라 시선을 주는 느낌을 받아서 신기하기도 했다.







조금 더 오래 박물관에 머물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동유럽 여행 때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쇤브룬 궁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화려한 궁전 내부를 여기저기 관람하며, 당대의 웅장함을 경험했다. 그리고는 이동해서 저녁 식사를 하고, 에투알 '개선문' 근처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는 센 강 야경 투어를 위해 선착장에 도착했다. 탑승 전,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 데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유람선 2층 의자에 앉아서 우아한 밤을 보낼 줄 알았는 데, 현실은 1층으로 다시 내려가야만 했다. 1층은 자리가 꽉 차있어서 기대어 서서 바깥을 바라봐야 했다.



회색 빛의 파리, 애써 우수에 찬 느낌으로 바라보았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비바람은 계속 불고, 날씨는 쌀쌀해졌다.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유람선이 에펠탑에 곧 가까워질 것 같아서,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천천히 이동해서 유람선은 다리를 지나 코너를 돌았다. 그리고는 에펠탑이 정말 갑자기, 가까이 눈앞에 놓였다. "우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는 거짓말 같이 딱 그 순간, 비가 그쳤다.


빗줄기가 가늘어진 게 아니라, 마법처럼 뚝 그쳤다. 이 마법 같은 순간에 뒤에서 누군가가 "비현실적이다. 정말, 비현실적이야."라는 말로 감동을 표현했다. 그랬다. 정말로 비현실적으로, 극적으로 아름다웠다.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다.


비바람이 낭만을 걷어간 줄 알았다. 낭만을 빼앗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궂은비에도 자리를 지킨 보람이 있었다. 에펠탑에서 서서히 멀어졌지만, 그 순간의 감격은 잊지 못할 순간이, 추억이 되었다. 한 시간 내내 비가 왔다면, 못내 아쉬웠을 시간이었고 기억이었을 텐데 말이다.



여행은 영원보다는 순간에 가깝다.

순간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위해 여행하며 영원을 꿈꾼다. 여행 첫날부터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글을 쓰면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감상했다. 비 오는 날의 파리를 사랑했던 주인공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Paris in the Rain'를 경험하고, 여행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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