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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융프라우 투어

여행은 날씨로 한다

by 미리



여행 셋 째날, 아침에 눈을 뜬 곳은 스위스, 그리고 통장에는 월급이 들어와 있었다. '여행하면서 월급도 받는다'는 사실은 여행해도 될 자격이 있다고, 그래도 된다고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일과 여행'이 서로 가장 멀리 떨어진 바람직함이랄까.


바깥 풍경이 궁금해서 일찍 준비를 끝내고 나갔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한적한 동네, 차가운 공기, 감사할 정도로 맑은 푸른 하늘, 눈앞의 설산, 꽃밭, 지적이는 새소리···





기차역까지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천천히 걸어내려갔다. 저 멀리 눈 덮인 하얀 산이, 대낮의 달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알록달록한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같이 어울려 있었다. 여기는 이런 풍경이 일상일 '스위스'고, 이곳을 배경 삼아 걷고 있다는 사실은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가 선택한 장소에 잘 왔다'는 기분을 선사했다.





이른 아침 기차역은 고즈넉하고 선명했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가만히 앉아 있기는 풍경이 아깝고, 그렇다고 딱히 할 건 없는, 한적한 시간이 이어졌다. 여행이 내게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계속 속삭였지만, 이리저리 구경하며 사진 찍고, 자판기 커피도 한 잔 뽑아보고, 저 멀리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열차가 한 대가 들어왔다. 어쩌다 서둘러 타게 돼서 일행 중 두 분이 우리가 탑승한 첫 번째 칸에 타지 않고, 세네 번째 칸에 그냥 올라타셨다. 탑승 후, 인솔자님은 두 분이 안 계신 걸 확인하셨다.


인솔자님이 안절부절 당황해하셨다. 열차 칸 사이에 이동이 되지 않기도 했고, 나중에는 분리돼서 운행하는 경우도 있어서였다. 인솔자님은 다른 칸에 탑승하고 있는 다른 여행사 팀에게 전화로 확인을 했다. 여차여차 우리 팀은 이 열차 다음 열차에 탑승해야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간역에 내리기로 결정이 났다. 인솔자님도 이런 경우가 처음 이셔서 미안해하셨다. 알고 보니 현지 직원이 다른 팀과 착각해서 빨리 올라타라고 했던 거였다. 일행 모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며 속상해하는 인솔자님을 위로했다.



패키지여행에는 변수가 잘 없는 편이긴 하지만, 나 또한 크게 반응하지 않는 편이어서 괜찮았다. 그보다도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모든 것이 다 너그러웠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어서 전 날 걱정해서 그런 지, 눈앞의 햇살이 유독 따사로웠다.




여행은 날씨로 한다

날씨가 맑아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었다. 건물도, 기차역도, 산도 아닌 '햇살'을 찍었다. 날씨가 좋아서 들뜬 감정을 순간으로 남겼다. 사진을 다시 보는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떠오른다.



열차를 다시 타고, 중간에 내려 산악열차에 탑승했다. '스위스' 열차 여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창 밖 너머로 보였다. 맑은 하늘, 설산, 폭포 물줄기, 푸른 들판, 계곡에서 카약 하는 사람들···, 한적한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었다.




산도 높고, 눈도 많아서 스키 타는 사람들이 유독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광활한 자연 놀이터에서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이런 풍경을 배경으로 활주 하는 기분은 어떨지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휴가를 보통 한 달씩 길게 보낸다고 하는 데, 스위스에서 휴식하며 저렇게 스포츠를 즐기는 삶도 참 멋진 것 같다.




환승해서 융프라우요흐 열차를 타고 가파른 산을 올라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융프라우 정상에 도착했다. 얼음궁전이라 부르는 곳을 먼저 관광하고, 스핑크스 전망대로 올라갔다. 햇살에 한 번, 새하얀 눈에 한 번 더 눈이 부셨다. 빙하와 알프스산군이 파라노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새하얀 눈부심에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우산이 아니라 선글라스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문뜩 하며, 눈앞의 풍경을 감상했다. 눈도 만져보고, 바람도 느껴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풍경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갖고 즐기지는 못했지만, 선명하게 이곳의 절경을 만났다는 그 사실만은 확실하게 다가왔다.



오전의 시간을 눈부시게 보내고, 내려갈 때는 열차가 아닌 곤돌라에 탑승했다. 천천히 내려가면서 바깥 풍경을 감상했는 데, 올라갈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풍경을 마주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에 걸맞을 법한 집들이 아기자기 어우러져 있었다. 인솔자님이 이렇게 좋은 날씨는 정말 드물다고 계속 말씀해 주셔서 오늘의 여행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내려와서는 인터라켄 시내로 가서 식사를 했다. 한식을 든든하게 먹고, 이탈리아로 넘어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이동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융프라우 투어 때 참고 기다려 준 비가 그제야 내렸다. '운 좋은 여행'을 추억하며, 창 밖 풍경을 구경했다. 산과 유채꽃밭, 계곡,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호수를 배경 삼아 낮잠을 잤다.




스위스는 스위스다웠다. 짧게 관광해서 아쉬웠지만 스위스의 대자연을 경험해 본 것으로 만족했다. 남은 시간에는 유튜브로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탈리아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지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북부 중부 남부 조그마한 도시들의 특징들도 살펴봤다. 이탈리아의 매력을 차차 흥미롭게 알아갈 때쯤 밀라노에 도착했다.




유명 현지 레스토랑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피자와 이탈리아식 돈가스를 먹으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일행분들과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같은 고향 대구에서 오신 부부 셨는 데, 나를 좋게 지켜보셨다고 말씀하셨다. 엄마와 여행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고 조심스럽게 아드님을 소개해 주셨다. 들어보니 같은 직업을 가지신 분이셨고,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다.


'인연이 닿는다면 닿겠죠' 하며 웃으며 식사 자리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몇 주 뒤 어느 주말에 연락이 왔다. 인연이 닿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몇 번의 만남을 가졌고, 좋은 사이로 발전했다. 그날의 시간이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일찍 들어갔다. 룸 컨디션이 깔끔하고 괜찮아서 이날은 유독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이탈리아를 여행한다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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