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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 투어

여행이 내게 말을 걸었다

by 미리


어느덧 여행은 중반부로 향하고 있다. 여행 4일 차, 지나온 시간이 이제는 남은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하루가 주어졌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환기를 시킬 겸 창문을 열었는 데, 햇살이 눈 부셨다. 하얀 이불 사이 어딘가 있던 휴대폰을 찾아 카메라를 켰다. 마침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떠올라서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 '코모레비'를 촬영했다. 현재, 오늘, 지금 딱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그 빛을 순간으로 남겼다.




오늘은 밀라노에서 베네치아로 이동하는 날이다. 그렇다 보니 오전은 거의 이동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인솔자님이 정적을 깨고 말씀하셨다.


"간혹 손님들 중에 베네치아 관광 다 하시고, 저희 오늘 베니스는 안 가나요?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베니스가 여기 나라 말로 '베네치아'입니다. 다들 아시죠? 나중에 딴 소리 하시면 안 됩니다~"


모두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이런저런 인솔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곧장 한 식당에 도착했는 데 준비된 점심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상추에 고기, 마늘, 흰쌀밥을 싸서 먹고, 된장찌개로 마무리했다. 고기도 맛있고, 상추도 신선해서 배부르게 양껏 맛있게 먹었다. 여행은 모름지기 밥심으로 하는 거니깐.









식사 후 조금 더 이동해서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베네치아의 오늘은 하늘도 파랗고, 파도도 푸르게 일렁이고 있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과거 훈족의 침략을 피해 이주한 본토 사람들의 간척으로 도시가 만들어졌다. 기마병들의 말이 시야의 냇가나 강물은 건너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는 건너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넘어올 수 없었다고 한다. 늪지대를 개척해 물 위에 말뚝을 박아 건물을 세우고, 운하를 만들고, 수백 년에 걸쳐 그런 여러 섬들이 모여 지금의 수상 도시 모습이 갖춰졌다.



지도를 보니 이곳이 정말로 '물 위에 떠있는 도시'가 맞구나 싶었다. 현지 투어 가이드님의 베네치아에 관한 설명을 잠시 듣고, 관광지로 이동했다. 햇살이 강해서 더웠지만, 잠깐잠깐 불어오는 초록 바람이 여행을 버티게 해 주었다.





자리를 이동해서 한 포토 스팟에 멈춰 섰다. 베네치아에는 수많은 다리 건축물들이 있는 데, 유명한 다리 중 하나가 바로 '탄식의 다리'다. 두칼레 궁전과 감옥을 연결해 주는 다리인데, 재판을 받고 나온 죄수들이 이 다리를 지나면 세상과 단절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바깥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다리였다고 한다.


탄식의 다리


참고로 베네치아에는 두칼레 궁전 내 피옴비 감옥과 다리 오른쪽의 프리지오니 감옥이 있었는 데, 대표적으로 희대의 바람둥이 '자코모 카사노바'가 피옴비 감옥에 투옥돼 수감생활을 했다. 카사노바는 최초이자 최후로 악명 높던 그 감옥을 탈출해서 도망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감옥과 궁전 외관을 구경한 후, 베네치아의 상징과도 같은 '산 마르코 광장'에 들어섰다. 산 마르코 광장은 종탑, 대성당, 궁전이 모여있는 베네치아의 정치, 종교, 문화의 중심지다. 화려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옛 과거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는 베네치아의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ㄷ'자 형태의 광장 한가운데에 섰는 데, 경관이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규모에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면서, 그 순간 머릿속에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광장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여행이 내게 말을 걸었다.

광장에 서서 시야 가득 주위를 눈에 담고, 시끌벅적함 속의 고요를 느끼는 것을 좋아함을 깨달았다. 여행이 조용히 내게 속삭이며, 내가 여행할 때 언제 가장 충만한지를 알려주었다.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산 마르코 대성당과 종탑 가까이도 가보고, 골목골목 이동하면서 구경했다. '베니스의 상인' 배경지답게, 한 때 세계 최고의 무역 도시답게 상점들이 곳곳에 있었다. 공예품도 구경하고, 기념품샵에서 엽서와 스티커도 샀다. 그리고, 광장에 위치한 한 유명 카페에 들어갔다.


플로리안 카페


'카페 플로리안'은 1720년 문을 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300년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가격이 비싸서 고민했지만, 이왕이면 후회 없이 즐기고 싶어서 이곳을 선택했다. 추가 비용이 들지만, 비용을 따질 시간에 좀 더 머무르고 싶어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광장을 바라보며 여유를 들이켰다. 카페에 잠시 머무를 뿐이지만 여행의 자유와 사치를 누리는 순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베네치아에 와서, 비싼 카페에서 그것도 연주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 비용은 경험이 되었다.



아는 노래가 하나쯤 들려오면 좋겠다고 느낄 때쯤, 알라딘의 'A whole new world' ost가 흘러나왔다. 잠시 음악에, 순간에 집중해 보았다. 마음이 리듬을 타고 웅장해졌다. 한 시간 동안 주위를 더 관광할 수도 있었지만,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야지만 느낄 수 있는 이 여유가 참 좋았다.




자유시간이 끝나고 모이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현지 가이드님께 플로리안 카페에 갔었다고, 근데 확실히 가격이 비싸긴 했다고 말했더니, 가이드님이 웃으시며 툭 한마디를 건네셨다.


"전통을 먹은 거니까요~"


그 말을 듣고 소리 내어 감탄했다. 나는 이곳의 전통을 먹었고, '음악깃든 광장'을 경험했다. 여행은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추억이 된다.




베네치아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곤돌라'다. 설명에 따르면, 수면이 얕아서 긴 노가 실제로는 바닥에 닿은 채로 바닥을 젓는다고 한다. 관광용 곤돌라는 모두 검은색인데 과거 경쟁과 사치가 심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통일되었다고 한다. 또한, 곤돌라를 운항하는 '곤돌리에'는 4개 국어를 구사하고, 역사 문화 등 여러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만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산 마르코 광장을 뒤로하고, 마지막 관광을 위해 수상택시에 탑승했다. 대운하를 이동하면서 걸어서는 보지 못한 베네치아 곳곳을 물 위에서 관광했다. 운하를 끼고 좌우에 빼곡히 이어지는 법원, 시청, 은행, 호텔, 식당, 카페들을 구경했다.


리알토 다리


현지 가이드님의 설명을 들으며,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리알토 다리'도 보고, 물 위에 지어진 여러 건축물들을 흐름대로 보았다. 해가 조금씩 지는 만큼 여행은 서서히 마무리되어 갔다.



사실 베네치아 현지 가이드님이 농담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리액션을 강요하는 스타일이셔서 여행에 다소 방해를 받았다. 물 흐르듯 낭만에 홀딱 빠질 겨를 없이 현실 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환상 속의 도시 중 하나인 베네치아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괴테는 베네치아를 여행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 "세계의 어떤 광장도 산 마르코 광장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네는 베네치아를 '그림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했다. 그런 곳을 하루 반나절만 여행하고 가는 게 아쉬웠지만, 짧아서 오히려 여운이 남았다.



여행을 끝내고 호텔로 바로 이동했다. 일찍 도착한 편이어서 호텔 주위에 있는 마트도 구경하고, 엄마와 동네 산책을 하며 휴식했다. 하루가 참 알뜰하게 길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다음날은 이탈리아의 또 다른 도시 '피렌체'를 여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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