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계 레전드이자 방송인 서장훈은 돈이 많은 것의 장점을 한마디로 정의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오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뼛속까지 느꼈다. 며칠 전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고, 오늘 그에 대한 답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전화를 걸기 전, 나는 몇 번이나 혼자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기분 나쁘지 않은 단어 선택으로. 나의 요구를 합리적인 제안처럼 들리게 할 방법. 2천만 원. 내가 깎아달라고 말해야 할 금액이었다. 그 한마디를 위해 오랜 시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드디어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전화기 너머의 상대는 나를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허리가 저절로 굽혀졌다. 두 손은 기도하듯 모아졌다. 목소리는 한 톤 높아졌다. 비굴함이 섞인, 내가 듣기에도 낯선 목소리였다. 나는 철저한 ‘을’이었다.
결과적으로 2천만 원을 깎는 데는 실패했다. 1천만 원을 깎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재계약 날짜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씁쓸함과 함께, 내가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돈 몇 푼 때문에 내 존엄의 일부를 떼어준 기분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통화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여보, 우리 이번까지만 전세 살자.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서장훈처럼 많은 돈을 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목표는 같다. 더 이상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나의 계획을 다시 점검한다. 수입, 소비, 재테크. 모든 것을 다시 조이고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 2년 뒤 다음 계약 만료 시점에는 내가 먼저 ‘갑’이 되어 통보할 것이다. 재계약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