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의 배신

by 마흔로그

마흔이 되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자연스럽게 건강 관련 책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는 안병수 님의 책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을 읽고 있다. 과자뿐만 아니라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책이다. 어렵지 않은 책임에도 이상하게 읽는 속도가 더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자꾸 책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책장이 넘어가는 순간 ‘라면’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즉시 책을 덮었다.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빤히 보였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라면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잠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을 펼친다. 라면 이야기가 끝나니 이번엔 과자 챕터다. 또 책을 덮는다. 평소 과자를 사 먹는 편은 아니지만 회사 사무실에는 온갖 종류의 과자가 가득하다. 회사에 있을 때 나는 과자를 아주 많이 먹는다.


사탕과 껌은 괜찮았다. 이건 거의 먹지 않으니 남의 이야기처럼 쉽게 읽어 넘겼다. 하지만 곧이어 아이스크림, 패스트푸드, 햄, 소시지가 차례로 등장했다. 나의 오랜 친구 같은 음식들이다. 그들의 유해성에 대한 적나라한 문장들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잠시 독서를 멈추고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책 한 권 읽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책에서 첨가물이 없는 소시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진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왠지 맛이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바에는 그냥 가공식품이 아닌 삼겹살에 소금과 후추를 듬뿍 쳐서 짜고 기름지게 먹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을수록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점점 사라졌다. 세상에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기분이었다. 물론 좋은 음식이 없는 게 아니다. 내가 즐겨 먹던 것들이 대부분 몸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내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제 명확히 알겠다. 하지만 이걸 고칠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바로 ‘세뇌’다. 이런 종류의 책을 몇 권 더 읽는 것이다. 계속해서 가공식품의 단점을 머릿속에 주입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멀리하게 되지 않을까. 하나의 실험이다. 과연 1~2년 뒤 나의 식습관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우선은 도서관에서 몇 권 더 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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