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평소보다 조금 이른 퇴근은 빡빡한 일상 속에서 누리는 작은 사치다. 나는 아내, 아이와 함께 코스트코로 향했다. 코스트코에 가는 길은 항상 즐겁다. 거대한 창고형 매장에 들어서면 맛있는 제품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나를 기다린다. 긴 주차 대기 줄마저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는 곳이다.
오늘은 무엇을 살까. 카트를 끌고 매장에 들어서며 나는 새로운 도전을 꿈꿨다. 늘 사던 것 말고 새로운 물건을 사볼까.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최근 건강 책을 읽기 시작한 나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건을 집기 전에 뒤집어 성분표를 읽는 습관이다.
나는 늘 먹던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뒤를 돌려보았다. 그리고 충격에 빠졌다. 이름도 모를 첨가물과 엄청난 양의 설탕, 과당, 팜유. 익숙했던 제품의 배신이었다. 옆에 있는 제품, 그 옆의 제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즐겨 먹던 그 많은 것들이, 사실은 해로운 물질들의 집합체였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갑자기 코스트코의 모든 물건들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나의 카트에 담긴 것은 고구마, 아보카도유, 소금만으로 만든 고구마칩과 마른미역뿐이었다. 이 넓은 매장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이렇게 없다니. 한편, 아내와 아이는 신이 나서 초콜릿과 빵, 너겟 같은 것들을 카트에 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깨달음을 가족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잔소리가 될 뿐이다. 내가 먼저 변하고, 그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 먼저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길, 마지막 관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푸드코트다. 피자와 베이크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건 성분표를 볼 수 없잖아? 그럼 괜찮은 거 아닐까?’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나는 홀린 듯 불고기 베이크와 양송이 수프를 주문했다.
집에 와서 가족과 나눠 먹은 불고기 베이크는 역시나 맛있었다. 아는 맛이 이렇게 무섭다. 나를 ‘세뇌’시키겠다던 나의 계획은 고작 불고기 베이크 하나에 잠시 보류되었다. 앞으로 나의 식습관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과연 이 맛있는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