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릴 때만 비가 왔으면

by 마흔로그

지난밤 내린 비 덕분인지 더위가 한풀 꺾였다. 오늘 새벽 기온은 22도. 조깅을 하기에 완벽한 날씨다. 습도가 80퍼센트로 아주 높긴 했지만 시원한 온도가 그 찝찝함을 모두 잊게 했다.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몸이 조금 무거운 것만 빼면 모든 조건이 이상적이었다.


가볍게 몸을 풀고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기온의 힘은 대단했다. 최근 폭염 속에서 달릴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몸이 가벼웠다. 스마트워치에 표시되는 페이스와 심박수도 훨씬 안정적이었다. 기분 좋게 전환점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 길. 갑자기 부슬부슬 약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비를 맞으며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시원한 빗방울이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느낌이 좋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출근만 아니었다면 10킬로미터는 족히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6킬로미터만 채운 뒤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마쳤다. 집을 나서니 비가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나는 당연하게 우산을 챙겨 들었다. 하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단 몇 분 사이에 비가 그쳤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니 오늘 더 이상의 비 소식은 없었다. 아, 우산을 괜히 가지고 왔다. 3분만 늦게 나왔어도 이 거추장스러운 짐을 만들지 않았을 텐데.


만원 버스에 올라탄다. 길고 축축한 우산은 흉기나 다름없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온몸에 힘을 주고 우산을 붙든다. 지하철로 갈아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한 손은 넘어지지 않기 위한 손잡이, 한 손에는 우산. 나는 이 우산 하나로 아침 내내 좋았던 기분을 모두 망쳐버렸다.


나는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있었다. 내가 달릴 때만 비가 내리고, 출근할 땐 해가 쨍쨍하기를.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을 뿐이다. 우산을 든 손으로는 책을 펼치기 번거롭다. 오늘의 출퇴근 독서 시간은 그렇게 사라졌다. 에잇,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유튜브 쇼츠나 실컷 봐야겠다. 나의 소중한 출퇴근길 시간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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