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 살 딸아이가 나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전 같지 않다. 퇴근 후 내가 뻗은 손을 아이는 가만히 외면한다. 나랑 있다가도 금세 엄마를 찾으며 달려간다. 비슷한 행동이 며칠 반복되니 서운한 마음이 쌓였다. 나는 아이의 눈을 맞추고 물었다. “요새 왜 아빠랑 안 놀아줘?”
아이가 대답했다. “아빠는 맨날 회사 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아이가 나를 더 멀게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어른의 논리로 아이를 설득하려 했다. “아빠는 돈을 벌러 가는 거야. 그래야 이나가 먹고 싶은 것도 사주고,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있는 거야. 아빠가 돈 안 벌면 엄마가 대신 일하러 가고 아빠가 이나를 챙길까?”
아이는 단호했다. “아니. 엄마는 나랑 있어야 돼.”
그 단호함에 잠시 질투가 났다. 엄마는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 돈은 누가 벌어?”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30초쯤 지났을까. 아이가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할머니.”
예상치 못한 답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와 나는 웃음이 터졌다. 아내는 한참을 더 웃었다. 하지만 나는 금방 웃음을 거뒀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대답 뒤에 숨은 아빠에 대한 서운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웃음 끝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막연히 했던 생각이 있다. 서른 살이 넘기 전에 아이를 낳고 싶다고. 아이와 게임도 같이 하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결국 나는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아빠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아이와 잘 놀아주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아이의 한마디는 그 자신감을 무너뜨렸다. 나는 나의 오랜 계획을 전혀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의 많은 아빠들은 다 이런 과정을 겪는 걸까. 사회생활, 직장, 월급 같은 단어들 앞에서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처음의 다짐을 조금씩 포기하며 사는 걸까.
오늘은 딱히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었다. 비가 내려 출퇴근길이 조금 힘들었을 뿐이다. 굳이 술을 마셔야 할 이유는 없는 날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술을 마셔야겠다. 거창한 이유도 없다. 그냥 조용히 집에서 소주 한잔을 마시며 생각하고 싶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나는 좋은 아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