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의 많은 사람들이 출장을 떠났다. 팀장도, 상무도, 본부장도 없었다. 우리 팀에서는 나와 20대 후반의 막내 직원, 단둘만 사무실에 남았다. 우리는 이런 날을 ‘무두절(無頭節)’이라 부른다. 아무 간섭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직장인의 소중한 명절이다. 나는 막내에게 말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오늘 즐거운 시간 보내자.”
나는 빈둥거리며 평소에 미뤄뒀던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했다. 그런데 함께 있는 막내 직원은 무언가 엄청나게 바빠 보였다. 자리를 뜨지도 않고, 3시간 넘게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평소에 열심히 하는 친구지만 ‘어린이날’에 저렇게까지 할 정도로 일이 많나.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굳어지며 일이 너무 많다고 대답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랬다. 아주 큰일은 없는데 자잘한 일들이 너무 많이 자기에게 몰려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작은 일들 중 몇 가지는 남들은 금방 할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유독 오래 걸리는 종류의 일이라고 했다. 그는 “제가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라며 스스로를 탓하기까지 했다.
직장 생활 1년 차 사원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또 겪어야만 하는 성장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 잘 이겨낼 것도 알지만 나도 모르게 ‘꼰대 모드’가 발동하고 말았다.
나는 후배에게 말했다. “아무도 너의 어려움을 알아주지 않는다.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동료들은 모두 자기 일만으로도 벅차다. 남이 얼마나 힘든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러니 절대,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선배들이 먼저 다가가 물어봐 주는 것이 가장 좋다. 나 역시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을 반성했다. 하지만 물에 빠진 사람도 살려달라고 소리치거나 허우적거려야 구해줄 수 있다. 조용히 물속에 가라앉고 있으면 그 사람이 수영을 즐기는 중인지 위기 상황인지 알 길이 없다.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래야 누구라도 손을 내밀 수 있다.
‘힘들다고 말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리더는 오히려 고마워한다.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솔직하게 상황을 공유해주는 팀원은 조직에 대한 신뢰와 책임감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신입사원 시절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마 그 시절의 나에게 누가 이런 조언을 해주었더라도 용기 내어 실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후배에게 구구절절 말을 쏟아냈다. 그가 나처럼 오랜 시간 혼자 끙끙 앓지 않기를 바란다. 하루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으며 단단한 직장인으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