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돼지머리고기

by 마흔로그

나는 외아들이다. 아버지는 내가 서른이 되기 직전에, 예순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며 다짐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 몫까지 두 배로 효도하겠다고.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그 다짐을 지키고 있을까. 솔직히 말해, 전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무뚝뚝한 아들이다. 평소에는 전화 한 통 없고, 가끔 집에 들러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만 먹고 가는 아들. 아내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들새끼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을 스스로 하곤 한다.


요즘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짧은 글을 적어 벌써 서른 개가 넘는 이야기가 쌓였다. 내가 글을 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지금은 만으로 세 살밖에 안 된 내 딸 때문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 딸이 아빠인 나의 과거를 궁금해할 때쯤 이 글들을 열어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내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셨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이제는 물어볼 수가 없다. 내 딸은 나와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훗날 내가 딸의 곁에 없더라도 이 기록이 나 대신 대답해 주기를 바란다.


가수 싸이의 노래 <아버지>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아버지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 아버지 이제야 난 깨달아요.” 가사 그대로 나 역시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나를 더 아프게 한다. “더 이상 쓸쓸해하지 마요. 이젠 나와 같이 가요.” 나는 가사처럼 아버지와 같이 갈 수 없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쓸쓸히 떠나셨다.


살아계셨다 한들 이 무뚝뚝한 아들이 얼마나 잘해드렸을까. 그러면서도 부질없는 상상을 한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손녀를 예뻐하셨을까. 그가 좋아하시던 돼지머리고기에 소주 한잔을 함께 자주 기울였을 텐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스친다. 아버지는 정말 돼지머리고기를 좋아하셨을까. 아니면 그저 형편에 맞춰 가장 저렴한 안주를 드셨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확인할 길 없는 질문. 또다시 마음이 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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