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더레코드입니다만

by 마흔로그

“이건 오프더레코드인데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듣거나 하게 되는 말이다. 이 말 뒤에는 보통 비공식적인 내용이나 아직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따라온다. 특히 실무자들 사이에서 이 말이 오갈 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약속이 담긴다. ‘이 내용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 공식화되기 전까지는 상사에게 보고하지 말자.’ 지난 8년간의 직장 생활 동안 나는 그것을 당연한 신뢰의 규칙으로 알고 있었다.


어제 나는 협업해 오던 부서의 실무자에게 그 말을 꺼냈다. “오프더레코드인데요.” 우리 부서 임원이 그 부서에 대해 개인적으로 전한 의견을 공유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그저 의견일 뿐인 이야기였다. 나는 좋은 의도였다. 나중에 공식화되어 충격을 받느니 실무자 선에서 미리 대비하고 완충 작용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의도는 처참히 빗나갔다. 내 이야기를 다 듣자마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팀장님께 바로 보고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가 나의 ‘오프더레코드’를 이해하고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지켜야 할 비밀이 아닌 보고해야 할 정보였을 뿐이다. 그동안 협업하며 쌓아온 동료로서의 신뢰가 그 한마디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나는 큰 충격과 함께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최근 대통령실 기자가 엠바고를 어겨 퇴출된 일이 떠올랐다. 엠바고, 그리고 오프더레코드.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그것은 법이나 규정이 아닌 신뢰에 기반한 약속이다. 그리고 그 신뢰를 깨뜨렸을 때의 책임은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물론 나 역시 잘못했다. 나는 그를 너무 쉽게 믿었다.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말은 애초에 내 선에서 철저히 걸러냈어야 했다. 나의 안일함이 동료와의 신뢰도 잃고 잠재적인 위험도 만들어버렸다. 내가 전한 말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아주 크고 아픈 것을 하나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같은 방식으로 일하지는 않는다는 것. 나에게는 동료를 위한 ‘배려’가 그에게는 상사에게 보고해야 할 ‘정보’였다.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8년이 넘는 직장 생활 끝에 이제야 비로소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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