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일상

by 마흔로그

요즘 나는 새로운 기온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 낮 최고기온 38도다. 며칠째 계속되는 이 숫자는 현실감이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33도면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33도만 되어도 컨디션이 날아오를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이 지독한 더위는 나의 일상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 체중도 줄었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꾸준한 달리기로 체력도 붙었다. 그런데도 요즘은 매일 아침 하프 마라톤을 완주한 것처럼 몸이 무겁다. 자연히 마음도 가라앉고 사소한 일에 날카로워진다.


매일 5킬로미터 정도는 거뜬히 달릴 수 있는 체력을 키웠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어제는 덥지 않은 헬스장에서 4킬로미터를, 오늘은 3킬로미터를 뛰고 기진맥진해 멈춰 섰다. 몸이 의지를 따라주지 않는다. 기운과 함께 의욕도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정신적인 활동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인 출퇴근길 지하철에서의 독서가 어려워졌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도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튕겨 나간다.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그저 페이지만 넘길 뿐이다. 집중력마저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기운을 내기 위해 나만의 소울푸드를 찾았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먹을 수 있는 단골 순대국 집이다. 다대기를 푼 뜨끈한 특사이즈 국밥이라면, 이 무력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절반쯤 먹었을 때부터 이마에 땀이 맺혔다. 한 그릇을 다 비웠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식당을 나서는 길은 마치 헬스장에서 막 운동을 끝내고 나온 것 같았다. 그리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 태양이 내리쬔다. 위로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기운만 더 빼앗기고 돌아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이 정도인데, 지금의 내 아이가 어른이 될 미래는 대체 얼마나 더 더울까. 200여 년 전, 토머스 맬서스는 식량보다 인구가 더 빨리 늘어 인류에 위기가 올 것이라 예언했다. 하지만 인류는 기술의 발전으로 그 예언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지구의 온도를 낮추든, 화성으로 이주하든, 평범한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류는 또다시 답을 찾아낼 것이다.


머리로는 그 사실을 믿는다. 하지만 그 거대한 믿음만으로 이 지독한 더위를 버텨내기는 어렵다. 너무 덥다. 지구온난화고 뭐고, 우선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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