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텐션, 나의 컨디션

by 마흔로그

숨 막히는 폭염에 지쳐도, 뼈가 시린 한파에 움츠러들어도, 중요한 보고를 앞두고 예민해져도, 예상치 못한 문제로 머리가 복잡해도,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나의 아이는 늘 똑같다.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언제나 해맑다.


솔직히 그 모습이 힘들 때가 많다. 하루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현관문을 열면 아이는 온몸으로 나를 반긴다. 매달리고 소리치고 놀아달라고 조른다. 아이의 순수한 에너지가 방전된 나의 배터리를 강제로 재가동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저 조용히 전원을 끄고 싶을 뿐인데 허용되지 않는다. ‘아빠가 오늘 얼마나 힘든지 너는 모르는구나.’ 철없는 아이에게 철없는 서운함을 느낀다. 나에게 맞춰주지 않는 아이가 밉기까지 하다.


하지만 반대인 날도 분명히 있다. 나의 실수로 모든 것이 엉망이 된 날, 세상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날, 그런 날에도 아이는 나를 보고 웃는다.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 따위는 모른다는 얼굴로 나에게 안긴다. 그 순수함이 꼬여버린 내 마음을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괜찮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이의 그 밝음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고맙고 사랑스럽다.


결국 아이는 똑같다.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매일 저녁 나는 시험대에 오른다. 오늘 아이의 에너지를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이를 버겁게 느끼는 것도, 구원으로 느끼는 것도, 모두 그날의 내 마음 상태에 달려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그 뻔한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문제는 오늘의 나다. 오늘은 아무래도 아이의 에너지가 버겁게 느껴지는 쪽에 가깝다. 온몸이 무겁고, 머릿속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무언가를 더 감당할 여력이 없다. 왜냐고 묻는다면, 뚜렷한 이유도 없다. 날이 너무 더운 탓일까. 아니면 그저 여러 날들의 피로가 오늘 한꺼번에 몰려온 것일까. 어쩔 수 없다. 나는 그냥 너무 피곤할 뿐이다. 내일은 부디 아이의 밝음이 나에게 빛이 되기를. 오늘은 그저 일찍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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