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나는 아주 행복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행복의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수면 패턴에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아이는 아침 8시쯤 일어나 저녁 8시쯤 잠이 들었다. 완벽한 시간표였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아이의 컨디션에 달린 일이니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아마도 지난 주말이 그토록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와 나 사이에 일어난 몇 가지 일들 때문인 것 같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그저 아이와 어떻게든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온몸으로 간지럽히고, 레슬링을 하고, 바닥을 함께 뒹굴었다. 숨바꼭질을 하고, 내가 휘파람으로 부는 동요의 제목을 맞추게 했다. 동화책을 읽고, TV 만화를 보고, 함께 산책을 나갔다. 카페에 가서 쿠키를 나눠 먹었다. 작고 사소한 일들로 꼬박 이틀을 채웠다.
그러자 아이의 마음이 나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잠자리에 들 시간, 아이는 엄마가 아닌 내 옆에 눕겠다고 했다. 외출할 때면 언제나 엄마 손을 잡던 아이가 내 손을 먼저 잡았다. 걷다가 힘들다며 안아달라고 할 때도 나를 찾았다. 주말 이틀. 아이는 나와의 시간을 즐거워했고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행복했다. 물론 체력은 완전히 방전되었지만 말이다.
모든 것이 좋았던 주말의 끝 일요일 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아내가 내게 무심코 한마디를 던졌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아빠 출근한 거 알면 엄청 울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행복감 위로 아쉬움과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5일은 일하러 나가고 고작 2일 놀아주는 아빠. 그런 내 자신이 너무나 아쉬웠다. 조기 은퇴를 목표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너무 많이 희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오랜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내의 말대로 월요일 아침이면 나와 아이 사이에는 다시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질 것이다. 5일간의 벽이다. 나는 주말 이틀 동안 그 벽을 허물기 위해 애쓴다. 겨우 벽을 허물고 아이와 가까워지면 다시 월요일이 온다.
평일에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주말에만 ‘반짝’ 아빠 행세를 하는 내가 미안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을 통해 한 가지를 배웠다. 거창한 계획이나 비싼 장난감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그저 내가 조금 덜 귀찮아하고 조금 더 아이의 눈을 바라봐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하는 딸아, 이번 주말에도 재미있게 놀자. 아빠가 더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