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육아휴직 기간을 앞두고, 정작 내가 바라는 것은 ‘진짜 쓸모없는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내 삶에서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결코 적지 않았음에도, 이번에는 결이 조금 다른 시간을 더 갖고 싶다는 갈증이 생긴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켠다. 짧은 영상들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난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화면을 끄지만,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어김없이 후회가 밀려온다. '어제 그 30분을 더 잤더라면 오늘 컨디션이 훨씬 좋았을 텐데'라는 계산기 같은 후회. 쉬는 것조차 다음 날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했던 셈이다.
가끔 주말에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며 몇 시간의 자유가 생길 때가 있다. 나는 20년도 더 된 옛날 게임을 켠다. 짧은 자유 시간에 새로운 게임을 배우는 것은 또 다른 노동처럼 느껴지기에, 익숙한 옛 게임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즐거움을 느끼지만,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면 다시 현실의 나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온전한 몰입보다는 남은 시간을 확인하는 조급함이 앞선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급한 업무가 없는 틈을 타 잠시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한다. 처음 10분은 바람을 쐬며 여유를 즐기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느새 불안이 고개를 든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나?', '그사이 누가 나를 찾지는 않았을까?'. 마음의 여유를 찾으려 나선 길에서 나는 다시 불안을 안고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인지, 아니면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책임을 짊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인지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쉬는 것'에도 결과가 필요해졌다는 사실이다.
잠시 짬이 나거나 출퇴근 지하철에서 책을 집어 들지만,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독서는 드물다. 자기 계발서나 인문 서적을 읽으며 나를 조금이라도 '레벨업' 시키려 애쓴다. 힐링이 필요하다며 고른 에세이나 소설조차, 실은 그 시간마저 문해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아침마다 달리는 이유도 비슷하다. 건강검진 수치가 좋아지고 체력이 붙는 것을 확인하며 성취감을 느끼지만, 사실 그 안에는 억지로라도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섞여 있다.
심지어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사회생활'이라는 명목 아래 관리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업계 동료나 선배들을 만나 웃고 떠들지만, 머릿속은 업계 현황과 인맥 관리에 대한 계산으로 분주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기분은 '잘 놀았다'가 아니라 '일을 더 하고 왔다'는 피로감이다. 친구들과 아무런 목적 없이 깔깔거리며 놀던 시간은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나를 더 나아지게 만드는 일에만 시간을 쏟다 보니, 원초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은 곧바로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이번 휴직 기간에는 이 단단한 강박을 깨보고 싶다. 정말 원 없이, 바닥이 보일 때까지 놀아보고 싶다.
어렸을 때 돈이 없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볼 생각이다. 며칠 동안 밤을 새워 게임에 몰입해 보고, 만화책 수십 권을 쌓아두고 연달아 읽으며, 아무런 목적 없이 몇 시간이고 멍하니 산책을 할 것이다. 내 커리어에는 큰 도움이 안 되겠지만 평소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리스트에 넣어보려 한다. 지독한 몸치를 극복해 보고자 춤을 배워보거나, 조각조각 알고 있던 한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자격증을 따보는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생각해 보면 '쓸모없는 휴식'이야말로 가장 큰 쓸모를 지닌 것이 아닐까. 성과와 효율이라는 잣대를 치워버린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나를 진정으로 재충전시킬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채워진 에너지가 있어야만 훗날 복직했을 때, 혹은 그다음 삶의 단계에서 더 큰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휴직은 나에게 '쓸모없는 시간'의 가치를 다시 확인해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