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 3주 전, 힘을 빼니 생기는 일들

by 마흔로그

휴직 시작이 아직 3주 정도 남아있지만, 내 삶에는 벌써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정과 회사, 그리고 나 스스로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바뀌니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소소한 순간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아내와 딸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은 미래의 가치와 비용을 따지느라 늘 분주했다.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종 목표였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숙제'들이 너무 많았다.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일을 더 해야 하며, 자기 계발과 건강 관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 그러다 보니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에도 마음 한구석엔 늘 초조함이 있었다. 마냥 즐겁기보다는 '빨리 이 시간을 보내고 내 할 일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그런 조급함에서 벗어났다. 나에게는 이제 온전히 가족에게 집중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신기하게도 내 태도가 바뀌니 아이가 나를 대하는 눈빛부터 달라졌다. 요즘 이나는 나에게 더 자주 안기고, 수시로 볼뽀뽀를 해준다. 아빠랑 더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덩달아 아이와 노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기분 좋은 선순환이 시작됐다. 집안일을 '어쩔 수 없이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로 여기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빨래를 걷고 청소기를 돌리는 행동에 자발성이 붙자, 아내에게도 여유 시간이 생겼다. 그 여유는 다시 나에 대한 배려로 돌아온다. 반찬 가짓수가 늘어나고, 오히려 나보고 좀 쉬라고 등을 떠밀어준다.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그동안 미래의 행복을 저당 잡혀 현재의 행복을 너무 외면하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깊은 반성이 밀려오는 요즘이다.


회사에서도 마음의 여유가 주는 힘을 실감하고 있다. 월급쟁이의 기본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지만, 나는 늘 그 이상을 욕심냈다. 남들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은 스트레스와 짜증을 세트로 데려왔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그저 이 좋은 회사에서 중간만 해도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피어오른 욕심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휴직을 결정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업무의 연속성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욕심을 덜어내게 됐고, 그저 주어진 임무에만 충실하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동료들은 "휴직하는 게 그렇게 좋냐"며 농담을 건네지만, 사실 이건 '욕심'이 빠진 자리에 '여유'가 들어찬 결과다.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빼고 일하니 업무 결과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이 소중한 경험은 반드시 기억해 두었다가 복직 이후의 삶에도 적용해 볼 생각이다.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니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특히 러닝이 그렇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그날의 컨디션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뛰다가 힘들면 그냥 걸어서 돌아와도 되고, 아주 짧게만 뛰고 들어와도 좋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부담을 버리니 신기하게도 러닝이 다시 재미있어졌고, 결과적으로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거리를 즐겁게 뛰고 있다.


독서 역시 '레벨업'을 위한 도구에서 즐거운 여가로 바뀌었다. 만화책이든 청소년 소설이든 그저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을 부담 없이 집어 들었다. 그렇게 즐거움을 먼저 챙기다 보니, 도리어 예전에는 의무감에 읽던 자기 계발서나 인문 서적들도 다시금 흥미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억지로 지식을 채우려 할 때보다 훨씬 더 깊게 책 속에 빠져드는 경험을 하고 있다.


틈틈이 즐기는 게임도 큰 역할을 한다. 온전히 나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나니, 오히려 다른 일들을 할 때 딴생각 없이 그 시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놀고 싶다'는 갈증이 해소되니 가족과 함께할 때는 가족에게, 업무를 할 때는 업무에 더 밀도 있게 몰입하게 된 것이다.


요즘은 하루를 마칠 때 내일 있을 소소한 즐거움들을 떠올리며 웃으며 잠든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오늘 할 재미있는 일들을 기대하며 웃으며 일어난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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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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