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띠동갑 정도 차이 나는 선배 한 분을 만났다. 휴직을 앞둔 내게 선배는 특별한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내, 그리고 딸아이와 함께 발리의 한적한 곳으로 떠나 한 달 정도 머물다 올 생각이라고 답했다. 선배는 딸이 몇 살인지 물었고, 나는 다섯 살이라고 대답했다.
이미 대학생이 된 두 딸을 둔 선배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언을 건넸다. "다섯 살이면 아빠를 한창 찾으며 놀아달라고 할 때인데, 그때 많이 놀아주세요. 나중에 아이가 크면 아빠가 자식을 찾는 경우가 많아지거든요. 그때는 이미 늦어요." 아이가 아빠를 찾을 때 기꺼이 곁을 내어주어야, 나중에 아이도 그 기억으로 아빠가 자신을 찾을 때 함께해 준다는 말이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내 마음속 깊이 와닿았다. 사실 요즘 들어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남을 위해 살지 말고 나를 위해 살아보자거나, 거창한 인생 목표 대신 소소한 목표들을 하나씩 이뤄가며 살자는 다짐들. 혹시 내가 너무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는데, 선배의 말은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그동안 외벌이 가장으로서 내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라 믿었다. 더 많이 벌면 더 좋은 것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고, 퇴근 후에도 강의 부업을 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휴직을 결정할 때 가장 큰 걸림돌도 결국 경제적인 문제였다. 내가 일을 쉬면 수입이 줄어들 것이고, 그것이 곧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휴직을 눈앞에 둔 지금, 내 생각은 크게 바뀌었다. 돈을 열심히 버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아이를 위한 선택지에는 돈 말고도 다른 소중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잠시 수입에 집중하던 생활에서 벗어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집중하는 것 역시, 아빠로서 내릴 수 있는 훌륭한 선택 중 하나였다.
그 변화는 벌써 체감되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휴직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다. 예전에는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확인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그 아이의 작은 몸짓 하나, 표정 하나를 가만히 눈에 담게 된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그 기쁨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가장 큰 선물이 된다는 것도 깨달아가는 중이다.
최근 어떤 과학 관련 영상에서 인류의 역사는 우주의 역사에서 찰나일 뿐이고, 한 인간의 삶은 그 찰나 속의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그 짧은 인생에서 무언가를 대단하게 이룬 들 얼마나 이룰 것이며, 설령 이루지 못한 들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싶을 뿐이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아등바등 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조금 더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다. 아이가 나를 찾을 때 그 곁에 온전히 머물러 주는 것. 거창한 성공보다는 그런 소소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삶이, 나라는 점 하나를 우주 속에서 가장 빛나게 만드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