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발걸음

by 마흔로그

휴직 개시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주말을 제외하고 업무일로만 따지면 이제 단 여섯 번만 출근하면 끝이다. 9년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인수인계도 거의 끝마쳤다. 어깨를 누르던 업무 부담이 사라지니 마음이 더없이 가벼워진다. 실제 발걸음조차 가벼워졌는지, 팀 동료들이 "왜 이렇게 통통거리면서 걷느냐"라고 한 마디씩 던질 정도다.


단순히 일이 줄어서 기분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휴직을 준비하며 겪는 의외의 경험들이 내 마음을 기분 좋게 끌어올리고 있다.


내가 휴직한다는 소식을 주변 동료들과 협력 부서 직원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렸다. 새로운 담당자에게 인수인계 중이며, 업무 공백이 없도록 조치했다는 메일을 보내고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돌아왔다. 가까운 상사들은 "휴직하지 말라"며 장난 섞인 아쉬움을 표했다. 사실 그들의 말이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은 아닐 터다. 직원이 자리를 비우면 남은 이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 조직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사실 개인의 공백을 금방 메워버린다. 누군가 빠져도 회사는 어떻게든 돌아간다. 그럼에도 상사들이 나를 붙잡는다는 것은, 최소한 이 조직 안에서 내가 '대체하기 까다로운 존재' 혹은 '필요한 존재'였다는 증명처럼 느껴졌다. 휴직에 대한 내 의지가 확고해 보이자, 그들은 "적당히 쉬고 금방 돌아오라"라고 덧붙였다. 특히 우리 회사는 장기 휴직 후 복직 시 원래 부서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배치될 수도 있는데, 상사들은 "반드시 우리 부서로 복귀하라"며 미리 확답을 받으려 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확인받는 것, 거기서 오는 자존감의 상승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상사뿐만이 아니었다. 동료들과 협력 부서 직원들에게서도 연락이 쏟아졌다. 휴직 들어가기 전에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제안들이었다. 이제 곧 현업에서 떠나 한참 동안 보지 못할 사람임에도, 기꺼이 자신의 소중한 점심과 저녁 시간을 내어주려는 이들이 많았다. 일정을 하나하나 채우다 보니 본의 아니게 모든 분의 제안을 수락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그들의 배려를 보며 다시 한번 자존감이 올라갔다. 나는 그들에게 단지 업무 성과가 좋은 사람을 넘어,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이기도 했던 것이다.


물론 모든 이의 반응이 따뜻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와 달리 갑자기 냉소적으로 변한 분들도 있었다. 이제 곧 안 볼 사람이니 굳이 마음에도 없는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내가 무얼 잘못했나, 무엇을 고쳐야 하나' 고민하며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기로 했다.


나를 싫어하는 소수의 냉소에 집중하기보다, 나를 좋게 봐주고 아쉬워해 주는 다수의 온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복직하는 날, 나를 반겨줄 그분들을 떠올리며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이 따뜻한 기억들을 잘 간직해두려 한다.


이제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였고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였다는 기분 좋은 확신을 안고, 나는 이 가벼운 발걸음을 휴직의 문턱 너머로 이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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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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