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그 이유가 다르니 누구와 언제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대한 바람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개인이 온전히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가족 여행은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은 생업이나 학업이라는 굴레에 얽매여 산다. 마음 놓고 긴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느껴지는 일상 속에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훌쩍 떠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주말을 이용해 짧은 여행을 다녀온다 해도, 손에 남는 건 약간의 추억과 월요일 아침을 덮치는 엄청난 피로감뿐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한창 일할 시기라 바쁘고, 부모가 은퇴해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이번엔 자식이 부쩍 커버려 과거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바빠진다. 자식이든 부모든 어느 한쪽이 큰 결심을 하고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 한, 2박 3일 이상의 여행을 함께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설령 자식이 시간을 낸다 해도, 그사이 부모의 건강이 나빠져 기회조차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져볼수록 가족 여행을 위한 ‘최적의 순간’이란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장인어른께서는 몇 년 전부터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여행 가기를 간절히 희망하셨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처남 내외와 우리 부부까지 여섯 명이 함께하는 시간을 원하셨다. 거창한 해외여행도 아니었다. 가까운 제주도나 근교의 괜찮은 펜션이면 충분히 만족하실 터였다. 하지만 상황은 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터진 코로나가 몇 년의 시간을 앗아갔고, 전염병이 잦아들 무렵엔 우리와 처남네에 아이들이 태어났다. 손주들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여행은 또다시 미뤄졌다. 아이들이 세 살, 네 살이 되어 이제 좀 움직일 만해지니, 이번엔 자식들이 바빠졌다. 식구가 늘어난 만큼 커진 책임감에 생업에 더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올해가 되어서야 간신히 주말을 끼워 2박 3일 일정을 잡았다. 서울 근교의 풀빌라에 3대가 모두 모이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이 짧은 짬을 내기 위해 참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나의 어머니는 몇 년째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집 근처를 가볍게 산책하는 일 외에는 야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다. 차를 1시간 이상 타는 것조차 힘들어하시니, 이제 여행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조금이라도 기력이 있으실 때 어디라도 함께 다녀왔어야 했는데, '나중에'라는 막연한 미룸이 결국 '불가능'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 사실이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짐으로 남았다.
결국 여행을 위한 완벽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 여행이 필요하다면 다른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가족 여행이고,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이 돈이나 커리어 같은 속세의 가치라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훗날 삶을 돌아봤을 때, '그때 여행을 가서 했던 후회'와 '여행을 가지 않아서 하게 된 후회' 중 어떤 것이 더 뼈아프게 다가올지 말이다.
사실 나는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낯선 곳보다는 익숙한 집에 있는 것이 좋고, 새로운 음식보다는 늘 먹던 메뉴가 편하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설칠 정도로 예민한 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번 휴직 기간에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부지런히 여행을 다니려 한다. 나중에 정말 가고 싶을 때가 왔을 때, 그때는 환경이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안 가서 후회하기보다는 차라리 가서 고생하고 후회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가서 겪는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 웃으며 말할 추억이 되지만, 가지 못해 생긴 회한은 돌이킬 방법이 없으니까. 이번 휴직은 나에게 그 '미뤄두었던 순간들'을 지금 당장의 현실로 만드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