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시간

by 마흔로그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할 때 진심으로 행복한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아직 확신을 갖고 답하지 못한다.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다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쳐보는 경험이 필요한데, 그동안 나에게는 늘 돈과 시간이라는 제약이 따라다녔다. 돈이 있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충분한 시간을 쏟아야만 본질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번 육아휴직은 나에게 그중 ‘시간’이라는 제약을 걷어내 준 결정적인 기회다.


문득 대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전공 수업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이 내주신 1년 치 등록금이 아까울 법도 하지만, 나는 그때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내 시간을 온전하게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내가 주변 친구들보다 노래를 제법 잘한다는 것을 알았다. 잘하니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됐고, 대학에 가면 노래를 제대로 해보겠노라 다짐했다. 전공은 컴퓨터공학이었지만 마음은 온통 노래에 가 있었다. 보컬 동아리에 들어갔고, 수업 대신 아르바이트에 매달려 강습비를 벌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원 없이 노래에만 집중했다.


그 끝에 얻은 깨달음은 명확했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잘하지만, 노래를 직업으로 삼을 정도의 재능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미련은 없었다. 노래는 취미로 남겨두기로 하고 곧장 군대에 갔다. 복학 후에는 전공에 집중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지금은 지인들의 결혼식 축가를 기쁘게 불러주는 정도로 충분히 만족하며 산다. 그때 원 없이 해봤기에 내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고, 해야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부자는 돈으로 시간을 산다고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대학교 1학년 때도, 그리고 지금도 잠시나마 부자가 된 셈이다.


이제 노래 이외에 어린 시절 하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 보려 한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여러 가지다. 지독한 몸치를 극복하기 위해 춤을 배워보고 싶고, 눈치가 보여 그만두었던 게임을 지겨울 때까지 해보고 싶다. 만화책을 쌓아두고 밤새 읽거나, 악기를 하나쯤 능숙하게 다루고 싶다는 로망도 있다.


이번에는 효율이나 필요성을 따지지 않을 생각이다. 마구잡이로 다 해보고, 재미가 붙으면 더 하고 아니면 미련 없이 그만두려 한다. "그때 해볼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그것이 이번 휴식의 유일한 원칙이다.


현재의 커리어가 아닌 다른 길에 대해서도 가볍게 실험해보고 싶다. 지난 몇 년간 시장을 이기는 투자를 이어오며 ‘전문 투자자로서의 가능성’을 엿보기도 했고, 5년 동안 대학원에서 강의하며 누군가를 가르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전업 투자자로서의 삶은 어떨지, 혹은 전문 강사로서의 첫걸음은 어떤 느낌일지 이번 기회에 작게나마 경험해보고 싶다. 안 해보고 나중에 상상만 하며 아쉬워하기보다, 직접 발을 담가보고 내 수준과 적성을 확인하고 싶다.


나열하다 보니 휴직 기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만약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운 좋게 부가 수입이라도 생겨 가계에 보탬이 된다면, 휴직 기간을 더 늘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직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보낼지 고민하며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제는 휴직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어서 본격적인 시간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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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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