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아휴직은 소위 말하는 '보통의 육아휴직'과는 결이 다르다. 휴직 소식을 주변에 알리면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질문들이 쏟아지는데, 그 문답들을 복기해 보면 내 선택이 사회적 통념에서 얼마나 비껴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맞벌이세요?"
"아니요, 외벌이입니다."
"아이가 아직 어린이집에 안 다니나요?"
"아니요, 곧 유치원에 들어갑니다."
"이직 준비하시려고요?"
"아니요, 지금 회사에 아주 만족합니다."
"돈 많이 버셨어요? 상속이나 투자라도?"
"아니요, 여전히 전세 살고 자가도 없습니다. 딱히 돈 생길 구멍도 없네요."
"어디 몸이 안 좋으신가요?"
"아니요, 전형적인 40대 직장인 수준의 건강입니다. 딱히 아픈 곳은 없어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본질적인 의문으로 수렴된다. "그럼 대체 왜 휴직하세요?" 내 대답은 늘 비슷했다. "그냥 시간을 갖고 이것저것 해보려고요. 정확히 뭘 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고요."
사실 이 모호한 답변 뒤에는 나 스스로를 옥죄는 거대한 압박감이 숨어 있었다. 휴직을 결정하던 초기에는 거창한 목적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은 무엇 하나 선명한 것이 없다. 귀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기분이 날카로워졌고, 이럴 거면 차라리 휴직을 철회하고 복귀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결론은 하나였다. 남과의 비교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설정한 기준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세상의 기준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마흔 넘은 직장인이라면 자가 한 채는 있어야 하고,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야 하며, 골프나 와인 같은 취미 정도는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무언의 합의들. 아이를 사립 유치원에 보내고 특별활동을 시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 그런 기준에 비추어 볼 때, 나의 휴직은 그 모든 '정상적인 성장'으로부터 이탈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 눈에 들어왔고, 그럴수록 나를 더 채찍질하게 됐다.
내 삶을 지탱해 온 단어는 '향상심'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갈고닦으면 중간 이상은 할 수 있다는 믿음. 하지만 이 향상심은 나에게 쉬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퇴근 후 술을 마시거나 주말에 누워 영상을 보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휴식일 리 없지만, 우리는 그 외의 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쉬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이유다.
남과 비교하며 살다 보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희미해졌다. 이때 문득 떠오른 것이 '멕시코 어부' 일화다.
미국 투자 은행의 한 임원이 멕시코 바닷가 마을에 놀러 갔다. 한 어부가 혼자서 고기를 몇 마리 잡아 들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미국 임원은 그만큼 잡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다. 멕시코 어부는 잠깐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더 오래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더 많이 잡지 그러세요?"
"이거면 우리 식구가 먹고도 남는걸요."
"그럼 나머지 시간에는 뭘 하세요?"
"늦잠을 자고, 아이들과 놀고, 아내랑 낮잠을 자고, 저녁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기타를 치죠."
미국 임원은 멕시코 어부가 참 안되었다는 듯 고기잡이에 시간을 좀 더 들여 이익을 낸 뒤에 더 큰 배를 사고 큰 배에서 생기는 이익으로 여러 척의 어선을 사라고 충고했다. 잡은 생선은 중간 상인에게 팔지 말고 통조림 사업을 시작하라고도 했다. 생산 공정 및 유통을 직접 관리하고 조그만 어촌을 떠나 멕시코시티로, 미국으로 진출하면서 사업을 확장하라는 것이었다. 멕시코 어부가 물었다.
"그걸 다 하려면 얼마나 걸리나요?"
미국 임원은 15년에서 20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럼 그다음엔 뭘 하나요?"
멕시코 어부가 물었다. 미국 임원이 웃으며 적절한 시기에 주식을 상장해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다음은요?"
미국 임원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 후엔 은퇴를 하는 거예요. 늦잠도 자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내와 낮잠도 즐기고, 저녁이면 마을에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기타도 칠 수 있지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걸요"
더 큰 배를 사고, 사업을 확장하고, 상장해서 부자가 된 뒤에나 누릴 수 있다던 그 평온한 일상을 어부는 이미 지금 이 순간 누리고 있었다. 미국 투자 은행 임원이 말한 '20년 뒤의 은퇴 생활'은 늦잠을 자고, 아이와 놀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기타를 치는 것이었다. 어부의 대답은 간결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걸요."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절실하다. 남들이 말하는 20년 뒤의 보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의 가치를 확인해야 한다. 이번 육아휴직의 목표는 명확해졌다. 거창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미리 조금씩 맛보며 살아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1년은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