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by 마흔로그

박사 졸업 후, 회사 입사를 앞둔 내게 지도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시작은 참 빨라. 뭐 새로운 거 하면 누구보다 빨리 관련 연구들을 찾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그건 아주 큰 장점이야. 그런데 끝이 약해. 좀 하다가 지겨워지면 진도를 못 빼. 마무리가 중요한데 그게 네 약점이야. 회사 가면 너랑 다른 사람들이 많을 거야. 너는 시작을 잘 끊어주고, 마무리 잘하는 동료한테는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서로 잘하는 거 써먹으란 말이야. 그게 팀이지.”


그때는 그 말이 칭찬인지, 쓴소리인지 조금 헷갈렸다. 회사에서의 경험은 교수님의 말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새로운 연구 주제가 주어지면 남들은 부담스러워했지만, 나는 좋았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념을 잡고, 기술적인 가능성을 검토하는 일이 즐거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일이 구체화되고, 반복적인 개발과 테스트 단계에 들어서면 흥미가 급격히 떨어졌다. 이미 어느 정도 결과가 예상되는 일을 마무리하는 과정은 지루했다. 상사들의 표정에서 실망감이 읽혔다.


불현듯 교수님의 조언이 떠올랐다. 스승은 제자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일에 임하는 태도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초반에 일을 벌이는 것은 잘하는데, 꼼꼼한 마무리는 약합니다. 이 부분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의외로 동료들은 이런 나를 더 신뢰해 주었다.


나는 프로젝트의 시작과 방향 제시에 집중했다. 동료들은 나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아주었다. 우리는 각자의 강점을 활용해 서로의 약점을 채워주었다. 이것이 팀이었고, 조직이 원하는 시너지였다. 완벽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이 아니었다.


나를 정확히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나의 강점과 약점, 내가 즐거워하는 순간과 지루해하는 순간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해내는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열고, 초반의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나의 역할을 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마흔이 되어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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