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하루가 지나가기를

by 마흔로그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세상 모든 것에 짜증이 섞여 있는 듯한 날. 사소한 불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부정적인 생각은 늪처럼 나를 끌어당겨, 평범한 일상마저 버겁게 만든다.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쳤다. 창밖을 보며 오늘 하루가 험난할 것임을 직감했다.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었다. 축축한 공기와 사람들의 한숨이 뒤섞였다. 젖은 우산들이 사방에서 내 바지를 적셨다. 이미 출근길에 하루치 에너지를 다 쓴 기분이었다.


힘들게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갑작스러운 보고서 지시가 떨어졌다. 나의 오전 계획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점심시간을 통째로 반납하고 나서야 겨우 일을 마쳤다. 오후 내내 멍한 두통에 시달렸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영문 모를 회의에 끌려 들어갔다. 의미 없는 단어들이 오가는 동안, 나는 몰래 사내 메신저를 켰다. 동료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대체 내가 왜 여기에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퇴근길에도 비바람은 여전했다. 집은 유일한 안식처여야 했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그 기대는 무너졌다. 아이는 놀아달라며 매달렸고, 아내는 마트에 가야 하니 운전을 해달라고 했다. 아내가 저녁을 차려주려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무언가 차려진 밥을 마주할 기운도 없었다. 누군가의 친절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없는, 지독한 날이었다. 결국 부엌으로 가 라면 하나를 끓였다.


길고 긴 하루가 끝났다. 잠자리에 누워 생각한다. 이건 결국 마음의 문제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이럴 때 참 애매하다. 어리광을 부릴 수도, 힘들다고 어딘가에 솔직하게 털어놓을 곳도 마땅치 않다. 결국 스스로 버티고 견뎌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경험에 기댄다. 자고 일어나면 이 지독한 기분은 리셋될 것이라는 경험. 그리고 다시 괜찮은 날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내가 버티는 유일한 이유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되뇔 뿐이다. 어서 이 하루가, 이 지독한 감정의 흐름이 끝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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