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의 일이었다.
차량털이 절도사건이 연속으로 20여 건 발생한 때가 있었다.
차량 내 현금, 상품권, 내비게이션 등이 도난을 당했는데, 피해액 합계가 약 500만 원 정도로 확인된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시간대는 자정 무렵부터 새벽 4시 사이였다. 사람들이 모두 깊이 잠든 시간대를 노린 범행이었다. 그때 담당 수사팀이 강력 1팀이었다.
약 2개월의 수사 끝에 범인을 잡게 되었는데, 형제가 나란히 잡히게 되었다.
주범인 형은 나이가 18세였고 동생은 15세였다.
형제 모두 형사미성년자는 아니었지만 성인도 아니어서 둘 다 소년원으로 가게 되었다.
형제가 소년원으로 이송되기 하루 전에 정수호 팀장이 형제에게 물었다. 무엇이 제일 먹고 싶냐고.
형제는 서로를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한참을 눈치만 보던 형제는 입을 열었다. 형이 먼저 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유치장에서 나오는 관식은 채소나 김치만 나온다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동생도 형을 따라 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특히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정수호 팀장은 형사과장을 거쳐 경찰서장에게 형제를 유치장에서 꺼내 사식을 사서 먹이겠다고 보고했다.
형사과장과 경찰서장은 당연히 안 된다고 말했다. 도주 우려가 있고, 만약 다른 사고라도 발생하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정수호 팀장은 재차 건의를 했다.
차량털이 절도범으로 잡히게 된 형제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전혀 돌보지 않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그동안 훔친 금품들은 단칸방 월세와 공과금, 식비 등으로 사용했을 뿐, 유흥비나 기타 다른 곳에 사용한 것은 없는 점 등으로 보아 가난으로 인한 생계형 절도범이고, 또 충분히 반성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개선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변호 아닌 변호를 해 주었다.
강력 1팀 직원들이 식사를 할 때 숟가락만 얹어서 함께 먹는 것이니, 식사 한 끼 만이라도 따뜻하게 배불리 먹여서 소년원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해 달라며 건의를 하였다. 결국 경찰서장은 형제가 소년원으로 이송되기 하루 전, 저녁 식사를 강력 1팀 직원들과 소년범 형제가 함께 식사를 하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다만 만약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건이나 사고가 있다면 강력 1팀 팀장인 정수호 경감이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그때의 형사과장과 경찰서장은 지금의 과장과 서장이 아니었다. 인사발령 전의 과장과 서장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빴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원칙과 규정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그때 당시 차량털이범 형제들과 강력 1팀 형사들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먹은 삼겹살의 분량은 20인 분이었다. 그날 형사들은 오후에 간식으로 피자를 나누어 먹은 탓에 삼겹살은 각자 1인분 정도 분량만 먹었을 뿐이었다. 또한 형사 한 명은 집에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저녁 식사 전에 빠진 상황이어서, 다섯 명의 형사들만 저녁 식사를 했었다.
결과적으로 덩치 큰 형사 다섯 명이 먹은 삼겹살은 겨우 5인분 뿐이었고, 형제 둘이서 먹은 삼겹살은 무려 15인분 분량이었다. 정수호 팀장은 물론 강력 1팀 형사들은 모두 무척 놀랐다. 물론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 시기였던 형제였기에 먹성이 좋을 때였다. 그러나 체격도 그리 크지 않은 형제가 앉은자리에서 삼겹살 15인분과 각자 공깃밥 세 그릇씩, 여섯 공기를 눈 깜짝할 사이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모두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형사들과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소년범 형제는 다시 유치장으로 돌아가서 하룻밤을 지낸 후 소년원으로 이송되었다.
형제가 소년원으로 이송된 지 약 한 달 정도 지난 시기에 모 TV 프로그램에서 놀랍게도 형제 중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여러 소년범들의 범죄 동기와 그들의 불우한 환경, 그리고 소년원 출소 뒤의 생활모습과 갱생교육 등 소년범죄에 대해 전반적으로 취재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방송이었다.
그 방송에서 소년범 동생은 서남경찰서에서 소년원으로 이송되기 하루 전에 형사들과 저녁밥을 같이 먹었던 이야기를 하였다. 소년범 동생은 그때 먹은 삼겹살 맛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너무 맛이 있어서 소년원에 와 있는 지금까지도 내내 서남경찰서 후문 쪽 어딘가에 있는 삼겹살 집이 계속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때 맛있는 삼겹살을 사 주며 함께 식사를 했던 형사님들과 친절했던 식당 주인아주머니께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전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었다. 동생은 또 돌아가신 할머니가 구워 주시던 삼겹살을 맛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고도 말했다. 그날의 삼겹살 맛과 저녁식사 자리의 훈훈함이 동생의 뇌리에 강렬하면서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듯 보였다.
방송이 나간 후 곧바로 시청자들로부터 그 삼겹살 집이 어딘지를 묻는 전화가 해당 방송국은 물론이고 서남경찰서에도 쇄도했다. 그때부터 그 삼겹살 집은 평소보다 갑절이나 많은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정수호 경감의 소년범들에 대한 작은 배려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따뜻하게 함은 물론이고 어느 식당의 매출에도 크게 기여한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소년범 형제의 부모는 그들 형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이혼을 했고, 잠시 같이 있던 엄마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어느 날 형제를 두고 멀리 떠나버렸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형제는 혈육이라고는 친할머니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 할머니마저도 형이 열다섯 살 때, 새벽에 폐지를 주으러 나갔다가 뺑소니 차량에 치어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때 이후 형제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 한 채, 세상 속에 내던져진 상태로 살아온 것이었다. 형제가 짧게 들려주었던 그들의 사연은 그러했다.
그때 당시 두 형제는 배도 고팠겠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가족의 사랑이 더 고팠는지도 모른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나이 많은 삼겹살집 주인아주머니가 구워주었던 삼겹살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구워주셨던 삼겹살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삼촌뻘 또는 아버지뻘 되는 형사들과 같이 둘러앉아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을 때에는 따뜻한 가족의 사랑이 더 그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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