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경찰서로 돌아가는 호송 버스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공간을 장악했다.
피의자들은 물론이고 형사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정수호도 아무런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긴장은 늦추지 않고 있었다.
피의자들이 언제, 어떻게 돌발 상황을 만들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호송 버스를 운전하는 형사지원계 경찰관이 압도하는 침묵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라디오 채널을 듣고 싶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버스의 라디오 전원을 켰다. 순간 버스 안 전체를 가득 메웠던 정적을 깨며 남자 진행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라디오 방송 진행자는 이제 곧 연주될 클래식 음악의 제목을 소개하고 있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작곡의 교향곡 제5번 다단조 작품번호 67 ‘운명’ 교향곡이었다.
정수호는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버스에 타고 있는 피의자들이 처한 상황 때문이었다. 오늘 밤 자정에서 내일 새벽 사이에 피의자들이 구속이 되느냐, 아니면 불구속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 처한 피의자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호송 버스를 타고 경찰서 유치장으로 복귀하는 지금 이 순간, 하필이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라니.
호송 버스를 운전하는 경찰관이 튼 라디오에서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이 '운명' 교향곡이라니 타이밍이 참으로 절묘했다. 그래서 정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뻔한 것이었다.
피의자들은 다들 기도라도 하는 듯이 모두 눈을 감고 침묵을 유지했다.
3악장이 끝나고 이어서 4악장이 연주되는 동안에 호송 버스는 어느덧 서남경찰서 정문을 통과하여 본관 건물 중앙 출입구 앞 주차장에 정차했다. 정수호 팀장을 비롯한 6명의 형사들과 피의자 6명은 버스에서 차례로 내린 후, 경찰서 본관으로 들어간 뒤 지하 1층에 있는 유치장으로 들어갔다.
피의자들이 유치장에 들어갈 때도 유치장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이 피의자들을 개별적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면밀하게 신체수색을 하였다. 박상기를 비롯한 피의자 6명 모두 신체수색을 마친 후 자신들이 입감 되어 있었던 유치실로 각각 분리되어 들어갔다. 피의자 여섯 명의 유치장 입감 절차가 모두 끝나자 형사들은 본관 3층 강력 1팀 사무실로 복귀하였다.
“오늘 피의자들 영장실질심사가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끝났고 또 무사히 복귀해서 다행입니다. 모두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부팀장님을 비롯해서 형사들 모두 고생하셨으니 숙직실이든 사무실이든 어디든 좋으니 편안하게 휴식하시죠. 그리고 새벽에 피의자들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고 연락이 오면 법원에 가서 영장 등 서류를 받아서 집행하시죠. 내일부터는 검찰에 송치하기 전까지 피의자들 범죄혐의 입증과 관련해서 증거자료 빠진 게 있는지, 수사서류에 추가할 사항이 있는지 여부도 다시 점검하고 확인해 주세요. 특히 아직 찾지 못한 피해자 이동균의 핸드폰을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을 각자 다각도로 생각해 보시고요.” 정수호 팀장이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하며 당부했다.
“알겠습니다. 법원으로부터 영장발부 관련해서 연락이 오면 강진구 형사랑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부팀장 최진영 경위가 말했다.
“아닙니다, 부팀장님은 그냥 계세요. 법원에서 연락 오면 저랑 막내 강진구 형사랑 둘이서 다녀오겠습니다.” 김강수 형사가 최진영 경위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부팀장님, 그렇게 하시죠. 굳이 부팀장님이 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법원에서 오는 문자 메시지는 막내 강형사 핸드폰으로 오니까요. 연락 오면 김형사가 막내 강형사랑 둘이서 같이 다녀와라”
정수호 팀장이 부팀장인 최진영 경위를 말리는 동시에 김강수 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렇지 않아도 저희가 가려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하!”
김강수 형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정수호는 부팀장인 최진영 경위를 선배로서 깍듯하게 대우해 주고 있었다. 부팀장 최진영 경위는 정수호 팀장보다 네 살이 많은 선배이기도 하지만, 몇 개월 남지 않은 내년 1월에 경감으로 진급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최진영 부팀장을 챙겨주려는 정수호의 배려가 있었다. 사실 둘이서만 있을 때는 정수호 경감이 최진영 경위를 형이라고 부르지만, 최진영 경위는 이를 한사코 말리고 있었다.
최진영 경위의 평소 소신은 이랬다. 경찰은 계급이 있는 조직이고 특히 강력팀은 명령체계와 팀워크가 살아있어야 하므로,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직책과 계급에 맞게 행동하고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후배들이 보는 사무실에서는 더욱 서로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남경찰서 네 개의 강력팀 중에서 강력 1팀이 위계질서가 확실하게 잡혀 있지만, 끈끈한 동료애는 오히려 더 돋보인다는 말이 경찰서 직원들 사이에서 돌고 있었다.
‘띠링’
새벽 2시, 강력 1팀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던 강진구 형사의 스마트폰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수신음이 울렸다. ‘피의자 백기중 등 5명 영장 발부’ 법원에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어? 왜 다섯 명만 영장이 발부되었지?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영장이 기각이 되었다는 건데. 누가 기각됐지?’
막내 강진구 형사는 자신이 예상한 것과 다른 문자 메시지를 받자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법원에서 오는 문자는 간단명료했다. 극히 절제된 내용이었다. 늘 그랬다. 자세한 영장발부 사항을 알려면 법원에 도착해서 영장 등 수사서류를 돌려받아 봐야만 알 수 있었다. 막내 강진구 형사가 정수호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방금 법원에서 문자가 왔는데요, ‘백기중 등 5명 영장 발부’ 이렇게만 문자가 왔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한 명은 영장이 기각된 것 같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법원 당직실에 가서 서류를 되돌려 받아봐야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여섯 명 모두 영장이 발부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한 명이 빠졌네요.”
“어, 그래? 알았어. 새벽시간이니까 안전하게 운전하고, 김강수 형사랑 둘이서 법원 잘 다녀와. 그리고 법원에서 출발하기 전에 나한테 다시 연락 줘. 나도 경찰서로 나갈 테니.”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김강수 형사와 둘이서 다녀오겠습니다.”
정수호는 자신이 우려하던 일이 결국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총책 박상기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이제 확신에 가까워졌다. 정수호는 앞으로 진행될 일들이 왠지 복잡하고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정수호는 강진구 형사와 전화 통화를 끝내고는 집에서 나와 차를 몰고 경찰서로 향했다. 강진구 형사로부터 법원에서 출발한다는 전화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강형사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서남경찰서로 차를 몰았다.
정수호가 경찰서 강력 1팀 사무실에 들어가서 자신의 의자에 앉아 있을 때 강진구 형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팀장님, 방금 법원 당직실에 도착해서 수사서류를 돌려받았는데요, 부동산 사기 총책 박상기에 대한 영장만 발부되지 않고 기각되었습니다.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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