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적증거(物的證據)

by 정글월

사유지 '우토란트'




물적증거(物的證據)




부동산 관련 사기 사건은 경찰서 수사과 소속의 지능범죄수사팀이나 경제팀에서 수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부동산 사기 사건은 살인을 포함하는 사건이었다. 또한 조합원 3명이 업무대행사 측의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다가 스스로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비극적인 일이 연이어 발생하였다.


사건의 심각성을 알게 된 서남경찰서에서는 부동산 사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살인사건이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에, 경찰서장의 지시로 형사과 강력계 강력 1팀에서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하게 되었다. 강력범죄수사팀 중에서도 강력 1팀이 선정된 것은 사건 수사에 있어서 책임감이 있고 팀워크가 돋보이는 강력 1팀을 형사과장이 경찰서장에게 적극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백기중 등 피의자 5명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과 박상기의 석방 절차를 위해 정수호 팀장과 김강수 형사, 강진구 형사 등 3명이 유치장에 들어갔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유치장 근무 경찰관이 박상기가 잠을 자고 있는 유치실 앞으로 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박상기의 이름을 불러 잠을 깨웠다.


“박상기 씨, 일어나세요. 박상기 씨!”

“아, 왜요? 지금 몇 신데요? 왜 깨우는데요?”

박상기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박상기 씨 석방입니다.”


유치장 근무 경찰관의 ‘석방’이라는 말에 박상기는 반색을 하며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

“석방이요? 석방? 그래, 난 나갈 줄 알았어! 내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난 서민들한테 아파트를 싼 값에 공급하려고 한 것 밖에는 없는데 말이야.”


“조용히 하고 나오세요. 다른 사람들 다 자고 있잖아요.”

유치장 근무 경찰관이 박상기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박상기가 나오도록 유치실 문에 걸려 있는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어주었다.


박상기가 큰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다른 유치실에 각자 잠들어 있던 다른 피의자들도 하나둘씩 잠을 깨기 시작했다.


그때 피의자 백기중이 잠에서 깨어 유치장 근무 경찰관에게 물었다.


“경찰관님, 저는요? 저희는 석방 안 되나요?”

그때 정수호 경감이 백기중에게 영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박상기 씨만 석방됩니다. 백기중씨 등 다섯 명은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으니 잠시 뒤 구속영장을 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백기중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멍하니 정수호 팀장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다른 유치실에 있는 자신의 동료들을 한 번씩 둘러보았다. ‘콤포하임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사기 사건과 관련하여 유치실에 감금되어 있는 피의자들 다섯은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경찰서 유치장 안의 유치실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밀폐된 방이 아니다. 튼튼한 쇠창살로 벽면이 이루어져 있어서 다른 방의 피의자들의 행동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백기중 등 피의자들은 서로의 모습은 볼 수 있었다. 유치실의 이러한 구조는 유치장 근무 경찰관이 피의자들을 감시하면서, 피의자들이 자해를 하거나 돌발행동을 하는 것을 빨리 발견하고 조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아니, 왜 우리는 석방이 안 되고, 박상기 사장님만 석방됩니까? 우리는 그저 시키는 대로 일만 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동균 씨를 폭행하기는 했어도 죽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요. 그리고 박상기 사장님이 이동균 씨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손 좀 봐주라고 시켰는데, 왜 우리는 석방이 안 되고 박상기 사장님만 석방이 됩니까? 저기요, 사장님! 말씀 좀 해 보세요. 예?”

백기중이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박상기와 정수호 팀장을 번갈아 쳐다보며 언성을 높였다.


“아니, 백기중 상무! 이 사람아! 내가 언제 손 좀 봐주라고 했어? 어? 이 사람이 생사람을 잡고 있네. 이동균 그 사람이 자기 손으로 스스로 계약서에 사인을 해 놓고 나중에서야 사기니 뭐니 하면서 계속 업무를 방해하길래, 알아듣기 쉽게 이해시키라고 자네들한테 말한 것이지, 내가 언제 그 사람을 때려죽이라고 시켰어? 어?”

박상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백기중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소리를 지르고 소란을 피워! 조용히 하세요! 여기에 당신들 회사 사람만 있는 게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도 자고 있다고. 조용히 하세요!”


유치장이 소란스러워지자 유치장 근무 경찰관이 피의자 박상기와 백기중을 나무라며 조용히 하도록 지시했다.


유치실 밖으로 나온 박상기는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자신의 소지품을 챙겨 유치장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 쪽으로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때 정수호가 박상기를 잠시 멈춰 세웠다.


“박상기 씨, 지금은 석방되지만 곧 다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어디 멀리 가지는 마세요. 특히 해외에는 갈 생각도 하지 마세요. 박상기 씨에 대해서 출국금지 조치를 이미 취해 놓았으니까요. 미리 말해두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해서 출국금지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안심하고 거리를 활보하면 안 될 겁니다. 그리고 해외로 도주하려는 생각은 더욱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정수호 경감이 차분하지만 강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지금 나한테 협박하시는 겁니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사람을 구속하려고 하더니, 이제는 담당 형사 팀장이 나한테 협박까지 하는 겁니까? 내가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박상기는 화를 내며 유치장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정글월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정글월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꿈 많던 학창시절에 시, 수필, 소설 등을 끄적이며 작가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객기를 부렸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진짜 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6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4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4화의심(疑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