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베레(béret)

by 정글월

사유지 '우토란트'




검은 베레(béret)




“우리와 같이 가기로 결정한 사람은 손을 든다.”


정수호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머지 훈련병 동기 두 명도 손을 들었다.


“좋아. 세 사람은 지금 우리와 같이 간다. 내일 오전부터 테스트가 있을 예정이다. 테스트는 푸시업 100개, 윗몸일으키기 100개, 턱걸이 100개를 정확한 자세로 빨리 마친 순서대로 선발한다. 즉 선착순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 테스트 후에 400미터 달리기, 잠영으로 50미터 수영하기, 2킬로미터 달리기, 100미터 수영하기 순서로 테스트를 한다. 물론 순서는 바뀔 수도 있다. 그것도 역시 빨리 들어오는 순서대로 선발한다. 그다음 태권도 겨루기, 소총사격 25m, 100m, 250m 순서로 테스트를 한다. 결과는 테스트 후 곧바로 나온다. 질문 있나?”


“훈련병 정수호! 질문 있습니다! 최종 합격하면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정수호가 물었다.


“테스트에 최종 합격하면 그때 말해준다. 그리고 우리 부대와 관련된 모든 것은 기밀사항이다. 따라서 기밀에 해당하는 것에 대한 질문은 일절 대답하지 않겠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가서 테스트에 응하게 되면 합격, 불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보안서약서를 작성하고 서명 날인해야 한다. 너희들이 보고, 들은 모든 것에 대해서 일절 발설하거나 유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다. 보안서약서를 작성한 순간부터 그 이후에 만약 한 마디라도 발설하거나 유포하면 법적 처벌이 따를 것이다. 다른 질문 있나?”


“없습니다.”


세 명의 훈련병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이 대답했다.



정수호와 함께 검은 지프차량 뒷좌석에 올라탄 훈련병 동기생은 김성규, 정영욱이었다. 훈련병 세 명의 소속은 아직 신병훈련소였다. 따라서 체력 테스트 등 모든 테스트에 합격을 해야만 그들의 소속이 변경될 것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가슴에 있는 이름표와 얼굴만 보고 누구인지 알았을 뿐 같은 소대가 아니라서 아직 서로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같은 중대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소대가 아니면 누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다.


검은색 지프차량 뒷좌석에 끼어 앉은 세 명의 훈련병들은 차량이 출발하기 전에 검은색 눈가리개를 하나씩 지급받았다. 세 명 모두 코끝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복면 형태의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훈련병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 검은 베레모를 쓴 운전병이 눈가리개를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


훈련병들을 태운 차량은 곧 달리기 시작했다. 차량 뒷좌석에 몸을 밀착해서 앉은 훈련병 셋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시간이 얼마나 지나고 있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어서 빨리 차량이 멈추고, 차에서 내려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들을 태운 지프차량은 때로는 포장도로를, 때로는 비포장 도로를 번갈아 가며 달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정말 긴 시간을 달려서 어느 곳에 차량이 멈춰 섰다.

하차하라는 검은 베레모 운전병의 지시가 있었다. 눈가리개는 이제 벗어도 된다고 하였다. 정수호는 눈가리개를 벗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여전히 깜깜했다.


어?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눈가리개를 분명히 벗었는데? 왜 앞이 안 보이지?’


정수호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눈가리개를 벗었지만 여전히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잠시 뒤 깨달았다. 벌써 어둠이 짙게 깔려 사방이 온통 까맣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희미한 불빛조차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장시간 동안 검은색 눈가리개를 썼기 때문에 정수호의 눈은 동공이 완전히 확장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눈가리개를 치우고 눈을 떴을 때 환하게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정수호의 생각과 달리 실제는 어둠이 짙게 깔려서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방이 깜깜했다.


정수호가 지프차에 올라타고 눈가리개를 썼을 당시에는 햇살이 온 세상을 눈이 부시도록 밝게 비추던 오후의 낮시간이었다. 그러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고 짙은 어둠이 깔린 밤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해 일어난 착각이었다.


세 명의 훈련병이 모두 같은 증상을 느끼는 듯했다.

그들이 지프차량에서 내릴 때 이미 야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그들의 눈과 뇌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눈을 분명히 뜨고 있으면서도 세 명의 훈련병들은 차체와 차문을 두 손으로 천천히 더듬고 짚으며 한 명씩 차량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했다. 만약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멀쩡한 젊은 놈들이 왜 저러지? 눈이 안 보이나?’라며 오해했을 것이다.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라. 그리고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시선을 좌우로, 멀리 가까이, 계속 돌려서 눈과 뇌가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적응을 시킨다. 이해했나?”


검은 베레모 상급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세 훈련병들의 눈과 몸의 상태가 어떤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예! 훈련병 정수호. 알겠습니다.”

다른 두 명의 훈련병도 모두 동시에 대답을 했기에 한 명이 큰 소리로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약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이제 서서히 주위에 뭐가 있는지 희미하고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처에 건물이 있는 듯이 보였지만 뚜렷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앞쪽에 밝은 불빛이 나타났고 그 불빛은 땅을 비췄다. 손전등 불빛이었다.


“이제 적응 됐으면 불빛을 보면서 따라오도록.”

검은 베레모 상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에서 걷는 검은 베레모 운전병이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기 때문에 정수호를 비롯한 훈련병들은 그 불빛을 따라서 한 줄로 서서 조용히 따라갈 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검은 베레모 상급자와 운전병이 그들을 어느 건물로 데리고 들어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정글월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정글월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꿈 많던 학창시절에 시, 수필, 소설 등을 끄적이며 작가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객기를 부렸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진짜 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6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4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1화신병훈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