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가 운전하는 차량을 뒤따라 간 차량은 단 한 대였다.
333호 4979 검은색 승용차.
박경호 형사는 곧바로 서남경찰서 데이터 조회실로 전화를 걸어 333호 4979 차량에 대한 등록 정보를 알려달라고 조회실 직원에게 요청했다. 경찰 조회시스템에서 확인된 해당 차량은 대륙렌터카 소유로 등록이 되어 있었으며 특이사항은 없다고 조회실 직원이 말했다. 정상적인 렌터카로 등록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경찰서 조회실 직원으로부터 렌터카 회사의 전화번호를 전달받은 박경호 형사는 곧장 자신의 휴대폰으로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네, 대륙렌터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젊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네, 수고하십니다. 저는 서남경찰서 형사과 강력 1팀에서 근무하는 박경호 형사라고 합니다. 333호 4979 차량이 거기 대륙렌터카에 등록된 차량이던데, 혹시 누가 렌트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죄송하지만 전화상으로는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형사님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제가 확인할 방법이 없고요. 전화하신 분의 신분이 형사님이 맞다고 해도 전화로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경찰서장님 직인이 찍힌 정식 공문을 가지고 오시면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오시는 형사님의 경찰 신분증도 꼭 있어야 됩니다. 저희 회사 방침이 그렇습니다.”
젊은 여성 직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똑 부러지고 단호했다.
“네, 알겠습니다. 상황이 좀 급해서 전화로 협조 요청을 드린 건데…, 공문 가지고 가도록 다른 형사를 보내겠습니다.”
박경호 형사는 경험에 의해서 전화 통화로는 협조가 안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해당 렌터카를 대여한 사람이 누구인지 빨리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다.
박경호는 막내 강진구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333호 4979 차량에 대한 등록 정보와 임차인의 정보가 있는 자동차 임대차계약서 등 자료를 요청하는 공문을 작성한 뒤에 경찰서장 직인을 받아서 해당 렌터카 업체로 즉시 가라고 말했다. 해당 차량의 임차인에 대한 자료가 확보되는 대로 정수호 팀장에게 보고를 하고 지시를 받으라고 말했다.
관제실 모니터 화면에서 확인되는 용의자와 차량에 대한 자료는 거기까지였다.
죽은 박상기가 운전하는 차량과 그 뒤를 따라 간 차량의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자료는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우토란트 사유지 구역을 벗어난 이후의 도로, 특히 사고지점 인근 도로에는 CCTV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관제실장님, 용의 차량의 운전자가 누구인지 등록은 되어 있겠죠? 경비초소에서 출입하는 차량과 운전자를 확인하던데요. 우리가 여기 우토란트에 들어올 때도 남쪽 메인 게이트 초소에서 경비원들이 차량과 운전자를 확인을 하던데요. 혹시 누구로 등록이 되어 있나요? 물론 자신의 실명을 말하지는 않았을 테지만요.”
“일단 설명을 드리면,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이 예약을 하고 오시기 때문에 호텔에서 차량과 운전자를 등록을 합니다. 호텔에 투숙하지 않고 위락시설만 이용하시는 손님들도 계시지만 업무 편의상 호텔에서 통합하여 일괄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우토란트에 들어온 차량들 중 일부는 각 게이트 경비초소에서 입력한 자료가 저장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호텔 프런트에서 예약을 접수받아서 고객들의 이름과 연락처, 차량번호 등의 자료를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경비초소의 모니터 화면에는 이미 등록된 내용이 뜨기 때문에 그런 차량들은 경비원들이 따로 검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희 호텔 전산자료에 이미 등록된 것을 믿고 동서남북 각 메인 게이트 차단기를 열어주게 됩니다. 그리고 사전에 등록이 안된 차량이나 무단으로 접근하는 차량들만 경비원들이 차량과 운전자, 동승자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잠시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333호 4979 차량의 운전자로 등록된 사람은… 진경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게스트 박상운 씨와 일행이라고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 그래요? 일행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 그럼 범인은 실제로 박상운, 즉 박상기와 아는 사람이어서 지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박상기가 박상운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이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초소를 통과할 때 경비원에게 박상운의 이름을 팔아서 일행으로 등록하고 들어온 것이거나… 뭐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겠는데요. 혹시 진경수에 대한 다른 내용은 없나요? 생년월일이나 핸드폰 번호 등이요.”
이번에는 고성수 경위가 관제실장에게 물었다.
“예, 다른 내용은 등록된 것이 없습니다. 방문자 진경수 이름과 차량번호 333호 4979, 투숙자인 박상운 씨와의 관계 ‘지인’, 이렇게만 자료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 이상은 사실 경비원들이 물어보거나 하지 않습니다. 방문객의 개인정보이기 때문이죠. 방문객들 역시도 자신들의 개인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경비원에게 자세히 알려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등록된 박상운 씨에 대해서 알고 있고 지인이라고 밝혔다면 경비 초소에서는 그렇게 입력하고 통과를 시켜줬을 겁니다. 공권력이 있는 경찰과는 다르기 때문에 저희 경비원들 입장에서는 고객분들이 알려주는 대로 입력을 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도 고객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들을 믿고 그냥 입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제실장이 말했다.
“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렇다면 범인으로 추정되는 진경수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나 자료는 여기에는 더 이상 없다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박경호 형사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한편 관제실 밖으로 나간 정수호와 경비대장 이경훈은 호텔 건물 뒤쪽에 마련되어 있는 흡연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배님, 여기 우토란트 팸플릿을 보니 호텔뿐만 아니라 사유지 내에 있는 연구시설이나 위락시설 등의 규모가 정말 대단한 것 같더군요.”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그래. 엄청난 규모야. 그런데 더 대단한 건 연구시설이 몰려있는 곳이야. 벼와 보리 등을 연구하는 이삭연구소, 생명공학연구소, 로봇연구소 등 여러 연구시설이 있어. 연구시설 쪽은 아무나 출입을 못해.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경비나 보안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 외에는 인가를 받지 않으면 출입이 안돼. 농사를 짓는 지역과는 전혀 다르지.”
“그렇게 많은 연구시설들을 운영하고 연구원들의 월급을 주려면 엄청난 재력이 있어야 할 텐데요. 아무리 유명한 대기업이라고 해도 무리가 갈 텐데요. 안 그런가요?”
“그렇겠지.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이 뭔지 아는가? 저기 여러 연구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우토란트 그룹에서 운영하는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고 선발된 사람들이라는 것이야. 어떤 분야에서 천재, 수재라는 소리를 듣는 학생들을 어릴 때부터 금전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그들이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전적으로 지원을 해 주는 것이지. 필요하다면 해외 유학까지 보내주고 생활비까지 다 지원해 준다고 하더군. 대신에 선발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고 하더군. 그리고 일정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여기 연구기관에서 연구를 해야 된다고 하더군. 물론 투자를 했으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야.”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대단한 우토란트 그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팀장, 그런데 그 차량 추락사건 말이야. 단순한 추락사건이 아니고 뭔가 범죄 냄새가 나는 게 분명하니까 여기까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러 온 것이겠지? 아까 관제실에서는 내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는데 말이야. 물론 내가 지금은 더 이상 경찰도 아니고 민간인 신분이지만,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손놀림이나 행동이 보통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혹시 우리 우토란트 내부에 범인 있는 건가?”
“아뇨, 아직은 범인에 대해서 아는 게 없습니다. 용의자가 우토란트와 관련이 있는 내부 사람인지, 아니면 외부 사람인지 등 아직 확실히 나온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추락한 차량을 운전한 망자 박상기는 단순히 운전 실수로 절벽 아래로 추락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차량이 이곳 우토란트 구역에서 나와서 남쪽 게이트를 통과한 후 구불거리는 산속의 지방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추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그 외 더 확실한 내막을 알기 위해서 여기로 압수수색을 하러 온 것이고요. 어쨌든 선배님 덕분에 우토란트에서 협조를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수호와 이경훈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정수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어, 박형사. 무슨 일 있어?”
휴대폰에서 나오는 박경호 형사의 목소리는 약간 들뜬 목소리처럼 들렸다.
[팀장님, 여기 관제실장님의 도움을 받아서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시간 관계상 여기 관제실에서 다른 컴퓨터를 하나 지원을 받아서 바로 자료 확인을 했는데요. 10월 18일 06시 45분경 박상기가 탄 차량이 사유지 남쪽 메인 게이트 초소를 지나서 나간 것이 확인이 됐고요. 그리고 2분 뒤에 박상기 차량을 따라서 나간 차량은 333호 4979 검은색 차량입니다. 똑같이 사유지 남쪽 메인 게이트를 지나서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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