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목

by 정글월

사유지 '우토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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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경찰서 강력1팀 사무실에는 아침 일찍 출근한 형사들이 각자 자신들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컴퓨터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 조간신문을 보는 사람,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는 사람, 스마트폰으로 세상의 소식들을 들여다보는 사람 등 각자의 개성이 다르듯이 업무 시작 전 짬나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다양했다.

형사과장실에서 다른 강력팀 팀장들과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팀장 정수호가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자, 다들 여기 원형테이블에 모여서 커피 한잔 하면서 회의 좀 합시다. 원탁회의!”


‘원탁회의’는 정수호 팀장이 이름을 붙인 회의였다. 팀원들 모두가 원형의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각자 자신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장소이자 회의 방법이었다.


일반적인 수사 관련 회의는 일방적인 면이 많이 있었다. 경찰서장이나 형사과장 등 수사지휘 라인에 있는 사람이 부하 직원인 팀장에게 일방적으로 임무를 부여하거나 수사 방향을 잡아주고 명령을 내리면, 팀장은 서장이나 과장의 지시사항을 팀원들에게 전달하면서 각 조별 또는 형사들 각자에게 임무를 부여하는 식의 그런 회의가 태반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회의는 아니었다.


어느 날,

강력1팀 사무실에서 팀장 정수호를 포함해서 막내 강진구 형사까지 여섯 명이 각자 좋아하는 취향의 커피를 한잔씩 손에 들고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두런두런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때였다.


처음에는 ‘오늘의 뉴스’가 이야기의 주된 내용이었으나 어느새 젊은 세대의 줄임말 사용이 너무 심하다는 주제로 넘어가고 있었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슬세권(슬리퍼 신고 다닐 수 있는 생활권), 스세권(스타벅스 세권),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킹받는다(열받는다 강조) 등 여러 가지 줄임말이나 젊은이들이 쓰는 말을 설명해 주는 막내 강진구 형사의 입담에 형사들은 나이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게 나왔다.


나이가 가장 많은 부팀장은 젊은 세대들의 무분별한 줄임말 사용에 대해서 못마땅하다는 반응이었다.


“나도 가끔 전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옆에서 젊은 학생들이 얘기하는 걸 들을 때면,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을 때가 있었어. 외국어도 아니고 외계어도 아닌 희한한 말을 서로 하더군. 그런데 말 몇 마디만 더 하면 되는데 뭐가 급해서 그렇게 줄여서 말하는지 도통 이해가 안 돼요. 무분별하게 막 쓰면 안 되지.”


“부팀장님, 그건요 의사소통을 빨리하기 위해서 그러는 겁니다. 엄지족들이 메신저나 SNS로 즉시성 있게 빨리빨리 소통을 하려다 보니 글을 줄여서 쓰게 되는 거죠. 그게 말로도 옮겨진 것이고요. 그리고 젊은 애들이 자기들만 알아듣는 줄임말을 사용함으로써 어떤 소속감이나 일체감 같은 것을 느끼려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도 무전 음어를 사용하잖아요. 경찰들끼리만 사용하고 알아듣는 음어요. 군대에서의 음어 사용도 그렇고요. 물론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줄임말이나 은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음어랑은 그 목적이 다르긴 하지만요. 하하하!”

막내 강진구 형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부팀장님이 젊으셨던 그 시절에도 당시 젊은이들이 사용하던 줄임말이나 은어들이 있었을 걸요?”

김강수 형사가 말했다.


“음… 몇 개 있기는 있었지만 요즘 애들처럼 많거나 어지럽지는 않았어.”

부팀장 최진영 경위가 말했다.


“어떤 게 있었죠? 혹시 생각나는 게 있으신가요? 몇 개만 알려주세요.”

막내 강진구 형사가 말했다.


“옥떨메, 그리고 그 보다 더 심한 옥떨메킹죠. 뭐 그 정도? 줄임말은 아니지만 우리 경찰을 속되고 얕잡아 부르는 짭새. 뭐 그 정도였지 지금처럼 외국어나 외계어 수준은 아니었어.”


“짭새는 저도 알고 있는 건데요. 그건 아마 역사가 꽤 오래됐을 걸요? 하하! 옥떨메? 옥떨메킹죠? 그건 뭐죠?”

막내 강진구 형사가 물었다.


“하하하! 아, 저도 생각나네요. 옥떨메… 하하! 그러고 보면 어느 세대든지 젊은 시절에는 나이 든 어른 세대들이 볼 때 못마땅한 그런 부분들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하긴 그 옛날 소크라테스도 ‘요즘 젊은 애들은 정말 버르장머리가 없어'라고 말했다는 전설이 있잖아요. 하하!”

정수호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식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소통,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반대 의견까지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고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정수호가 다음부터 수사 관련 회의를 할 때, 특히 막히는 것이 있거나 여러 사람들의 추리와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지금처럼 원탁에서 커피 한잔씩 들고 앉아서 허심탄회한 회의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 ‘원탁회의' 시초였고, 집단지성의 효과를 보려는 정수호의 문제 해결 방식의 하나이기도 했다.


지금 그 원탁회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형사들은 커피나 음료수를 한잔씩 들고 자연스럽게 원형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정수호 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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