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속의 재회

by 정글월

사유지 '우토란트'





전화 속의 재회




“선배님, 죄송하지만 한번 더 신세 좀 지겠습니다. 국방부를 통해서 한번 더 알아봐 주세요. ‘팔라댕 쥬모’라는 회사에서 혹시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이 있는지,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만약 한국에 왔거나 올 계획이 있다면 어떤 루트나 방법으로 한국에 입국하는지도 알아봐 주세요.”


“아…, 이거 참. 그래, 알았다. 내가 알아보고 전화 줄게”


전화를 끊은 정수호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부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여전히 각자의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그만하고 다들 퇴근들 하세요. 어차피 다른 기관의 직원들도 이미 다 퇴근하고 없어서 업무협조 의뢰를 할 수도 없으니까 우리도 이제 퇴근하고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다시 열심히 일하시죠. 자, 퇴근들 하세요.”

정수호는 얼른 퇴근하라는 뜻으로 팀원들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자, 다들 팀장님 말대로 퇴근하고 내일 다시 열심히 하자고.”

부팀장 최진영 경위가 말했다.


팀원들은 정수호 팀장의 말을 듣고 하던 일을 멈추고서 퇴근 준비를 했다.


“나는 전화 올 곳이 있어서 전화 통화 좀 하고 퇴근할 테니까 먼저들 들어가세요.”

정수호가 사무실을 나가는 부팀장과 팀원들에게 말했다.


형사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 사무실은 조용하면서도 휑한 느낌이 들었다. 정수호는 혼자만 있는 사무실에서 사건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종종 갖고는 했었다. 오늘도 혼자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서 사건과 관련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자신의 군대 동기 -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 정영욱이 부동산 사기 피해자 정순우 씨의 아들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신병훈련소 때나 특전부대 부사관 때나 정영욱의 가족이 면회를 온 것을 정수호가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정수호의 부모도 신병훈련소로 면회를 온 것과 특수전 부사관에 지원한 후 특수전 부사관 훈련단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때 면회를 온 것, 그 두 번이 정수호가 군대에 있을 때 부모가 온 면회의 전부였다. 정수호의 부모가 바쁜 탓도 있었지만, 정수호가 부모의 면회를 극구 사양했기 때문이었다.


정수호의 부모가 특수전 부사관 훈련소에 면회를 왔을 때, 정수호는 동기인 김성규와 정영욱을 함께 데리고 가서 면회를 했었다. 정수호의 부모가 준비해 온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정수호는 김성규와 정영욱을 형제 같은 녀석들이라고 소개했다. 서로 의지하며 도와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이제 면회는 오지 않아도 된다고 부모에게 말했던 정수호였다.


김성규의 부모도 면회를 한번 온 적이 있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김성규도 정수호와 정영욱을 함께 데리고 가서 부모에게 소개를 하고, 김성규의 부모가 정성스럽게 준비해서 가지고 온 음식을 같이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정영욱의 부모가 면회를 온 기억은 없었다.


부모가 군대에 있는 아들의 면회를 왔었다고 해도, 군대 동기 녀석의 부모님 이름을 묻거나, 혹시 부모의 이름을 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느 누가 친구나 군대 동기 녀석의 부모님 이름을 기억하겠는가.


그저 가족을 만나는 기쁨과 면회의 즐거움이 있고, 맛있는 음식의 유혹이 후각과 미각을 자극할 뿐이다. 먹었던 음식이 맛이 있었다면 오히려 그 기억이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영욱이의 부모와 가정에는 그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10년 전에 이혼을 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나이에 혼자서 택배 기사 일을 하면서 알뜰하게 모아두었던 돈을 부동산 사기꾼들에게 사취당하고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생을 마감하신 분이 다름 아닌 군대 동기 정영욱의 아버지였다니….


정수호는 정영욱이 부동산 사기범인 박상기를 죽인 범인으로 지목되는 것도, 정영욱의 부친이 부동산 사기 사건의 피해자이면서 사망자였다는 사실도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박상기를 죽인 범인은 현재로서는 정영욱이 유력한 용의자이며, 모든 조건이 그가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영욱에 대해서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 사실도 너무 싫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정수호의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띠리링- 띠리링 -’


“예, 선배님. 수호입니다.”


“수호야. 내가 국방부 지인을 통해서 알아봤는데, 그 ‘팔라댕 쥬모’라는 프랑스 민간군사기업에서 얼마 전에 한국에 무기구매 협상을 하러 왔었다고 한다. 국내 어느 방산업체에서 최근에 생산을 시작한 미사일에 관심을 보여서 그 기업체 부사장이 직접 직원들 몇 명을 데리고 와서 살펴보고 돌아갔다는 사실을 귀띔해 줬어.”


“프랑스가 무기 개발이나 기술에 있어서 우리보다 더 우위에 있지 않나요?”


“기업들이 어떤 곳이냐?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려고 하는 곳이 기업이잖냐.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이 생산하는 비슷한 종류의 무기들을 생산해 내면서도, 가격 대비 성능이 우수한 무기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당연히 민간군사기업 측에서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거야.”


“아, 하긴 그렇겠네요. 혹시 그 기업체 직원들 중에 정영욱이 있었나요? 그건 안 알아보셨어요?”


“물어봤지. 그런데 그 민간군사기업 직원들 중에서 정영욱이라는 이름은 없다고 하더군. 왜 한국인이 거기에 있겠냐고 오히려 나한테 물어보던데?”


“선배님, 혹시 한국에 방문한 그 프랑스 민간군사기업체 직원들 명단을 입수할 수 있나요?”


“야, 이 녀석아. 내가 지금 너한테 알려준 내용도 국방부에서는 대외비라고 안 알려주겠다고 하는 것을 사정 사정해서 겨우 알아낸 것인데, 그쪽 민간기업체 직원들 명단을 무슨 수로 내가 입수하냐? 네가 만약 국방부에 공문을 보내도 그쪽에서는 절대로 ‘팔라댕 쥬모’라는 회사의 직원들 명단을 알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프랑스 회사의 직원들이 우리나라에 무기 구매 협상을 하러 왔었다는 사실조차도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어. 수호야. 너는 이 선배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 국방부에 그냥 아는 사람이 있을 뿐이야. 나 대단한 사람 아니야. 그리고 더 이상 영욱이에 대해서 물어볼 수도 없어. 국방부에 있는 지인이 내가 이런 전화 계속하면 이제 전화를 안 받겠다고 했어. 이 녀석아.”


“아,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선배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네요. 음… 그럼 어떻게 하나… 분명히 영욱이 같은데….”


“전에도 말했지만 영욱이가 범인이라는 100% 확실한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잖냐. 네가 얘기하는 것은 범인이 한 제스처와 영욱이가 예전에 했던 제스처가 같아서 그렇게 의심하는 것이잖냐.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영욱이를 범인으로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내가 경찰은 아니지만, 그걸로는 입증하기가 많이 어려워 보인다.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내가 알아본 건 그게 다야. 이만 끊을게.”


“아, 예. 감사합니다. 선배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가 다른 방법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다음에는 그냥 안부 전화 드리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단결!”


“그래, 알았다. 수고해라.”


전화를 끊은 정수호는 갑자기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 들었다. 그럭저럭 잘 헤쳐나가던 길 앞에 높다랗고 두꺼운 벽이 갑자기 나타나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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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월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꿈 많던 학창시절에 시, 수필, 소설 등을 끄적이며 작가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객기를 부렸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진짜 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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