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라는 직업이 가진 도덕적 윤리와 쉽게 폄하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작은 사업이었지만 나름 순탄하게 이어져 왔다. 월세를 내는 것도 아니니 운영에 있어 딱히 마음이 불안해질 일도 없었다. 그러다 9월, 일이 터졌다.
그 해 9월은 '보건교사 안은영'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었다. 젤리로 된 괴물들이 눈에 보이는 보건교사가 동료교사와 함께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괴물들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의 큰 메리트 중 하나가 귀여운 젤리 괴물들의 생김새와 괴물들이 물리쳐지며 터질 때 튀어나오는 하트 젤리 연출이었다. 나도 이 드라마를 애청하는 시청자였고, 그 당시 생산자적 덕질에 도가 터있던 나는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젤리 괴물 모양의 굿즈를 만들었다.
2가지의 굿즈를 만들었었는데, 한 개는 문어젤리 괴물 피규어였고, 나머지 하나는 하트 젤리 키링이었다. 그 당시 '귀여움'이라는 것에 꽂혀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귀여운 굿즈를 만들어 냈다.
(이건 그 당시 만들었던 굿즈 사진들, 지금 봐도 귀엽다.)
혼을 담은(?) 굿즈를 소개하는 게시물을 트위터에 올리자마자 반응이 터졌다. 2일 만에 8,000번 넘게 리트윗(공유)이 되었고, 아직 판매글도 안 올렸는데 구매 요청 DM이 200개가 넘게 왔다. 지난 7개월 동안 공방을 운영하며 이렇게 큰 관심은 처음 받아봤다. 두 번째로 올린 하트 젤리 게시물은 1만 2,000 리트윗을 넘겼다.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내 제품에 대한 귀엽다는 댓글은 5분에 하나씩 달리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제품 구매 의사를 비췄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졌다. 이 사람들의 반응이 끊기기 전에 얼른 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곧바로 제품 생산을 확정 짓고 구매폼을 올렸다. 5일 동안 주문을 받았는데 하트 키링만 300개, 문어 피규어가 120개가 팔렸다. 레진으로 만든 수공예 제품 특성상 가격이 낮지도 않았다. 고등학생이 살면서 가장 크게 만져보는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바로 주문량 생산에 들어갔다.
손이 부족해 주변에 손재주 좋은 친구에게 일당을 주고 부탁해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두 명이서 하루 종일 만들어야 하트 키링 130개를 만들 수 있었다. 만드는 내내 기쁜 감정이 벅차올랐다. 돈을 번다는 것도 좋았지만, 공예가로서 내가 만든 제품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는 게 기뻤다. 하루라도 더 빨리 사람들에게 배송해 주기 위해 손을 서둘렀다. 그러다 문제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거 넷플릭스에 저작권 허락받고 파는 거임?". 주문량의 2/3 정도 만들었을 때쯤, 하나의 인용리트윗(기존의 게시물을 공유하며 코멘트를 달아 모두가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이 달렸다. 처음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어서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곧 그 인용게시물에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거 법적으로 문제 될 텐데?", "넷플릭스에 신고 ㄱㄱ", "님 이거 범법행위임ㅅㄱ(수고)". 갑자기 문제들이 커지기 시작했다. 2명, 3명 달던 댓글들이 하나둘씩 늘어나 2,000개, 3,000개가 되었다. 이제는 문제의 시작이었던 인용게시글의 인용까지, 그리고 그 인용의 인용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토론하고 싸우며 나를 범법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영문도 모르는 일에 갑자기 휘말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분명 내 잘못이었는데, 당장 기쁜 마음으로만 제품을 만들던 중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급하게 인터넷에 '굿즈 제작 저작권 문제', '저작권 비용' 등을 검색해 보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수많은 블로그 글들과 돌아오는 지식in의 답변은 '소량이면 문제 안되는데 각 잡고 파는 거면 문제임'이었다. 그러곤 넷플릭스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제품 판매 허락을 맡기 위해서. 넷플릭스와 연결되던 그 연결음이 나를 너무나도 심장 쫄리게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은 달달 떨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시점쯤 이미 트위터에서는 최소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한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플릭스와 연결이 되었다.
"제가 드라마 굿즈를 개인적으로 만들어서 팔려고 하는데 혹시 저작권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판매하시는 건 저희가 저작권들 드리기 어렵고, 하시더라도 드라마 관계자 분들과 연락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어떤 대기업이 굿즈 400개 만들어서 파는데 일일이 저작권 계약을 해주겠나. 하지만 상담원의 그 뒷 말이 더 내 심장을 쿵 떨어지게 했다.
"혹시 '병정 공방'님이실까요?"
"네 맞는데요?"
"아 네~ 지금 병정 공방님에 관련하여 신고 전화가 30건 정도 와 있는 상태여서요~"
세상에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없었다. 모두가 환영하던 내 작품이 이제는 수만 명에게 욕을 먹기 시작해, 원작자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니. 충격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상황에 대한 넷플릭스의 입장은 이렇다. '저작권 구입 없이 판매되는 드라마 굿즈들은 이미 시장에 너무 많고, 우리는 그것을 딱히 허용하지도 제제하지도 않는다.'
그 통화를 하고 있던 와중에도 내 제품들은 생산, 배송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제품 생산 및 배송이 거의 마무리 단계일 때쯤 일부 환불 요청 건들을 환불해 주고 제품 판매를 마쳤다. 그러고 정말 웃긴 건, 그 이후 내 공방에 대한 응원글이 달리며 이후 출시 제품들의 평균 매출이 올랐다는 것이다. 어쨌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정말 고된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배울 수 있는 점이라면 이렇겠다. 1. 제품 기획 시 저작권을 잘 확인하자. 2. 대중들은 정말 쉽게 욕하고, 그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 얼마 안 가 자신이 무엇을 왜 욕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3. 대기업은 정말 작은 이슈에는 관심이 없다. 4. 아무리 큰 이슈가 터져도 그 과정에서도 팬이 생기고, 이슈는 곧 마케팅이 된다.
난 아직도 내가 겪었던 이 사건에 대해서 딱히 누군가에게 잘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란 게 얼마나 허점투성이이며 한 시점에 매몰되어 광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는지를 배웠을 뿐이다. 이런 현상에 관하여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내가 잘 못한 것일까, 사람들이 잘못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