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초파리보다는 나은 인간으로
예전에, 한 친구가 고독한 내게 음흉하게 말했다.
"리얼돌 하나 지르삼."
나는 정직하게 말했다.
"현타 와서 그런 건 못 지름."
당시에 진화심리학자 로버트 라이트의 명저 <도덕적 동물>을 읽었더라면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욕구불만 인간으로 죽을지언정 욕구충족 칠면조로 살고 싶지는 않아."
20대 초중반, 연모하는 처자를 두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낙담하는 내게 친구 K 군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라는 건 문학하는 인간들이 미화한 것에 불과하다."
작년에 한 식당에서 소주 한 잔(병)을 기울이다가 옛 추억에 젖어 이런 얘기를 꺼내게 되었다.
"젊었을 때 수지(가명)를 처음 만났던 날, 그때 내 마음은 하늘을 훨훨 날을 것 같았지. 하지만…"
"하지만 알고 보니..." 친구 P 군이 내 말을 낚아채듯이 말했다.
"욕정일 뿐이었지…"
'하지만 훗날 나는 추락하였고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었다'는 나름 문학적인 표현을, 발화되기도 전에 절친 P 군은 생리학적 관점으로 거세해 버린 것이다.
나이 듦이란 이런 것일까. 공중부양된 문학적 로맨스의 날개를 꺾어 과학의 이름으로 추락시키는 것.
로맨스가 증발되고 원초적 본능만 잔존하는 인간은 '성=사랑'이라는 등식에 코웃음을 치며 돈벌이 수단으로써의 성에는 관대해지는 것인가.
"비록 현대 여성들이 자신의 부와 스스로 구축한 지위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에 맞추어 결혼에 관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곧 그녀가 태고의 환경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던 뿌리 깊은 미적 충동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현대 여성들은 그러한 충동으로부터 초연하지 못하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자보다 배우자의 경제적 전망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을 현재의 소득 수준이나 기대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서 찾아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로버트 라이트, <도덕적 동물> 중에서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사랑이란 생존, 혹은 욕망의 도착적 형식에 불과하다. 고로 남녀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것은,
남자 : 네 몸
여자 : 네 돈
순화시켜서 말하자면 남자는 유전자를 많이 퍼트리는 게 목적이고, 여자는 자신과 아기에 대한 '부양 투자'를 획득하는 게 목적인데, 이게 다 유전자의 명령인 것.
<도덕적 동물>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다윈 시대의 도래
2. 수컷과 암컷
3. 남성과 여성
4. 결혼시장
(…)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도저히 재미없으래야 재미없을 수 없는 책이다.
전반부의 내용에 대한 한 줄 평은 이렇다.
음란마귀의 마리오네트ㅡ웃고 울던 모든 것이 다 유전자 놀음.
"종종 유전자가 섹스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은, 우리가 꼭두각시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를 조정하는 조작 메커니즘을 해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다."
이게 뭔 말일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초파리나 칠면조보다는 나은 동물-인간으로 살고 싶거든 먼저 네 마리오네트에 연결된 실들을 인식하라. '자연'에서 '당위'가 도출되지는 않는다. 꼭두각시라는 인식은 마구 꼴리는 대로 행하지 않기 위한 전제가 된다.
언젠가, 비어 가는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는 어딘가 좀 뒤틀려서 이렇게 내뱉은 적이 있다.
"이보다 훨씬 가난했으면 몸이라도 팔 것 같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 어떤 정신 나간 여자가 너를?
야마모토 슈고로의 연작 소설, <계절이 없는 거리>는 남루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비루한 행태에 대해서조차 뻔뻔스러울 정도로 당당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먹을 쌀이 떨어지자 '시마'는 물에 적신 커다란 무쇠 솥을 들고 쌀가게에 찾아간다. 그리고는 쌀가게 주인에게 2kg의 쌀을 담아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쌀이 솥에 가득 찬 후에 쌀가게 주인에게 외상을 요청한다. 그런데 쌀가게 주인으로서는 초면인 시마에게 외상을 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시마는 솥을 들어 쌀을 원래 있던 가마니로 쏟아붓는다.
그런 방법으로 시마는 솥의 물기에 달라붙은 소량의 쌀 알갱이를 얻게 된다.
"외상을 떼어먹는 거라면 나도 그 방면의 달인이지."
"아니, 그게 아닙니다. 외상을 하는 게 아니라 약탈을 하는 겁니다. 그것도 정정당당하게. 어떻습니까, 여러분?"
'거지 똥꼬의 콩나물을 뽑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원래는 99를 가진 부자의, 1밖에 가지지 못한 빈자에 대한 착취를 희화하는 말이겠지만, 내게는 그보다 극빈 앞에 체면이고 품위고 나발이고 없다는 태도에 대한 조소로 읽힌다. 그러나 머리가 좋아 '이미 다 계획이 있는' 이들이라면 영화 <기생충>처럼 부유층의 피를 소량 빨아먹으며 생존하겠지만, 나처럼 그런 쪽으로는 두뇌 회전이 안 되는 인간이라면 생존을 위해 다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아예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상상해 본다. 극빈 앞에서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 약탈? 사기? 번개탄?이도저도 아니면,
성매매?
..... 아니, 이건 외관상 불가능할 것 같다.
탑클래스 넘버 원 기타리스트 안드레 니에리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7만 명.
대한민국 원탑 기타리스트인 조 XX 님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6만 명.
아마추어 드러머임에도, 옷은 예쁘게 절반 정도 걸친 어떤 예쁜이의 구독자 수는 230만 명.
피아노 연주자인지 속옷 패션모델인지 정체성이 모호하여 그녀의 연주를 들은 남성 네티즌들로 하여금 '음악 잘 봤습니다'는 식의 공감각적 댓글을 유도하는 어떤 예쁜이의 구독자 수는 140만 명.
악기 연주 관련 유튜브 채널을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장르가 낚시든, 코미디든, 신학이든...섹슈얼리티의 부각 능력이 좌우한다.
그러고 보니 어떤 처자의 유튜브 채널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그리고 그저 돌아다니는 내용일 뿐임에도) 구독자 수가 60만 명이 넘는다. 하루종일 저렇게 돌아다니면 그녀로서는 허리가 꽤 아플 텐데.
학원에 누군가 찾아온다. 마스크를 써서 예쁜이인지 안 예쁜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앳되어 보이는 처자다. 손에 여러 가지 색상의 복주머니를 왕창 들고 있다. 방향제란다. 이것들을 팔아서 이웃 돕기도 하고 대학 등록금에도 보탠단다.
전자가 100% 거짓말일지라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자기 스스로 돈을 벌어 등록금을 내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가.
마침 방향제도 필요했겠다, 다소 비싸긴 해도 능히 만 원을 건넨다. 그녀가 가고 난 뒤 문득 오래전에 비슷한 알바.... 아니, 어떤 자선 행사에 동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내 나이, 스무 살. 학교에서 나름 미인으로 인정받던 한 선배가 겨울방학 중에 내게 전화를 했다. 불우이웃 돕기 자선행사에 참가하기로 했는데 나더러 같이 하자는 거다.
당시 무엇을 팔고 다녔는지는 기억에 없다. 서울 종로에 있는 여러 사무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취지를 설명하고 물건을 팔았던 기억은 있다.
무엇보다 뚜렷한 기억은, 그렇게 찾아갔던 사무실들 중에서 문전박대를 하거나 불쾌감을 표현한 사원들(대개 남자들이었다)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판매율도 아주 높았고.
역시.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움을 짧은 폭정이라고 불렀고, 플라톤은 자연의 특혜라고 했다. 신뢰라는 측면에서 이것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사회적 교류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린다.
ㅡ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위의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한 후배가 말했다.
"형이 만약 예쁘고 날씬한 여자로 태어났다면 형도 저럴 거지?"
빤히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색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당연하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거나 카드 빚에 쫓기는 처지라면,라고 전제하지만... 글쎄다.
구독자 100만 명의 유명 유튜버가 되면 돈이야 제법 들어오겠지만 그렇게 대대적으로 얼굴 팔리는 것이 싫은 경우에는 다음의 방법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여기에는 고민시 정도의 외모가 전제된다.
사람이 많은 거리에서 지나가는 남자들을 붙잡고 "저기... 제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차비가 없어서 그런데 만 원 만 빌려주실 수 없을까요?" 하며 요청을 한다. 스무 명만 성공해도 20만 원이고, 한 달이면 600만 원의 소득이 생긴다. 도시를 바꿔가며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한 달 1000만 원의 수입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와, 이거 대박인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찾아드는 현타.
초파리, 또는 칠면조보다는 좀 더 나은 동물로 살아야 하잖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실은 고구마(처럼 생겨먹은) 남자인지라 학원에서 기타를 가르치며 푼돈으로 연명하고 있다.
꼬우면 예쁘든지 잘 생겨라.
이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은 이미 약관의 나이에 깨우쳤다.
'....태고의 환경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녔던 뿌리 깊은 미적 충동으로부터 초연할 수는' 없다.
사족 :
어제, 넷플릭스를 통해 <아무도 없는 어두운 숲 속에서>를 봤다(이하, 스포일러 있음).
아마도 드라마 <오월의 청춘>의 영향이겠지만, 청순하고 참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한 여배우 고민시가 악역ㅡ천하에 둘도 없을 사이코패스 역을 맡았다.
그게 문제다.
도통 몰입이 되지 않는다.
분명 고민시는 훌륭한 사이코패스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그걸 보는 내내, "아니 저런 쳐 죽일 X이 다 있냐" 하면서 빡쳐가며 봐야 마땅하거늘 그런 류의 감정이입이 되는 대신,
저런 나쁜 뇬
-근데 졸라 이쁘다
저런 미친 뇬
-근데 왤케 이쁘냐
저런 사악한 뇬
-근데 이쁘긴 이쁘네
글타.
이 드라마는 망했다.
예쁨이 사악함을 능가하기 때문에 망했다.
미학이 윤리학을 능가한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고민시에게 '작업'을 시도한 남자 경찰관은 고민시의 차에 치여 사망한 뒤 옥수수 밭에 유기된다. 그전에, 주인공 김윤석은 그에게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지만 어쩔 것이랴. 이미 고민시의 외모에 홀려 영혼이 탈탈 털려버린 것을.
어떤 남자가 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나방으로 퇴화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잘못 형성된 아니마(Anima), 그리고 씨 뿌리기(유전자 재생산)를 위한, 우월한 텃밭에의 욕망.
위에서 이미 말했다. 우리는(이 글을 읽는 당신은 빼고) 유전자의 마리오네트라고.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남자는 대체로 세이렌(Silen)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니 부디 친구들아,
나를 선박의 기둥에 굵은 밧줄로 꽁꽁 묶어다오.
https://youtu.be/2ZBtPf7FOoM?si=KkGMxD124ayEh7P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