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감상하며
예술가이자 경제학자인 한스 에빙 교수는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예술세계의 빈곤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우선 승자독식 현상을 들 수 있다. 잘못된 인식, 자만심, 위험감수 성향도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술세계에는 승자독식 현상이 강하고, 이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즉, 예술시장의 구조적인 특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술세계로 몰려든다. 그 결과 예술시장에서는 과잉생산이 지속되고 평균소득은 더욱 낮아진다.
(...)
일반적으로 예술가들은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승자독식 시장에 특히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려는 많은 젊은이들이 승자독식 현상이 강한 예술세계로 밀려오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예술세계의 빈곤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예술가들의 딜레마란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죠. "상업적 음악이라는 것은 비예술적인 것인가?" 그러면 십중팔구는 그렇다고 답변할 겁니다. 여기서 잠깐 '상업적'의 사전적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관형사·명사]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를 통하여 이익을 얻는. 또는 그런 것.
예술은 상업적 가치를 초월하는 신성한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이 '상업적'인 것을 배격합니다. 여기서는 뮤지션에 한정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많은 '진정한' 뮤지션들은 상업성을 불순한 것으로 보고 배격합니다. 그래서 얼터너티브 롹밴드인 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원인으로 두 번째 앨범 <네버마인드>의 상업적 성공을 꼽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상업적 성공을 커트 코베인이 꺼렸다면, 대체 왜 데뷔음반을 발매한 무명 레이블인 <서브팝 레코드>를 등지고 당대 최고의 음반사들 중 하나였던 <게펜 레코드>로 옮겨갔는지가 해명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뮤지션과 평론가들이 꼽는 명반들을 한 번 살펴보면, 상당 수가 소위 '대박'을 터뜨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례로 핑크플로이드의 명반 <The Dark side of the moon>은 73년에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한 이래로 8년간 빌보드 차트에 머물러 있었고, AC/DC의 명반 <Back in Black>은 누적 판매량 5천500만 장으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음반에 이어 '단일 앨범 판매량' 순위에서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체 자본주의 음반 산업에 기생(이런 과격한 표현을 써서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만) 하지 않은 음악계와 프로 뮤지션이 있을까요? 아마추어 동호회의 연주회는 그런 의미에서 순수하긴 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거개의 프로 뮤지션들이나 프로 뮤지션 지망생들은 탈속화되어 '신성한' 예술을 추구하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작품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들 거개는 '예술인'임과 동시에 '세속인'인 셈이지요.
이렇듯 ‘속(俗)’과 ‘예(藝)’의 모순대립적인 두 세계를 배회하는 이들을 보면, ‘속인’과 ‘예술인’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물을 묘사한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강추입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토니오 크뢰거는 이렇게 말합니다.
“삶을 대가로 희생하지 않은 채 예술이라는 월계수에서 잎사귀 하나를, 단 하나의 잎사귀라도 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지요.”
이 ‘삶을 희생한 대가’가 반지하나 옥탑방, 또는 전기난로나 휴대용 가스버너 같은 따위들일까요?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나, 서머싯 모옴이 <달과 6펜스>에서 묘사한 화가 스트릭랜드, 또는 헤르만 헤세가 <지와 사랑>에서 묘사한 조각가 골드문트의 삶 또한 그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적 인물 중에서는 그 유명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치기 전까지 단 한 점만의 유화를, 그것도 저렴한 가격으로 팔 수 있었습니다. 화구 구입과 생계를 위한 돈은 모두 동생 테오 반 고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죠. 그는 언젠가 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본질적인 것만 거론하자면, 어제 편지에서 말한 대로 양치기 개는 바로 나 자신이고, 그 동물의 삶이 바로 나의 삶이다.(…) 나는 그 개의 길을 택했다는 걸 너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개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또 나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사람이 왜 평범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오늘은 이것에 따르고 내일은 다른 것에 맞추면서, 세상에 결코 반대하지 않고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 때문이다.”
일견 견유학파의 느낌도 납니다. 다수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삶의 어려움은 다음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은 나에게 건강을 잃은 앙상한 몸뚱이만 남겨주었고, 내 머리는 박애주의자로 살아가기 위해 아주 돌아버렸지. 넌 어떠냐. 넌 내 생활을 위해 벌써 15만 프랑 가량의 돈을 썼다. 그런데…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돈은 꼭 갚겠다. 안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이제 토마스 만이 말한 ‘삶을 대가로 희생’한다는 것의 의미를 짐작할만 합니다. 물론 세상에는 반 고흐 같은 화가만 있는 건 아닙니다. 피카소와 달리는 예술가로서 호의호식했죠. 그러나 세상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가난하게 이리저리 부유하다가, (어느 찬송가 가사처럼)’이름 없이 빛도 없이' 생을 마치거나, 중도에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사람이 더 많이 밟은 길-로 급선회를 하고 맙니다. 아마도 이런 경우가 더 많겠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한때, 위에서 언급한 옥탑방에서 어떤 기타리스트 선배님과 함께 음악을 듣거나, 기타를 치고, 때로는 라면 안주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길 없는 막연한 인생을 얘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그 선배님으로부터 오래간만에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태원에 있는 just blues라는 이름의 라이브 카페였죠. 몇몇 밴드의 블루스 연주를 듣고, 그 연주에 대한 나름의 평도 하고, 맥주도 마시고... 재미있었던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 버리고, 어느덧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날까요' 하고 말하려는데 그 선배님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지얼아."
"네?"
"나 음악 접었다."
"......."
"그래서 요즘 전기 공사 자격증 시험 준비한다."
"그래도... 형 실력이 너무 아까운데요..."
"실력은 무슨... 무엇보다 먹고는 살아야지. 나중에 우리, 직장인 밴드나 결성하자.”
무명 음악가의 삶.
중2병 환자에게는 어쩌면 멋지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헝클어진 머리의 장발, 몸의 일부인 듯한 담배, 다중의 취향에 대한 시니컬한 태도, 그리고 반항하는 듯한 현실 부정의 눈빛-현실이 아닌 어딘가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이렇게 묘사하고 나니 대번에 떠오르는 가상 인물이 있습니다. 소위 ‘순정만화’ 애호가 분들이라면 김혜린 작가의 <겨울새 깃털 하나>라는 한 권짜리 단편만화를 기억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에 ‘지한’이라는, 젊은 천재 시인이 나오는데, 그 외관이 위에서 묘사한 그대로입니다. 이 친구는 한 술 더 떠서 각혈까지 합니다. 소위 ‘아웃사이더’의 전형인 셈이죠.
‘아웃사이더’하니까 외래어가 유발하는 사대주의적 어감 때문에 뭔가 있어 보이지만, 그 뜻은 다들 알다시피 열외자, 국외자 따위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벗어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이가 있습니다. 영국 작가 콜린 윌슨은 소위 주류인 ‘인사이더’의 관점에서 바라본 ‘아웃사이더’의 본모(本貌)를 전복합니다. 그는 안일을 추구하여 오로지 돈벌이의 가치만을 추구하며 하루하루를 타성으로 채우는 현대인들의 극단에 아웃사이더를 정립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개는‘열외자’를 그런 관점으로 보지는 않죠. 그것은 그저 사회부적응자, 달리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잉여인간’ 일 뿐입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의 표현대로라면 ‘인간실격’으로 보는 것이죠.
보통의 뮤지션은‘(세)속인’이지 ‘도인’이 아닙니다(뭐, 간혹 도인에 가까운 분들도 있지만요). 아마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을 보면, 참 기묘한 느낌을 받습니다. 소위 ‘주류’에 대한 반발심이 많습니다. 뭐, 아무래도 예술의 정신이 독창미학을 밑바탕으로 하는 창조적 '전도'이니까요. 전도는 반항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인문학적 성찰마저 느껴집니다. 이럴 때는 그들이 세속인들과 동떨어진 부류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아니, 사실 꽤 자주 뮤지션들의 세속적 욕망이 마치 잭팟을 터트리려는 도박꾼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상업적인 ‘주류’ 음악을 경멸하면서도 기실 저들 역시 상업적 성공을 욕망합니다. 물론 이해할만합니다.‘상업적인 성공’이라는 것은 곧 많은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인데, 이런 인정욕구가 없었다면 애초에 음악을 하지도 않았을는지도 모릅니다. 하더라도 방구석에서 조용히 자기만족을 위한 음악 정도로 그쳤겠죠.
인간은 때론 인지부조화의 자체 모순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대개 '토니오 크뢰거'인 것이죠. 이상과 현실 사이를 끝없이 왕복하는.
이상이 좌절된 현실의 풍경은 어떨까요?
이제 <와이키키 브라더스> 얘기를 할 시간입니다.
이 영화에서 임순례 감독은 무명 악사의 인생이 단계적으로 어떻게 퇴행(?)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립니다.
정말이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날개조차 없었던 것이 좋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고 싶어 집니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7인조로 활동하던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는
어느덧 세월과 생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베이스 기타조차 없는 4인조로 전락(?)합니다.
그러다가 색소폰 주자(오광록 분)도 떠나고 3인조로 불시착.
지방의 마을 잔치에서 푼돈을 받고 연주하면서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들의 고향에 있는 '와이키키 호텔'의 전속 밴드로 발탁됩니다(학창 시절에 결성한 이 밴드의 이름은 바로 이 호텔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제일 먼저 드러머 ‘강수(황정민 분)'가 대마초의 환각과 현실의 남루함 사이에서 나자빠집니다.
강수가 자조적으로 말합니다. "야, 그래... 다 너 가져라. 난 아무것도 필요 없다. 여자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고 이젠 음악도 지겹다...."
그래서 강수는 결국 다른 길을 갑니다.
이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드럼 없는 2인조 밴드가 되었습니다.
주인공 ‘성우(이얼 분)'는 거리에서 우연히 과거에 자신이 다녔던 음악학원의 원장선생님과 조우합니다. 성우는 그분을 드럼 연주자로서 팀에 합류시킵니다.
그러나 연로하신 스승님은 지나친 음주와 지병으로 그만 스테이지에서 쓰러지고 맙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다시 2인조가 되었습니다.
하루는 스승님께서 어느 외국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시며 자조적으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십니다.
"언제 들어도 예술이구만... 이 친구하고 나하고는 42년생 동갑이거든. 근데 이 친구는 28살에 죽었고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잘 먹고 잘 산다는 게 한심하지 않아? 나 28살 때 뭐 했는지 알아? 남편 월남 보내고 바람난 아줌마랑 카바레에서…"
젊은 세월을 낭비했다는 자책보다는 "이 나이 되도록 잘 먹고 잘 산다"는 반어적 화법이 무엇보다 마음에 사무칩니다.
이제 영화는 종반에 다다릅니다.
키보드 연주자인 ‘정석(박원상 분)'도 어떤 사건에 휘말리는 통에 그만 '시즌 아웃’되고 맙니다.
이제 주인공인 성우 혼자 남았습니다.
그는 적을 둔 어느 나이트클럽의 스테이지에 주저앉아 고(故) 김현식의 <빗속의 연가>를 서글프게 부릅니다.
노래 참 구슬픕니다.
이들의 척박한 삶은 그들의 사춘기 시절과 너무나 대비됩니다. 한때는 롤링스톤즈 뺨치는 롹 밴드를 꿈꾸었지만, 현실에서는 지방의 삼류 호텔에서도 쫓겨나 시골의 장터에서 '너훈아(짝퉁 나훈아)'의 노래 반주나 해주는 처지로 전락할 뿐입니다.
주인공이 고등학생 시절에 좋아했던 여학생-학교 축제에서 조안 제트의 "아이 러브 롹앤롤"을 멋지게 부르던 그 여학생은 이젠 낡은 트럭을 몰며 야채 장사를 하는,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변모해 있습니다.
우연히 조우한 후, 강변에서 성우가 그녀에게 얘기합니다.
"너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음악 선생님이랑 결혼 안 했어?"
그녀가 대답합니다.
"뭘 결혼씩이나 하냐. 그냥 좋다가 마는 거지. 그래도 그때가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렇습니다. 주인공도 그 시절이 인생의 하이라이트였을 겁니다. 단지 그녀처럼 그냥 좋다가 말았어야 했습니다. 조금만 현명했더라면, 그래서 좋다가 말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인생은 애초에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악기에 전심을 다해 미쳐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학창 시절에 정말 그러지 않습니까. 한때 레드제플린을 동경해서 깁슨의 레스폴 기타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3만 원짜리 싸구려 ‘소리나 기타'나 치는 현실이지만 언젠가 깁슨이나 펜더 기타를 들고 전 세계의 스테이지를 누비겠다는 야망이 재능의 여부와 현실적 처지에 상관없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렸던...
주인공 성우에게 그 야망은 현실에서 다행스럽게도 일부 이루어지기는 합니다. ‘소리나 기타’ 대신 펜더 기타를 들고 어여쁜 아가씨가 있는 '룸'에 들어가는 현실로 말입니다. 단지 스테이지가 세계적이지 않고 국지적, 그것도 무진장 국지적이라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이쯤 되면 한 때의 자부심이요, 찬란한 영광이었던 '뮤지션'은 이젠 더 이상 권하고 싶지 않은 비정규 고용직일 뿐입니다.
"올갠 좀 제대로 가르쳐 주세요."
"..... 이건 날 샌 직업이야. 그러지 말고 다른 거 배워. 포클레인이나 자동차 정비나... 그런 게 좋잖아?"
직장에서 해고된 한 친구가 ‘성우'에게 묻습니다.
"성우야... 행복하냐? 우리들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거 너밖에 없잖아.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하고 사니까 행복하냐고?"
버스기사로 전업한 강수(황정민 분)가 버스 안에서 키보드 연주하는 친구와 통화하다가 슬픔을 공유하고서는 서글프게 웁니다. 황당해하는 승객들 사이에서 갓난아기가 또한 따라 웁니다.
어쩌면…이 아기 또한 먼 훗날 유사한 성격의 슬픔을 겪게 될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제 혼자 남게 된 성우는 술집의 악사로서 단란주점을 전전하다가, 결국 룸살롱의 '오부리맨'으로 전락합니다. 유경험자인 제 선배님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이 할 일이 못 된다’는 그 오부리 연주자로서 말입니다.
때로는 천민자본주의의 적자인 소위 졸부들이 그곳에서 호스티스들과 한판 누드쇼를 벌이기도 합니다. 직업을 ‘기능'으로 파악하지 않고 ‘지위'로 파악하는 걸 너무나 당연시하는 그 졸부들은 성우에게도 자기들과 똑같이 벌거벗으라고 명합니다.
강압에 못 이겨 결국 벌거벗은 채로 초라하게 기타를 연주하는 성우. 모니터의 영상에는 해변가에서 자유로이 뛰어놀던, 인생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청소년 시절이 교차 편집되어 나옵니다.
임순례 감독님. 너무합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불행 속에서 행복한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큼 쓰라린 일은 없습니다."
<신곡>에서 프란체스카가 단테에게 한 말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공감되는 말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 분)'가 그랬던 것처럼, 성우 역시 그 잔혹한 진실 앞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문득 '영호'의 물음이 떠오릅니다.
"근데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니?"
영호도 과거에는 이름 모를 들꽃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던 순수한 청년이었지만, 점차 삶에 오염되어 타락하다가 결국에는 기찻길 위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죠.
영화가 보여주는 이러한 진실은 참으로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Seasons in the sun>이라는 노래를 가장 슬픈 노래 중 하나로 꼽습니다.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빛났던 과거와 자조적인 현실의 대비는 항상 처연한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과거의 행복이라는 것이 시차로 인한 신기루라고들 하지만, 전락의 현실에서 과거는 마냥 미화되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https://youtu.be/Xdv83MFJd7U?si=qkcMVaEQkCeB6Pqd
안녕, 나의 믿음직한 친구여
Goodbye to you, my trusted friend
우리는 9살인가 10살 때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지
But we've known each other since we were nine or ten
우리는 함께 언덕과 나무를 올랐어
Together, we've climbed hills and trees
사랑과 ABC를 배우고
Learned of love and ABC's
상처를 주기도 하고 무릎이 까지기도 하면서
Skinned our hearts and skinned our knees
안녕, 친구여,
Goodbye, my friend,
모든 새들이 하늘에서 노래할 때 세상을 떠나기가 힘들어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이제 봄이 완연하고 예쁜 소녀들은 어디에나 있으니
Now that spring is in the air, Pretty girls are everywhere
나를 생각해, 내가 거기 있을 테니
Think of me and I'll be there
우리는 행복했고, 즐거웠고, 태양의 계절을 보냈지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하지만 우리가 올라간 언덕은 시간이 지나버린 계절일 뿐이었어
But the hills that we climbed were just seasons out of time
안녕, 아빠,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Goodbye, papa, please pray for me
나는 집안의 골칫덩이였죠
I was the black sheep of the family
당신은 나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려고 했죠
You tried to teach me right from wrong
너무 많은 와인과 너무 많은 노래로
Too much wine and too much song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놀라울 뿐이죠
Wonder how I got along
안녕 아빠
Goodbye, papa,
모든 새들이 하늘에서 노래할 때 세상을 떠나기가 힘들어요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이제 봄이 완연하고 어디에서나 아이들이 있으니
Now that the spring is in the air, little children everywhere
그들을 보게 되면 내가 거기 있을게요
When you see them, I'll be there
우리는 행복했고, 즐거웠고, 태양의 계절을 보냈어요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하지만 계절이 가버리듯이 술도 노래도 다 가버렸어요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안녕, 미셸. 내 사랑
Goodbye, Michelle, my little one
너는 나에게 사랑을 주었고 내가 태양을 찾도록 도와주었지
You gave me love and helped me find the sun
그리고 내가 좌절할 때마다 너는 항상 내게로 와서
And every time that I was down, You would always come around
다시 당당히 일어서게 해 주었지
And get my feet back on the ground
안녕, 미셸,
Goodbye, Michelle,
모든 새들이 하늘에서 노래할 때 세상을 떠나기가 힘들어
It's hard to die, When all the birds are singing in the sky
이제 봄이 완연하고 꽃들은 사방에 피었는데
Now that the spring is in the air, with the flowers everywhere
우리 둘 다 거기에서 함께 있었으면 좋을 텐데
I wish that we could both be there
우리는 행복했고, 즐거웠고, 태양의 계절을 보냈지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하지만 우리가 올라간 언덕은 시간이 지나버린 계절일 뿐이었어
But the hills that we climbed were just seasons out of time
우리는 행복했고, 즐거웠고, 태양의 계절을 보냈지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하지만 계절이 가버리듯이 술도 노래도 다 가버렸어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다시 처음의 얘기로 돌아가 봅니다. 전락에 대해서 말이죠.
뇌경색 후유증으로 인해 오른손이 예전 같지 않은 저는 술자리에서 한 친구에게 이렇게 자조한 적이 있습니다.
"... 학생 시절에는, 적어도 마인드 하나만큼은 '연주가의 손’이라고 자부했던 것이, 지금은 그냥 '학원용 손’으로 퇴락되어 버렸거든. 어릴 때부터 한 거라고는 이거밖에 없으니 다른 일 하기도 그렇고... 그냥 완전히 타성에 젖어버리는 거지. 가끔 술자리에서 '옛날엔 정말 잘 쳤는데…’하는 따위의 꼰대 같은 얘기나 하면서.”
아,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하등 쓸모없다고 판단하는, '옛날에는 한때 잘 나갔었는데’하는 류의 자랑 반 자조 반의 그런 이야기조차 따뜻하게 들어줄 수 있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나면 말이죠.
저는 위대하고 악마적인 미(美)의 좁은 길에서 모험을 하고 ‘인간’을 멸시하는, 저 교만하고 냉정한 예술가들에게 감탄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에 문학 애호가를 진정한 시인으로 만드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적인 것, 생명 있는 것, 그리고 평범한 것에 대한 저의 시민적 애정, 바로 그것이니까요.
—토마스 만, <토니오 크뢰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