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서울대에 가고 싶지만 공부하기는 싫어
드럼을 배우고 싶었던 계기가 있습니까? 하고 누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변할 것 같다. "러쉬의 <신데렐라 맨>과 헤일스톰의 <겟 럭키>를 치고 싶어서요."
근데....
살아생전에 과연 가능할까?
드러머 안수빈의 <겟 럭키> 연주 영상을 보다가 감탄한다. 안수빈, 리스펙!
영상의 3분 28초 지점 악보에서 두 번째 마디를 보니 후덜덜하다. 언젠가 내가 이걸 해낼 수 있게 될까?
어쩌면....
가능할는지도 모른다.
더도 말고 하루에 딱 한 마디의 한 박 씩, 아니 반 박 씩만 죽어라 연습한다면......
https://youtu.be/0GHVavlS0zM?si=s5xsEFwEV8bpd5np
오래전에, 클래식기타 동아리의 한 선배님께서 이렇게 물었다.
"야, 바흐의 샤콘느가 그렇게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라며?"
"어렵기는 하죠."
"하지만 샤콘느를 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어떻게요?" 내가 물었다.
"간단해.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샤콘느, 되게 어려운데요?"
"어렵기는.... 자, 봐봐. 악보가 대략 10페이지 정도 되지?"
"네.. 뭐, 대충 그 정도겠죠."
"그럼 하루에 더도 말고 딱 한마디만 외워서 치는 거야."
"그리고요?"
"그다음 날에 두 번째 마디를 외우고 치는 거지."
"예?"
"그러니까 하루에 딱 한 마디씩만 치는 거야. 그럼 아무리 곡이 길어봤자 일 년 안에는 다 칠 수 있는 거 아니냐?"
네, 안 됩니다....
위의 방법은 마치 이와 같다. 내가 100미터를 15초에 뛴다고 해 보자. 그런 내가 우사인 볼트와 같은 기록을 내는 게 가능할까?
다음의 방법은 어떨까?
첫날에 15초를 찍었다고 치자.
그다음 날에 0.01초를 단축시킨다.
또 그다음 날에 0.01초를 단축시킨다.
또 그다음 날에 0.01초를 단축시킨다......
...... 이렇게 계속하면 X 년 안에는(계산하기 귀찮다) 기록 경신이 가능하다.
뭐, 이런 얘기와 마찬가지 아닐까.
오래 전의 쿵푸 영화를 보면 스토리가 유사한 작품들이 다소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디테일의 차이는 있지만 대충 <취권>과 유사한 진행이다.
1) 주인공은 건달이다.
2) 가끔 무전취식하다가 깽판도 치고, 간혹 얻어맞기도 한다.
3) 무술도장 관장인 그의 아버지는 보다 못해 아들을 무림의 숨은 고수인 소화자 노인에게 보낸다(자기 자식은 못 가르치는 법이다).
4) 주인공은 멋진 무술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소화자는 무술 대신 무의미해 보이는 노동만 죽도록 시킨다. 물 길어오기나 항아리에 물 옮겨 담기 따위의.
사실 이것은 기본기를 위한 스승의 의도였으나,
5) 참다못한 주인공은 소화자에게 불만을 품고 도주한다.
6) 다시 건달 생활을 하며 삶을 허비한다.
7) 그즈음에 무술의 대가인 '나쁜 놈'이 전국을 떠돌며 소위 '도장 깨기'를 하러 다니는 중에 주인공 아버지의 도장을 찾아 도장 깨기를 하고, 그 와중에 주인공의 아버지는 죽는다.
8) 개빡친 주인공이 복수하기 위해 나쁜 놈을 찾아가 한판 뜨지만, 줘터지고 굴욕까지 당한다.
9)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주인공은 다시 소화자 노인을 찾아간다.
10) 하지만 소화자는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11) 주인공은 소화자의 집 앞에 무릎을 꿇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받아주기만을 간청한다.
12) 그리하여 결국 다시 무술을 배우게 되고... 그렇게 사계절이 흐른다.
13) 드디어 하산한 주인공, 나쁜 놈을 찾아간다.
14) 초반에 고전하지만, 소화자가 알려준 비법으로 그를 무찌른다.
15) 나쁜 놈이 죽고, 영화는 끝난다.
학생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대개 물 길어오기나 항아리에 옮겨 담기를 싫어하는 주인공과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는 거다. 클래식기타를 잘 치기 위한 필수 기본기(예컨대 플랜팅이나 스케일 연습이나 관절고정 탄현법이나 손가락의 강도 분리 연습 따위들)는 배워도 연습하려 하지 않는다.
왜?
오래 걸릴뿐더러 재미도 없으니까.
그럼에도 하는 말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잘 치고 싶어요
카바티나를 잘 치고 싶어요
탱고 앤 스카이를 잘 치고 싶어요
그러면 나는 조용히 지갑에서 1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면서 그에게 건네준다.
그가 묻는다.
"이게 뭐예요?"
"돈이지 뭐야."
"그런데요?"
"내 심부름 좀 해라. 편의점 가서 생생우동 한 개랑 스타벅스 커피 한 병, 그리고 양파링 한 봉지랑 하겐다스 아이스크림 한 개만 사다 줘."
"예?"
"아, 그리고 거스름 돈 300원은 꼭 받아 오고."
"천 원으로 어떻게 그래요?"
내 말이.
이렇게 나는 꼰대가 된다.
어쨌거나 그런 학생들이 쿵푸영화의 주인공처럼 되는 일은 없다. 설령 그 학생의 아버지가 기타의 고수라고 해도 기타의 세계에서는 도장, 아니 학원 깨러 다니는 나쁜 놈도 없을뿐더러, 설령 깬다고 해도 그의 아버지가 죽을 일은 없으니까.
결국,
'천 리 길도 한 걸음'이라고는 해도 엄청난 반복의 기초 수련이 없는 한,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그래서
<샤콘느>도 못 치고
우사인 볼트도 될 수 없으며,
<겟 럭키>를 작금의 내가 칠 수도 없다.
사족 :
'이번 생은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면, 어쩌면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구절로 위안받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배우는 것을 통하여 다음에 다가오는 세계를 선택할 수 있단다."
그래서 안 되는 줄 알면서 오늘도 뛴다.
잘 안 되어도 즐겁게.
https://youtu.be/Y7EacViDQIs?si=VnhOSGFgfUiTqKQp
https://youtu.be/JnXi3SVJXbM?si=LW2kL9ET4iu_HMC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