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달 학점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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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반복되는 꿈들이 있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나를 포함, 누군가의 목이 잘릴 예정이거나 잘리는 꿈.
2. 전쟁터의 꿈.
3. 꽤 넓고 하얀 2층 집의 꿈.
4. 동물들이 학대당하는 꿈
5. 제대했는데 또 입대해야 하는 '흉몽.'
6. 미달 학점으로 인해 졸업을 못하는 '악몽.'
6의 경우가 이 잡글의 소재다. 아직까지도 빈번하게 꿀뿐더러, 내용도 비교적 일관적이다. 대충 이렇다. 대학 4학년 학생인 나는 졸업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학기가 개강한 지도 한 달이 훨씬 넘었는데, 반드시 수강해야 할 과목의 강의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거다. 게다가 담당교수는 뒤늦은 출석을 절대로 용인해주지 않을 것만 같다. 학점을 채우기에는 애초에 틀렸고, 결국 나는 졸업도 못한 채 대학을 5학년까지 다녀야 하는 비운을 맞게 되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난다. 그 순간 스며드는 안도감.
‘아... X 될 뻔했다.... 꿈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대딩 시절은 장밋빛 추억으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적성에도 안 맞는 전공을 선택한 대가를 4년 내내 톡톡히 치렀으니까.
때는 고3 시절, 대학의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친구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 : 아.... 전공을 뭘 선택해야 하나? 고민인데.
친구 : 나도 그것 때문에 고민이야.
나 : (한참 생각해 본 후에) 결심했어. 이걸로 할래.
친구 : 어, 그래? 뭔데?
나 : 화학. 이걸로 정하겠어.
친구 : 화학이라.... 그것도 좋지. 근데 왜?
나 : 이것 봐.... 갈 만한 데라고는 물리학과, 식품 영양학과, 생물학과, 화학과... 뭐 이런 것 밖에는 없는 것 같아. 근데 식품 영양학과는 왠지 남자가 가기에는 좀 그렇지 않냐? (당시에는 이런 찐따 같은 편견이 있었다) 생물학과도 괜찮지만 괜히 여기 들어갔다가는 죽어라 암기만 해야 할 것 같아.
친구 : 물리학과는 어떨까?
나 : 거긴 절대로 안 가. 4년 내내 수학에 시달릴 수는 없잖아!
위의 대화에서 주목할 점은, 전공 선택이라는 중요한 결단의 순간에 결코 취업에 대한 전망이라든가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 따위가 눈곱만큼도 끼어들지 않았다는 거다. 예를 들자면 그냥 이런 식이다. 점심시간이다. 뭘 먹을까? 돈가스를 먹을까? 아니야, 이건 포화지방산이 너무 많을 것 같아. 그럼 간단하게 짜장면이나 시켜 먹을까? 아니, 이건 와이셔츠에 춘장이 튈지도 몰라. 그럼 그냥 샌드위치로? 아니지, 빵이 오히려 비만을 키운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부분 보다는 그렇지 않은 점을 구태여 일일이 찾아내서 퇴짜를 놓는 방식이랄까. 누군가 선택의 문제에서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그건 너무나 명약관화하다. 그에게는 그 선택의 대상들이 조건에 상관없이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수지 : 나, 어제 소개팅했어.
미영 : 진짜? 어땠어?
수지 : 다 괜찮았는데...
미영 : 그런데?
수지 : 집이 강북이래.
미영 : 일주일 전에 소개받은 남자는 강남이라며?
수지 : 응. 근데 걔는 키가 좀 작아. 175밖에 안 되거든.
미영 : 한 달 전에 만난 그 남자는?
수지 : 아, 강만 산다던 키 185인 그 남자 말이지?
미영 : 그래, 그 남자.
수지 : 그 남자는 지방대 나왔잖아...
문제는 단지 수지가 만났던 남자들의 얼굴이 내 수준이었다는 것 뿐이었으리라.
꽤 오래전에, 학원 아이들과 이런 한심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단다.
쌤 : 내일까지 이 네 가지 과제들을 다 마스터해 와라. 알겠지?
초딩A : (소리를 높이며) 예에? 어유, 이걸 언제 다 해요!
쌤 : 한 시간만 시간 내면 다 할 수 있는 것들이야. 잔 말 말고 해와.
초딩B : (구시렁대며)네 가지 중 하나만 골라서 하면 안 돼요?
쌤 : 좋아. 대신 과제를 좀 바꾸자. 다음 것들 중 한 가지 과제를 선택해서 하는 걸로.
초딩C : 좋아요.
쌤 : 첫째, 화장실 바닥에 눌어붙은 껌 떼서 씹기. 둘째, 세면기에 묻은 가래침 핥아먹기. 셋째, 삶은 지렁이로 스파게티 해 먹기. 마지막, 응가에 낀 콩나물 뽑아먹기. 자, 뭘 선택할래?
내게 전공 선택의 문제는 이른바 딜레마의 문제였다. 따라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그저 ‘그것들 중에 가장 덜 나쁜 건 무엇인가?’의 문제에 불과했다. 가장 나쁜 건? 응가에 낀 콩나물, 곧 수학이다. 이 똥 묻은 콩나물 같은 수학이 가급적이면 배제되는 전공을 선택해야만 한다. 따라서 물리학은 가장 먼저 제외된다. 무슨 무슨 공학이니 하는 따위들도 마찬가지다.
그다음 나쁜 것은? 지겹도록 외우는 짓이다. 따라서 (고딩이 때의 경험으로 보건대) 생물학도 배제된다. 그러다 보니 남은 건 왠지 (비교적) 참을만 해 보이는, 지렁이 스파게티 같은 화학!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선택은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내겐 최악의 선택이 된다.
첫째, ‘물리화학’이라는 과목을 간과했다. 특정 분자가 특정 상황에서 브라운 운동을 할 때의 순간 속도를 구하라는 따위의 문제들에 수학이 개입되지 않을 리가 없다(나는 이 과목에서 무려 세 개의 인테그랄(∭)이 붙어 있는 수식을 처음 봤다).
둘째, 수학 바보인 내가 이런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각종 수식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통째로 외우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생물학과 갈걸.... 이런 생각이 들지 아니한 것은 아니었으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세상에 그 어느 자연과학이 수학을 배제하겠는가? 생물학이라고 해서 무작정 암기만 하겠냐고.
윤구병 교수의 <잡초는 없다>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철학과를 지망한 한 학생에게 철학 교수가 선택의 이유를 묻자 그 학생은 '나중에 포항제철에 취업하기 위해서'라는 황당한 답변을 한다. 교수가 철학과와 포항제철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자 그 학생 대답하기를,
"철학과에서는 '철(鐵)을 배우니까요!"
적어도 내겐 이 학생을 비웃을 자격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수학이 싫었으면 애초에 이과가 아닌 문과를 선택했으면 됐을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맞다. 애초에 그 잘못된 선택이 문제였다. 일말의 뻥도 안 보태고 말하자면, 내가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하게 된 데에는 고딩 시절의 불어 쌤의 영향이 없지 아니하다고 말 못 할 수는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라면, 역시 이과를 가야지!"
물론 선택은 내가 한 거다. 잘못이라면 내 귀가 너무나 얇았다는 것과, 정규 전공과목들 중에서 내가 선택하고 싶었던 건 하나도 없었고, 따라서 이과든 문과든 상관없었다는 거다. 고로 그에게 책임을 상당 부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단, 이렇게 그에게 물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는 쌤께서는 어인 일로 불문과를 가셨는지요?"
문제는 ‘물리화학’만이 아니었다는 것. 나는 진정 모든 전공과목을 증오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4학기 동안 무려 세 개의 전공필수 과목과 한 개의 교양선택 과목에 ‘빵꾸’를 냈고, 그 결과 두 차례의 학사경고를 받았다.
문득 이런 일화가 떠오른다.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을 때다. 어느 날인가, 이제 막 복학한 동아리 선배님의 자취방에 찾아갔다. 생물학과에 적을 둔 그 선배님은 방에서 공부를 하고 계셨다. 그가 내게 말했다.
“어이, 마침 잘 왔다. 너 화학과지? 이리 좀 와봐. 내가 지금 유기화학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데, 이걸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나는 내가 그분의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하리라는 것 정도는 문제를 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거 봐봐. 이 HCl에 SO₂가.... 하려는데 왜...”
5분 뒤, 나는 그에게 유기화학, 아니 일반화학 강의를 받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루 와 봐, 새꺄.... 어떻게 화학과 다니는 새끼가 ‘공유결합’도 몰라?”
그리고 그 선배님으로부터 이런 얘기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물학과 학생이 화학과 학생한테 공유결합을 설명해서야 되겠냐?”
그렇다. 이건 말하자면 음대 피아노과 학생이 클래식기타과 학생한테 ‘아포얀도(클래식기타 주법의 일종)’를 가르치는 격이다.
그리하여 4학기를 마쳤을 때, 나는 더블 쌍권총(FF X 2)을 차고 말았다. 이건 내겐 두 가지 선택지 밖에는 없었음을 의미한다. 첫째는 학교를 때려치우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4학년 마지막 학기까지 빡빡하게 21학점을 다 채워서 수강해야 한다는 것.
나는 후자의 길―화학이라는 똥밭을 굴러야 하는―을 선택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시에 졸업이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었으므로.
뭐 지금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지만, 원래 깨달음이란 항상 뒷북을 치게 마련이다.
학사경고를 받게 된 내막은 이렇다. 그 빌어먹을 ‘분석화학’ 시간이었다. 창밖으로는 초여름의 더위를 씻으려는 듯한 미풍이 불고 있었고, 건물들 뒤편이어서 그랬는지 적막했다. 나는 그 적요한 풍경을 쫓아 창밖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한 줄기 센티멘틀한 감정이 심금의 G현을 울릴 무렵, 교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 교수님은 칠판에 적어 놓은 난삽한 화학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자네.... 이 화학식의 H₂가 어떻게 되리라고 생각하나?”
내 대답은 너무나 자명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고로 존재한다.
무식한 게 자랑이 아니라면 조금은 멋쩍은 기색이라도 냈어야 마땅했을 텐데, 낯빛 하나 안 붉히는 뻔뻔스러움이 교수님의 심기를 건드렸나 보다. 그가 말했다.
“아니, 이런 건 고등학교 화학책에도 나와 있는 건데 아직도 이걸 모르면 어떡해?”
선입견을 가질까 봐 하는 얘기지만, 이 교수님은 절대로 갈구기 좋아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나와의 대적(?)을 제외하면, 권위적이지 않고 비교적 친근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권위가 있다’는 건 좋은 겁니다. 그러나 ‘권위적’이라는 건 그렇지 않지요.”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이런 장면이 있다.
공부를 지지리도 안 했던 오영자는 늦은 밤, 낙제에의 공포에 짖눌려 담당 교수를 찾아간다.
"(교태를 부리며) 학점 때문에 왔어요."
"그건 학교에서나 말할 성질이지 집에서는 곤란해."
그러나 결국 영자의 애교에 녹아 시험지를 확인하게 되는 교수님.
"이거 큰일인데?"
"왜요? 제 시험지가 어때서요?"
"봐. 성적을 보라구."
"어머, 제가 왜 30점 밖에 안 나왔죠?"
"답을 보면 알 거 아냐. 까뮈의 <이방인> 1부 2장 중에서 뫼르소의 심리 상태를 논하라는 게 시험 문제인데 답이 이게 뭐야? '그건 작품을 쓴 까뮈만이 알 뿐이지 까뮈가 아닌 우리들이 뫼르소의 심리를 논하는 건 명작에 대한 모독이다' 아니, 이런 답이 어딨어? 응?"
옛날에 저것과 비슷한 수준의 답안을 낸 학과 선배가 실제로 있었다. 과목은 '분석화학'이었는데 시험 문제는 대충 이런 유형이었다고.
문) 원소 A가 원소 B를 만나면 보통은 원소 C를 발생하게 한다. 그런데 X라는 상황에서는 원소 C가 아닌 D가 발생했다. 이유를 설명하라.
이 문제에 대한 선배의 답안.
답) 원소 A가 원소 B를 만나서 원소 C를 발생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 현상이다. 그런데 X라는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원소 C가 발생한다면 그렇게 지당한 것을 교수님께서 시험 문제로 낼 이유가 없다. 따라서, 교수님의 의도를 유추한 결과 원소 D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답에 대해 해당 교수님은 너그럽게 10점을 주셨다고 한다. 영화 <300>의 크세르크세스보다 관대하신 이 교수님은 훗날 내게도 그런 관용을 베푸신다. 당시 내게 주어진 분석화학 시험문제는 다음과 같다.
문) 원소 A와 B의 결합에 근거하여 '흡수'와 '흡착'을 설명하라.
물론, 이 문제는 화학식을 장황하게 그려서 설명해야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답안은 채워야 한다는 학생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나는 다음과 같은 답을 그려 넣었다.
답)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채점한 시험지를 돌려주었는데, 내 시험지의 그 문제에는 빨간색 글씨로 '10점'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다음과 같은 멘트가 남겨져 있었다.
"그림이 그럴듯하군."
한 문제 당 20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10점이라는 점수는 참으로 관대한 것이었다.
이토록 권위적이지 않으셨던 교수님이었건만, 당시의 내 태도가 그의 심기를 거스르긴 했나 보다. 그 교수님의 벙찐 표정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사람이 눈으로 무언가를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화학과 학생 맞냐?"
강의가 다시 이어졌고, 나는 다시 턱을 괴며 창밖으로 눈을 돌려 푸른 하늘 아래의 풍경을 감상하며 시심(詩心)... 아니, 여자 생각에 빠져들었다(어차피 경청해도 난 못 알아듣는다). 왜 수지(가명)는 나와의 만남을 거부하는 걸까? 내가 그녀 대신 한문 숙제도 해줬는데! 여자를 꼬시는 데 있어서 '착한 교회 오빠 설정'은 최악의 선택이 아닐까?
교수가 칠판을 두들겼을 때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거기, 학생. 여길 봐야지... 창밖에 예쁜 여자라도 지나가나?”
아니요. 단지 교수님의 강의는 너무나 무료했고,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의도하지 않은 수면과 거기에 동반되는 코골이로 역시 의도하지 않은 모독감과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딴에는 애쓰고 있던 중이었는데요. 정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해에는 총학생회에서 주도하는 ‘전면 총파업(전면 수업 거부)’이 빈번했다. 일단 시대가 그랬고, 우리 학교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랬다. 비리 이사장(‘이사장의 비리’가 아니라 ‘비리 이사장’이라고 말할 정도로 입에 붙은 말이다)에 관한 이슈가 중심에 있었던 거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나는 연거푸 지적을 당한 그날 이후로 ‘전면 수업 거부’에 들어갔다. 오로지 나 홀로!

결국 그 과목 역시 낙제점수를 받고 말았다. 그렇게 1학기가 저물었다.
학기가 바뀌어 2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던 어느 날인가, 그 교수가 과사무실을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물었다.
“자네, 저번에 학점 못 땄지? 재시험이 있으니까 준비해 둬.”
“저....” 내가 대답했다. “재시험 볼 자격도 없는데요.”
“아니, 왜?” 교수가 물었다.
“30점 받았거든요.”
이 점수에는 위의 10점도 포함된다.
(지금도 이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낙제생들을 재수강이라는 늪으로부터 구제해 주었던, 이른바 ‘재시험 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해당 과목의 점수가 50점~60점 사이인 학생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였다. 그렇게 교수님은 한 번 더 염장을 질렀다.
물리화학 시험 시간의 일이다. 시험시간이 절반 정도 지났을 무렵, 나는 시험지를 들고 교탁을 향해 걸어갔다. 교탁 위에는 먼저 시험을 끝낸 학우들의 시험지가 켜켜이 놓여있었다. 그것들 위에 내 시험지를 올려놓으려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아... 맨 위에다 내 시험지를 올려놓으면 다음에 올 학우가 내 시험지를 보게 될 테지. 보통은 남의 시험지 따위야 관심 밖이겠지만, 이처럼 답은 없고 문제만 휑뎅그렁하게 남겨진, 백지나 다름없는 시험지라면 아무래도 시험지 주인이 누군지 궁금할 테지.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아마도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 개쪽팔려....'
이런 생각에 나는 그 시험지 더미를 들췄고, 아무도 내 시험지를 못 보도록 그 중간 정도에 내 시험지를 슬쩍 끼워 넣으려고 했다. 그 순간,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담당 과목의 교수님이 빠른 걸음으로 교탁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이제 막 끼워 넣으려는 내 시험지를 낚아채며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야!”
시험지를 들추는 내 행위에서 부정의 냄새를 맡았나 보다. 그는 나를 한참 노려보다가 눈길을 낚아챈 시험지로 돌렸다. 그의 눈이 시험지 위아래로 오락가락하더니 이윽고 당혹의 빛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백지상태로는 커닝('치팅'이 맞는 말이다)의 증거를 찾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그 학기에 쌍권총을 찼다. 재시험 불가. 재수강 가능. 학사경고. 나는 학교를 때려치워야겠다는 심정으로 다음 해에 휴학을 했고, 입대를 했다.
제대 후 내가 당장 할 수 있었던 일은 복학 말고는 달리 없어 보였다. 일단 졸업이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복학을 했고, 새카만 신입생 후배들과 ‘일반화학’ 강의를 같이 수강하는 처지가 되었다(이거, 존나 쪽팔렸다).
복학한 그 해에 대학 입학 후 처음으로 도서관이라는 곳에 갔다. 그 안에서 3개월 동안 일반화학과 유기화학의 기초를 뗐고, 드디어 ‘공유결합’이 뭔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사히 시험에 통과했고 학점을 땄다(물론 대개는 이해보다는 암기를 통해 시험을 치렀다). 학년이 바뀌어 나는 4학년이 되었고, 나와 강의를 같이 들었던 신입생 후배들은 2학년이 되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들과 강의를 같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끔찍하게도 세 과목(물리화학, 분석화학, 교양영어)이나! 내게로 향하던 후배들의 무심한 눈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저게 학생이냐....
그해의 내 방 벽면에 붙여 놓은 A4용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무사 졸업.
어쨌거나 다행히 졸업시험은 무사히 마쳤고―사실은 교수님들이 적당히 봐줘서 통과했고(따라서 5학년까지 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제때 졸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4학년 2학기 때에도 21학점을 꽉 채워야 했던 탓에 여유는커녕 취업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던 마지막 학기가 저물어 갔다.
학교를 떠나던 마지막 날, 시외버스 터미널에서는 가랑눈이 내렸고 약간의 서글픔도 느꼈다. 목표 완수나 지긋지긋한 전공으로부터의 해방감도 그 쓸쓸한 기분을 떨쳐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전공으로부터의 해방감은 기타와 함께 했던 시절과 장소(동아리방)를 떠나는 아쉬움을 상쇄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적응의 대상이었던 전공에의 압력이 온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더 이상 화학식을 볼 일이 없었다. 다만 그것은 항상 무의식이라는 압력솥에 누룽지처럼 눌려있었던 것 같다. 졸업한 이후에는 너무나 자주 학점을 못 채워서 안달하는 꿈을 꾸게 되었으니 말이다. 꿈을 통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았음에도, 꿈에서 벗어나 잠에서 깨면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다. 마치 '현실'이라서 다행이라는 듯.
학창 시절이 너무나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다가 문득 전공과 학점에 시달렸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그리움이 반감되기도 한다. 만일 운명의 신이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 소망을 들어준다면, 진정 딱 절반만 들어주기를 바란다. 화학과 학점과는 무관한 순간만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기를. 그리하여 미달 학점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악몽 따위와는 무관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간혹 생각한다. 만약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웠다면, 그리하여 (적성에 맞는 건 둘째 치고) 고통스럽지 않은ㅡ물론 학문의 길에 비포장 도로가 아닌 것이 있겠냐만ㅡ것을 선택했더라면 이 따위 미달 학점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악몽 따위는 꾸지 않았을 거라고.
사족 1 :
세월이 흘러 2008년, 드디어 ‘이게 다 노XX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떠돌던 한 시절이 마감되고 녹조, 아니 자칭 녹색주의자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고 때마침 대학에서는, 과거에 학생들이 투쟁해 가며 열심히 몰아냈던 그 ‘비리 이사장’이, '가재는 게 편'임을 증명한 사분위(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컴백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저자인 마르셀 푸르스트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데 마들렌 과자 한 조각과 홍차 한 잔이면 충분했다. 우리에겐 11,492,389명의 득표수가 필요했다.
사족 2 :
수학을 병적으로 증오했던 그날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수학을 증오의 대상에서 두뇌 노화 방지에 유익할 하나의 방편으로 바라보게 된 것. 그래서 <수학의 몽상> 같은 책도 가끔 본다. 뭐, 그렇다고 바닥이었던 실력이 좋아졌다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주어지게 된다면 언젠가 다시 <수학의 정석Ⅰ,Ⅱ >에 도전하게 될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번에는 단순 암기가 아닌, 이해하는 방식의 접근으로 해묵은 한(?)을 풀고 싶다. '머리가 나쁘다'는 한을.
(왜 수학을 못 하면 일반적으로 '머리가 나쁘다'라고 하는 걸까?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성 : 2008년 명박이 각하 시절
사족3 :
2025년 현재, 나는 결심한다.
수학은 다음 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