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하기 나름

ㅡ'이생망'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by 지얼




1. 기적,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


어제, 고 장영희 교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대한 독서 토론의 말미에 기적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적이란 무엇일까?


그야 물론, 내가 장원영과 결혼하는 것을 기적이라고 하지


위와 같은 실없는 농담의 대답을 했는데, 뭐 이런 상상... 아니, 망상은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니다. 야구 심판인 임창정과 연예계의 탑스타 고소영이 연인이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의 제목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다. 한마디로 기적이라는 얘기다.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하등 무의미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야, 네가 생각하기에 어느 쪽이 확률이 더 높을 것 같냐?"

"뭐가?"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랑 내가 수지랑 사귀게 될 확률 중에 말이야."

친구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말하나 마나 당근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지."

"그래? 그럼 로또 한 장 살까?"

"그래. 좋은 생각이다!"

덤 앤 더머 아닌가?


평평하고 매끄러운 바닥에 동전을 던졌을 때 그것이 쓰러지지 않고 똑바로 설 확률은 십만 분의 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백만 분의 일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대체 내가 수지랑 사귀게 될 확률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새삼 깨닫는다.

아, 그래서 제목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구나....


로또 1등 당첨보다 어려운 확률,,,


2. 엔트로피


엔트로피는 구태여 해석하자면 '무질서도'가 된다.

이 세상 만물은 질서의 상태에서 점진적으로 무질서한 상태로 향한다. 무질서를 지향하는 거다. 특별한 인위적 노력(에너지)의 투입이 없는 한, 내 방의 책상도, 나름 질서를 갖춘 내 외형도 점차 흐트러지다가 종국에는 분자 단위로 흩어짐은 분명하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는 다음의 예시를 든다. 주사위 백 개를 던졌을 때 모두 1의 눈이 나올 확률은? 글쎄다. 수알못인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김상욱 교수는 '그럴 일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이 결론에 의구심이 든다면 주사위 개수를 늘려보자. 천 개, 아니 만 개의 주사위라면?

이에 대해 어떤 과학자는 놀라운 대답을 한다. 만일 수 억 년.... 아니 조, 경 단위를 훨씬 초월하는 억겁의 시간 동안 주사위를 던지면 언젠가 한 번은 모든 주사위가 1의 눈을 낼 수도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무질서를 지향하는 엔트로피의 법칙은 타당한 사실이지만, '궁극적인'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어쨌거나 이런 우연을 아마도 기적이라고 할 테다.


경험론자 데이비드 흄은 기적을 믿지는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연법칙에 어긋나므로. 그러나 그는 합리적 차원에서 그렇게 단정한 것이지 기적 자체를 전면적으로 부인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인간의 지식이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고, 귀납적인 추론으로 사실을 도출하는 것인데, 문제는 이 개개의 귀납적 사항들이 언제까지나 일관적인 팩트로 기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 쉽게 말해 경험상 까마귀가 검다는 것을 알지만 언젠가 하얀 까마귀가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까마귀는 검다'는 명제가 항구적인 진리라고 확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위의 엔트로피에 반하는 기적과도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10의 천억 자승의 횟수로 주사위를 던지다 보면 뭐 언젠가는....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내가 해탈하지 못해 억겁의 시간 동안 반복하여 환생한다면 언젠가는 수지와....


꿈 깨~


3. 인생은 해석하기 나름


동전을 던졌을 때 똑바로 설 확률이 십만 분의 일이라는 얘기는 위에서 했다. 그런데 (이 일화를 소개해 준 책에 의하면) 수학자들은 10만 분의 1 확률은 사실상 0으로 본다고 한다(아니.... 백만 분의 1이었던가). 한마디로 '그럴 일은 없다'는 거다.

수알못인 나로서는 확률 얘기만 나오면 돌아버릴 것 같다. 따라서 확률의 문제는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대하는 게 맘 편하다.

이병헌과 고 이은주가 출연했던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의 대사를 음미해 본다.


"이 세상 아무 곳에나 작은 바늘 하나를 세우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로 만나는 게 인연이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바람둥이 토마시가 테레사를 만나게 된 여섯 번의 우연을 강조한다. 그런데 기실 여섯 번뿐이었겠는가. 토마시는 물론 그의 부모와 테레사 부모의 우연적 인연까지 포함하면, 아니 그들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따지면 이 우연은 셀 수조차 없을 거다. 그들 중 누군가가 삐끗해서 인연이 어긋났다면 토마시와 테레사가 만난 것을 따지기 전에 아예 그들 존재 자체가 없었을 수도(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니.

확률은 우연을 다룬다. 그런데 <번지 점프를...>에서 '그 계산도 안 되는 확률'을 언급할 때, 작가는 아마도 무한역행으로 따져야 하는 억겁의 우연은 결국 필연일 수밖에 없다고 해석하는 듯하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런 노랫말이 있다. 한마디로 우리 만남은 우연 아닌 필연이라는 거다. 작사가는 하늘의 누군가가 각각의 연을 점지해 준다고 믿는 걸까?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은 한 강연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인생의 의미는 해석에 달려 있다."

문득 흔해 빠진 장미 무리를 발견하고 바닥에 엎어져 엉엉 우는 어린 왕자가 생각난다. 내 장미가 흔해빠진 장미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니....

특정 대상을 에브리원으로 해석하느냐, 또는 온리원으로 해석하느냐는 오로지 자신의 몫인 것처럼, 누군가와의 인연을 그저 우연에 불과한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거나, 또는 무수한 억겁의 우연은 필연이라는 '무거운 것'으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 또한 오롯이 자신의 몫인 듯싶다.


당신은 ~~에 대해 어떤 해석을 옹호하겠는가?



4. 나의 해석


이번 생에 장 양 같은 처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생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장 양=장영희, 아니고요.

장 양=장X영이 맞습니다...)


X=원, 아니고요.

X=나, 맞습니다.


... 변심했습니다.


냥뇽녕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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