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역하의 헐크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by 지얼


나는 내 마음의 지배자가 아니다.

나는 이것을 경험으로 깨닫는다.

나의 행동조차 어떤 경우에는 무의식적이다.


안나 비도비치 <대성당> 연주


1. 세포 기억


오래전에 연주했던 곡을 오래간만에 연습해 본다.

악보 없이 잔존 기억만으로 실행해 보는 거다.

여섯 마디쯤에서 막힌다.

이 부분, 운지가 뭐였더라...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면서 기타를 아무 생각 없이 건성건성 연주한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의식적으로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던 운지를 무의식 중에 행하고 있는 거다!

의식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놀라운 사실!


20살 무렵에 바리오스 망고레 작곡의 <대성당>이라는 곡을 연습했다.

한두 달가량 연습한 횟수를 '바를 정' 자로 표시했더니 어느덧 6,7백 번에 이르렀다.

한 번은 그 곡을 연주하다가 많이 피곤하였는지 순간 비몽사몽에 빠져들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내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야, 자냐?"

"어... 응? 잠깐 졸았나?"

"근데 되게 신기하다."

"뭐가?"

"살면서 처음 본다. 꾸벅꾸벅 졸면서 연주하는 인간은."


사실 자면서 악기를 연주할 수는 없다. 아마도 그 친구는 내 비몽사몽 상태를 수면이라고 오해한 것일 테다.

그럼에도 이 일은 다소 흥미로웠다. 무언가를 반복 수행하면 설령 내 의식의 스위치가 반쯤 꺼져도 그것이 실행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몸으로 하는 연주나 스포츠는 의식적인 반복 연습으로 능숙해지면 그 이후로는 확실히 무의식이 조정하는 것 같다. 연주의 경우, 암보를 한 상태에서 연주를 할 때 '다음 마디의 운지는 뭐더라...' 하는 식으로 예측해 가며 하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이는 거다. 이를 근육 기억, 혹은 세포 기억이라고도 한다.


익숙한 노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노래하는 순간에 의식적으로 다음의 가사를 미리 예상하지는 않는다. 그냥 흘러나올 뿐이다.

컴퓨터 자판이나 전화기 자판도 마찬가지다. 기역(ㄱ)이 어딨더라... 하는 식으로 의식하며 입력하는 때는 자판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초기의 일이다. 익숙해지고 나면 손가락이 '알아서 간다.'

가끔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문자를 보내는 초딩이를 보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익숙해진 후에는 자전거나 스케이트를 탈 때 중심을 잡기 위한 동작을 딱히 의식하지는 않는다.


선수가 실수를 저지르면 코치는 대개 이렇게 소리친다. "생각을 해!" 하지만 프로 운동선수의 목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 알궂다. 수많은 시간 동안 훈련을 거듭해서, 전투가 한창일 때 의식의 방해 없이 딱 맞는 동작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데이비드 이글먼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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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지의 아래 (Below threshold, 식역하(識閾下)


어느 날인가, 서희(가명)로부터 SNS를 통해 연락이 왔다.

마지막으로 그녀를 봤던 것이 20여 년 전이었을 거다.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하는 순간 불현듯 어떤 번호가 떠올랐다. 그동안 단 한 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숫자였다.

"잠깐, 서희야... 옛날에 네가 살았던 집 말이야, 전번이 혹시 4XX-3XXX 아니었어?"

서희가 놀라며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직도 기억해?"


서희는 어쩌면 이렇게 오해할 수도 있다.

아, 이 오빠는 그 긴 시간 동안에도 전번을 잊지 못할 정도로 나를...


그게 아니고... 서희야,

단지 무의식의 힘일 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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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잠재적 헐크


고딩 시절, 나는 우리 집 현관문의 하단 유리를 발로 걷어차서 깨버렸다.

문은 잠겨있고, 키는 없으니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에 열폭을 한 거다.

나중에 깨달았다. 아니, 추측해 봤다.

발로 걷어찬다고 해서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님에도 나는 왜 계속하여 걷어찼던 걸까?


여섯 살 무렵에 나는 어마마마에 대한 항명죄로 인해 올 누드 상태로 쫓겨난 적이 있다.

기억의 왜곡이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희한하게도 어린아이가 벌거숭이 상태로 울면서 대문을 두들기는 영상이 떠오른다. 나 자신이 객관화되었다고나 할까.

내 생각에 이 과도한 처벌에 대한 대가를 현관문이 대신 치른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 내 피부가 초록색이었는지, 청바지는 찢어지지나 않았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때론 두렵기도 하다.

내 무의식에 봉인된, 하이드 씨 같은 '그림자'가 무언가의 촉발로 인해 헐크처럼 튀어나올까 봐.

정신분석학의 오랜 명제,

"억압된 것은 언젠가 분출된다."

어쩌면 내가 걸핏하면 장원영 양을 언급하는 것도 억눌린 욕망의 무의식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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