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죽거든

-소각 후...

by 지얼


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세요.

내 무덤 앞에

한송이 장미꽃도 심지 마시고

그늘지는

실계나무도 심지 마세요.


나를 덮고 있는 풀

푸르게 내버려 두시고

소나기와 찬 이슬에

젖게 내버려 두세요.

(후략)


-<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죽거든> 중에서

-크리스티나 로제티



초딩이 제자의 그림. 잘 그렸다....


메멘토 모리.

이제는 진부해져버린, 죽음을 기억하라는 이 말.

아마도 다음의 함의가 있을 거다.


죽음은 미래의 일이므로 기억하라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다.

미래는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상상과 예측의 대상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볼 수도 없고 따라서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나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죽어버린 그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 맞다.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언젠가 당연히 닥쳐올 나의 죽음을 환기하라는 뜻일 터. 그리하여 나 또한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얘기.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에 대해 '죽음에의 선구' 어쩌고 저쩌고 했다는데.... 나로서는 실천도 되지 않을 탁상공론 따위는 집어치우자.


종종 죽음 이후의 일들을 상상한다.

사후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후의 내 사체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는 거다.


우리 집안에게는 소위 가족묘라는 게 있다.

지방 어딘가에 있는 얕은 산 한 자락의 땅에 마련된 일종의 공동묘지다.

사후 사체 처리 방안에 대해 내 친구 수혁(가명) 군에게 일단 구두로 미리 유언을 남겼다.


1. 그 가족묘에 절대로 매장당하지 않게 할 것

2. 화장 후 남은 뼛가루는 산이나 강에 뿌려버릴 것


정색하는 수혁 군.

"산이나 강물에 뼛가루 뿌리는 거, 불법이야!"

나도 알고 있거든?

그래서 방법을 알려주었다.

"영화 <쇼생크 탈출> 봤지? (주인공 앤디가 탈출을 위해 밤마다 몰래 자신의 교도소 방 벽면을 조금씩 파내는 장면에 대해 언급하며) 거기서 앤디가 파내고 남은 흙을 어떻게 처분하는지 알지?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놨다가 낮에 운동장에 나갈 때 몰래 조금씩 그것을 흘려버리잖아?"

"근데?"

"너도 그렇게 하라고."

'싫어, 귀찮아'라고 대답할 줄 알았건만,

"안 돼. 어쨌거나 불법이야."

"괜칞아. 뻣가루가 흩뿌려진다고 한들 환경오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안 돼."

오... 이 출중한 준법정신이라니.


"그럼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냥 종량제 휴지봉투에 버리면 되잖아."

"에이, 그래도 그건 좀...."

"내 마누라는 나한테 이러던데? 자기가 죽으면 소각 후에...."

"나처럼 산에 뿌려달래?"

"아니."

"그럼 수목장?"

"아니."

"그럼 뭐 어떻게 하래?"

그의 답변에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그냥 변기에 버려달라는데?


내가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유해를 변기에..."

그가 부언했다.

"나한테 이렇게 말하던데? '여보, 그거 나 아니야. 그냥 쓰레기야'라고."

수아(수혁 군의 부인. 가명) 씨는 진정한 유물론자, 아니 출중한 진보주의자다.

그에 비해 산이나 강에 뿌려달라는 나는 아직 멀었다.



16여 년 전, 나의 애견 토리(가명)가 죽었을 때 인근의 애견 화장터에서 화장을 했다.

적어도 대형견의 경우, 화장비는 개의 무게로 책정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화장 전에 저울로 무게를 달아 예컨대 45kg이면 45만 원을 책정하는 식이다.

그때 토리의 화장비로 65만 원을 지불했다.

토리가 65kg이라고?

토리는 말라뮤트 종이기는 해도 50kg을 넘지 않았었거든?

암덩어리 무게가 15kg 이상이라고?

하지만 어쩔 것이랴. 그 분위기에서는 따질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음을.

망자의 무게조차 사기를 쳐서라도 이익을 얻으려는,

자본주의 만세.


갈 때 가더라도 나는,

자본주의에 저항하다가 죽으련다.

(한마디로 죽어서까지 돈 쓰기 싫다는 짠돌이 심보다.)


후배 아쿠마(반-기독교적 사상으로 똘똘 뭉쳐져 있어서 나는 그를 아쿠마(악마)라고 부른다)에게 이렇게 부탁할까 생각 중이다.

이하, 상상의 대화.

"야, 아쿠마야."

"왜?"

"부탁이 있는데..."

"뭔데?"

"내가 죽으면..."

"죽긴 왜 죽어?"

"때가 되면 다 죽는 거임."

"어쨌든, 근데?"

"너에게 내 사체를 처분하는 영광을 주려고 하는데."

"지랄..."

"내가 죽으면 소각 후 남은 뼛가루를..."

"산에 뿌려 달라고? 형, 그거 불법이야."

"아니, 그게 아니고..."

생각 같아서는,

"그리움이 사무칠 때, 발렌타인 위스키에 한 스푼씩 타 먹으삼."라고 하고 싶지만, 망자의 그것을 흡수하면 망자의 살아생전 능력이 네게 발현된다는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믿음을 그가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뼛가루를 담은 함을, 네 병원 뒷마당에 묻도록 하자."

그 대신 내가 쓰던 기타는 네게 양도하마.

나의 체취가 그윽한, 10년 묵은 빤스는 덤.




사족 :

이런 기사가 떴다(글 쓰는 중에 방금 확인했다).

불법 아니라고!




윗옷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몸에 늘 지니고 있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분명 없을 것이다. 이 세계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그 양끝에 아키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언젠가 여기서 아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 질 녘, 교정 구석의 철봉을 기어올라가는 그녀를.... 하지만 그것이 확실한 기억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바람이 불고 꽃잎이 흩날렸다. 꽃잎은 발밑까지 날아왔다. 다시 손바닥에 있는 유리병으로 눈길을 돌렸다. 작은 불안이 가슴을 스쳐갔다. 후회하지 않을까?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아름다운 벚꽃 눈이 내린다.
천천히 병의 뚜껑을 돌렸다. 앞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병의 입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팔을 있는 힘껏 뻗어 커다란 곡선을 그렸다. 하얀 재가 가는 눈발처럼 노을 진 하늘을 떠돌았다. 바람이 불었다. 벚꽃 잎이 흩날리고 그 꽃잎에 섞여 아키의 재는 이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카타야마 쿄이치, <세상의 끝에서 사랑을 외차다> 중에서


나도 이렇게 벚꽃잎에 섞여 폼나게 부유하고 싶다.

아무런 불안과 놀라움 없이

조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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